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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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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너를 보네.


BY 영롱 2007-10-10

 남편과 아이들이 각자 있어야할 곳으로 간 후, 어김없이 공원을 찾는다.

어제 보다 노릇노릇해 지고, 불긋불긋해 진 나뭇잎은 눈물날 듯 아름답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면, 이른 아침의 공원으로 오라.

연못의 청둥오리를 보며 걷자면 , 누군가가 했다는 이런 말이 떠오른다.

돈 잘 벌고, 살림 잘하고, 예쁘면, 황금오리이고, 돈 잘 벌고, 살림 잘 하면, 청둥오리이고, 살림만 잘 하면 집오리라고 여자를 오리에 빗대어 했던 말이다.

 \'그럼 난 어떤 오리일까?  돈을 벌긴 하지만 잘 벌지 못 하고, 살림을 하긴 하지만, 잘 하진 못 하고, 옛날엔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냥 봐줄만한... 후후\'

하늘을 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연못을 가르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부럽다.

재두루미의 우아한 날개짓도 부럽다.

걸으며 보는 세상은 모두 이 세상의 전경이 아닌듯 황홀하고,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불순한 생각조차 감미롭다. 걷고 있다는 것은 가장 확실한 내 존재의 확인이다.

 이제 두 달 반된 이 아침 운동에서 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중풍을 앓고있는 환자, 다리가 불편한 분의 투쟁같은 걷기도 눈에 띄지만, 내 시선을 잡아 끄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꼭 양복을 입고 걷기를 하는 노인이다. 처음엔 출근하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꾸준히 머리가 하얀 칠십은 족히 넘었을 이노인은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걷기를 한다.

 이 삼일에 한 번씩 회색에서 검정... 이런 식으로 양복이 바뀐다. 그에게 걷기는 성스러운 의식같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힘차게 팔을 뻗는 노인의 양복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니 오히려 멋지게 느껴진다. 그 나이에 어디로 출근할 리는 없다. 정장을 하고 운동화를 신고, 흰 목장갑을 낀 부조화의 그는 당당하게 오늘 아침도 부조화의 세상을 걷는다.

 또 한 노인은 항상 유모차를 끌고 걷는다. 유모차에는 두 돌쯤 되었을 법한 남자 아기가 있다. 대부분 가만 있지 않고 유모차를 부술듯 일어났다, 앉았다 부산하다. 어느날은 벤치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있는 노인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가만있어 할아버지가 닦아줄게.\"

휴지로 아이의 엉덩이를 닦으며 대변을 처리하는 노인의 솜씨는 아주 익숙하다. 후줄근한 이 노인도 오늘 아침 어김없이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걷는다. 아이의 지루한 저항에도 노인은 묵묵히 걷는다.

 해바라기가 피고 지면, 코스모스가 피고 진다. 코스모스가 피고지면 단풍이 피고 진다. 걸으면서 보고, 보면서 생각을 한다.

나이 마흔이면 무서울게 없단다.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란다.

\'이 나이에 뭘 하랴!\' 싶다가도 불끈불끈 의욕이 솟는다. 주체 못할 의욕을 담보로 시작하자.

사람을 공부하고, 사람을 알아가고 싶다.

두 달 반 동안, 한 시간 반을 걸으면서, 5킬로그램을 뺏다.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참여를 한다. 상상으로...

걸으면서, 일기쓰듯, 회상하고 반성하고, 이상주의자처럼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용기를 얻고,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살자고,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조용히 외친다.

가을이다. 새벽에 자주 내린 비 덕분에 공원은 더 싱싱하다.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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