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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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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버지를 보낸 건 저인가 싶어...


BY yjinm 2007-08-24

벌써 1년입니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던 친정아버지의 임종...

나이 40이 넘어서도 오남매의 막내임을 무기삼아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두 달 반에 걸친 투병 중에서 저는 단지 마지막 일주일을 거의 24시간을 붙어서 간병했습니다..

늘 간병하시던 엄마가 아버지의 퇴원(당신들만의 퇴원이었죠)을 앞두고 병원 복도에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엄마도 졸지에 거동을 못하시게 되었고 저는 바로 아버지를 간병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아버지의 퇴원을 반대하고 있었는데 두 노인네들은 빨리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셨고요..

퇴원을 하겠다고 하니 담당의사가 절 불러 폐암이랑 틀리다..두 세 번 항암치료 받으면 낫는다..등등 ,,그 의사의 눈빛은 마치 완치될 부모를 그냥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죠...

아버지를 꼬셨습니다..

\"아버지, 골수 검사 받고 두 세 번 항암치료 받으시면 완치된데요.. 폐암이랑 틀리데요..\"

사실 아버지의 병명은 늘 임파종일지도 모른다였습니다..

임파종도 아니고 임파종일지도 모른다는....

혹시 있을 임파종을 없애야 한다는 ,,혹시 있을,,,

\"이눔의 병원은  나를 꼭 죽여서 내보내려는 구나..\" 하셨죠..

아버지는 마음이 급하셨습니다..

항암치료를 안 받겠다고 그렇게 반대를 하셨는데 엄마가 거동을 못하시니 평상시처럼 아버지가 보살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셨기에 퇴원을 위해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오빠에게 결과를 알려주니 \"역시 아버지는 막내를 제일 사랑하시나 보다..내가 그렇게 말씀드려도 안하신다고 하시더니 니 말을 들으시고..\"

괜시리 오빠가 추켜세워줬습니다..

골수검사를 했습니다..몇 시간 동안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아버지 소변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품이 깔끔하신 아버지가 얼마나 민망해 하시던지...

그리고 의사가 와서  제게 사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혹시 항암치료를 받다가 유명을 달리하실 수도 있다면서....

어쩌라구요...정말 갈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이 결정을 어쩌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결국은 사인을 했죠..

항암치료 받기 전 체력이 되는지 체력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담당자와 웃으시면서 근력테스트도 받고,,정말 멀쩡하셨습니다..

항암주사 맞고 퇴원하셨습니다,,

작은 오빠가 일주일 여름 휴가를 얻어서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엄마를 간병했습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 오빠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 아침 6시에 엄마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밤새 바지에 실례를 했다고요..

엄마는 엄청 걱정하셨죠,,사람이 죽으려면 태변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거 아닌지 모르겠다고요..

급히 남편이랑 달려 갔습니다..

오빠도 다시 와 있었습니다..

두 차로 병원으로 달려 응급실에 갔습니다..

이 눔의 대한민국 병원!!!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응급실에 내려올 시간이 아니라더군요..

물론 위에 입원환자들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모두 살리자는 건데 당장 급한 목숨은 나몰라라 하더이다..간호사들이 응급으로 뭔 주사를 놓아주고 아버지가 조금 진정이 되서 오빠와 남편은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바지에 실례를 하셨는데 거의 두 달 넘게 못드신 것치고는 엄청 양이 많으셨죠..

\"아버지, 이제 뭣 좀 드실래요? 죽 사다드릴까요,,??\"

왠일로 아버지가 드시겠다고 하셔서 편의점에 가서 캔에 들어 있는 죽을 사다 렌즈에 돌려 한 숟갈씩 떠 드렸습니다..

이 순간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제일 많은 잡념을 가져다 줬습니다..

\'죽을 드시고 감염이 되신걸까,,?\'

\'그래도 늘 굶으시다가 죽이라도 한 술 뜨고 가셨으니 배는 덜 고프시겠지..\'

\'인스턴트여서 감염이 되셨나,,,\'

\'더 많이 먹여 드릴걸...\' 등등...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는 가슴을 긁으시면서 속이 뜨겁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초록물을 토하시더이다..

간호사를 불으니 소생실로 모시고 갔고 의사들의 조치로 다행히 소생은 하셨지만 가족들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사촌오빠에 육촌오빠까지 와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아셨을까요..일일이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큰아들 내외는 없었죠..

큰아들이 아버지 먼저 폐암선고를 받고 투병중이었고 준비를 하라는 상태였거든요..

아마도 아버지의 병은 큰아들 병에 충격을 받아 나신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큰언니...미국에 잠깐 가 있어서 못왔고..

작은 언니..부랴 부랴 먼 곳에서 오느라 면회시간이 끝나서 도착을 했고..

사실 가족들을 부르라고 하기 전에 의사가 물었습니다..

응급시에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가,, 기도 확장을 할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갈등이 되었습니다..

기도확장을 하면 목에 튜브 꼽고 중환자실에 의식은 있으되 생명만 붙어 있는 상황이 되는데

아버지가 비참해 하지 않으실까,,??

병원비 감당은 어떻게 하지,,,(참,,야박하지만 그게 현실이더라구요..)??

