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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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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약속


BY 그대향기 2007-09-30

                                  슬픈 약속

 

풀 향기 좋은 산 속 찻집에서 남편이랑 전통 차를 마시며 등산로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맑은 창으로 내다보며 오후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일상의 바쁜 일들이 한가하게 둘이서 찻집도 못 가게 했는지 아니면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는지 정말 오랫만에 돈을 주고 차를 마시는 곳을 간 것 같다.

주말마다 부부가 간단한 등산복 차림으로 가볍게 근처의 산들을 등산하는 자잘한 행복을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모르고 지나고 알면서도 못하면서 지난 것 같다.

랩이 섞이지 않은 잔잔한 40대 이후의 중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과 전통차

향이 적절히 조화로운 산 속의 찻집은 드문드문 손님들이 조용조용 옆에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않게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아이 셋을 대학3, 고3, 중3으로 키우면서 맞벌이 하는 시골의 촌부가 무어그리 큰 부자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언제나 세상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다 줄 듯이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언제나 다 가질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중한 꿈을 안고 살았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건강했고 아이들도 어느 구석하나

잘못되어 태어나지 않고 건강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감사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15년전!

남편은 아침 면도를 하다가 목의 이상을 느끼고 동네 약국엘 갔는데 약사는 큰 병원을

추천했고 큰 병원에서는 갑상선 암 진단을 내리고 목 거의 대부분을 난도질하는

대 수술을 6시간이나 받는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했다.

갑상선 암은 간단하고 흉터도 작다고 하던데 남편은 조폭은 저리가라는 너무 큰 흉터가

남아서 가능하면 목이 긴 옷을 선호하는편이다.

15년전 처음 조직검사하고 암 판정이 내린 날은 나의32번째 생일 날이어서 아마 생애

가장 잔인한 생일로 거억될 것 같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들이 눈치 챌까봐 화장실에서 울고 아파트 숲에서 울고)공중 전화기

앞에서 친정에 전화를 하는데 전화번호도 기억이 안나고 자판도 눈에 보이질 않고....

그래도 갑상선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가 더디거나 잘 안된다고 하는 의사의 천사같은

진단에 울다가도 귀가 확 열리는 기쁨도 있었다.

6개월동안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이 작고 쇳소리처럼 듣기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예전의

씩씩하고 박력넘치고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감미로운 목소리로 돌아왔다.

중간중간에 동위원소 치료라는 참기 힘든 치료를 하지만 그래도 다른 암처럼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심한 구토등을 안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평생 신지로이드라는 약을 먹어야 한다지만 그래도 감사하지.

조절만 잘하면 보통 사람들이 사는 만큼은 산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래도 남편은 마음이 늘 바쁘다.

아이들을 나에게만 남겨두고 먼저 갈까봐 걱정이 많다.

나는 숫자에 둔하고 누구랑 시비 붙지도 못하고 붙으면 100전100패는 따 놓은 자리라고

자기가 가기 전에 아이들도 다 보내고 나 혼자가 되더라도 생활이 되도록,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 엄마는 만들지 않겠다고 언제나 노심초사.

 남편 앞으로 되어 있는 부모님의 시골집 땅(우리가 농협 대출 받아서 사 드렸다)도

 조만간에 내 이름으로 이전등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어째들으면 성급하다는 느낌이라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나중에 또 세금 물고 세무서 볼일도

못 보는 사람이라 미리미리 자기 할일을 한다고 서둔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다른 부부의 열흘이나 한달,아니면 일년의 세월과도 맞 먹는다.

오늘 찻집에서 남편은  욕심없이 70까지만 살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할 때 그냥 눈 앞이

흐려지고 목에 뭐가 막힌 것 같았다.

우리보다 더 일찍 사별한 부부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다.

아이들의 아이들도 꼬물꼬물 돌보면서 금혼식 은혼식 그 후의 기념식도 같이하며

황혼을 즐기면서 같이 있고 싶다.

나 혼자는 이 어렵고 복잡한 세파를 이길 자신이 없다.

아이들 한테는 10년 쯤 지난 뒤에 얘기 해 줬더니 많이도 울었었다.

아빠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살자고 했건만 쉽지가 않다.

오늘의 슬픈 약속들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 후로도 쭈~~욱 더 길게 같이 있으면 더 행복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