그렇다고 안 하겠다고 하면 아버지를 그냥 죽이는 거 아닌가..??

순간 엄마가 결정을 내려 주셨습니다..

여리신 분이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리셨는지 지금도 놀랍습니다,,

아버지 성격상 그렇게 누워있을 것 같으면 그냥 돌아가시길 원하실 거라고..

그래서 그런 조치들을 안하겠다고 사인을 하고 임종을 기다리는 상태였는데 

의사가 이삼일 후에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해서 다들 돌아가고 저 혼자

복도에서 잤습니다..

아침이 되서 아버지를 면회 좀 하겠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기에 문틈으로 보니

간호사들이 아버지 시트를 갈고 하더이다..

그러더니 다시 악화되었다고 면회가 안된다 하더니 잠시후 의사가 들어오라면서

가족들을 다시 부르라고 해서 다시 울먹이며 전화를 했죠.

아버지는 계속 화장실을 가시겠다고 일어나시고,,(돌아가시기전에 나타는 현상이라더군요..)

드디어  그 시간은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의식은 멀쩡한데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있었습니다..

기도확장 안하기로 했던 우리의 결정이 마치 살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의식이 멀쩡한 아버지를 그냥 가시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호흡이 점점 다 곤란해 지시고,, 눈이 자꾸 옆으로 가시고..

\"아버지!!!\" 부르면 \"와??\" 하고 아버지 눈이 다시 돌아오고,,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아버지...하실 말씀 없으세요..하자니..아버지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안겨들릴 것 같고...

안 그러자니 한 말씀도 없이 이 세상 끝내실 것 같고..

아버지를 부르면서도 머리속은 이 순간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참 어려웠습니다..

결국은 말 못했습니다..

겨우 \"아버지,,엄마랑 오빠가 오는 중이니 조금만 참으세요,,힘내세요..\" 이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동공은 힘이 풀렸습니다..

정말 발이 바닥을 치게 되더이다..

사랑하는 엄마랑 오빠 좀 보고 가시지,,,

아버지이!! 아버지이!!! 아버지이!!!

의사와 수간호사가 와서 위로하더이다..편안히 가셨다고..

저는 울면서 면죄부 신청을 했습니다..

\"저희가 기도 확장 안해서 아버지 돌아가시게 했나요...??\"

수간호사가 그러더이다..잘 선택하셨다고..

아버지 돌아가셨다고(아....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이네요..눈을 크게 뜨고 콧물을 훌쩍이며 침을 삼켜 가며 눈물을 참습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오빠에게 전화하고 작은 언니에게 전화하고...

작은 언니 전화를 받은 큰언니 국제전화 오고,,, 남편에게 전화하고..

복도를 울면서 이리 저리 전화하니 경비가 오더니 응급실 근처니 울지말라고 하더이다..

\"저도 그거 생각하고 엄청 참고 있다고요...!!!! 어어어엉..\" 저는 엄청 참으면서 울었는데 컸었나 봅니다..

큰언니 입관전에 입국할 테니 입관시간 늦추라고 해서 영안실 직원에게 사정사정해서 몇 시간 늦춰 언니가 겨우 도착을 하였고,,

요양 중인 우리 큰 오빠,,,

아버지의 일을 알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가족회의가 열리고..

결국 알리기로 결정하고 입관식 때 오는 것은 오빠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는데 오빠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겠다고 휠체어를 타고 오셨죠..

또 결국 오빠는 아버지가 화요일 돌아가시고 다음 월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오빠의 임종도 지켜보았습니다..

다행히 오빠도 편안히 좋은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어찌 그리도 피부는 하얗던지..폐암환자들은 까맣고 살이 빠져 가신다고들 하는데..

울오빠는 살도 안 빠지고 참 고운 모습으로 갔습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나요..

그렇게 겹초상을 치렀습니다..

 

울아버지..연세 78세..세상나이로 치면 그리 억울한 연세에 가신 것도 아니지만,,어쨌든 저에게는 멀쩡히 체력이 좋아서 항암주사만 안 맞았으면 아직도 살아계셨을텐데...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거부하는 아버지를 내가 괜히 꼬셔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필 운명이라는 것이

엄마를 그 순간 병원 복도에서 넘어지게 했으며,,

왜 하필 운명이라는 것이

나를 그 자리로 보냈는지...

그게 아버지가 돌아가실 운명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나의 결정이 촐싹거림이었는지...

내일 모레 일요일이 아버지 첫 제사입니다...

일년이 다 되어도 순간 순간 아버지 생각을 하면 무엇이 정답이었는지 모르겟습니다..

목이 메입니다..

스스로 위로를 합니다..

큰아들 가는 거 안보시고 먼저 가셨으니 다행이지..

살아계셔 봤자 이삼년 더 사실거면 그 무섭다는 암 고통 안 받고 가셨으니 다행이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두 달 반정도 우리에게 효도할 시간 주고 가셨고,,,

돈 없는 자식들,,,우리는 그런 형제들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봐도 많은 병원비 앞에서는 무너질 것이고,,

이래 저래 적당한 때에 가신거라고...

그래도..또 미련이 남습니다..

그때 항암주사 안 맞았으면 지금도 살아계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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