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면서 논벼가 익는다고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흉작이 든다는 말도 있고 처서가 지나면 벌초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을 느끼게 되면서 파리 모기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처서인 오늘 사무실은 냉방 장치가 그런대로 잘 가동되어
무더위의 실감을 모르고 있었지만 점심 시간 잠시 짬을네어 사무실 밖으로 나와 은행으로
향하는데 푹푹찌는 더위에 걸음 걸음 천근 만근 무겁기만 하였다.
삐긋 다친 기억도 없는데 왼쪽 발목이 걸을때 마다 불편했다
불편한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어디 발목 뿐이랴~
전문직도 아닌 사십대 후반 중년의 아줌마인 나의 수입으로 물가 비싼 서울에서
대학생 둘을 가르치면서 살아 가기가 어디 만만한가?
두아이 대학 등록금 납부 기간이라 고지서 든 핸드백을 들고 은행으로 향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달만 해도 이번 2학기 등록금은 아무래도 적금을 깨어 보태야 될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딸아이 성적이 좋게 나와 전체 등록금은 아니였지만 수석
장학금을 받게되어 2백이 훨 넘는 금액이 차감되어져 나왔으니 한결 부담이
덜하게 되었다.
8월 급여가 입금되어 있으니 통장 잔액으로 무사하게 등록이 가능하기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혼자 아이들 데리고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깨 버거운 고난에 닥칠때
새삼 핏줄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분명 대학생이 둘이나 있으니 어찌 아이들 공부를 가르칠까 염려라도
해주면 고마울 터인데 혹시 연락이 닿으면 손이라도 내밀까 그러는지
소식도 두절이다
제작년 추석 아니 그 전년이었을까?
기억도 흐릿한데 많지도 않은 삼남매중 하나뿐인 친정 오빠는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으니
부모 대신일 수도 있는 위치이건만 딸아이 데리고 명절이라 찾아갔더니 봉투에
오만원 넣어 주면서 딸아이에게 지사장 직함이 들어간 명함을 건네 주더니 외삼촌에게
어려울때 전화하란다.
하지만 어려울때 전화, 그게 어디 쉬운가?
자존심 강한 딸아이가 왕래도 잦지 않은 외삼촌에게 무슨 어려울때 전화를 하겠는가?
시집쪽도 마찬가지다.
아들 아이가 군에서 제대하자 휴학하고 뒷바라지 해줄 터이니 한의대쪽으로
다시 공부를 해보라 하더니 말뿐 연락 한 번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그말은 진실일까?
거금의 등록금을 털어주고 빈 통장을 갖고 은행문을 나서는데
분명 밖은 30도를 넘는 폭염의 찜통이었지만 마음은 왜 그리 춥던지...
하지만 어렵게 피땀으로 일하여 내 힘으로 자식을 가르치고 보살피니
참으로 큰 보람중에 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가고 있어 분식집에서 김밥을 두줄 포장하여 사무실로
돌아와 급하게 먹는데 목이 메어왔다.
파래김에 옆구리도 터지지 않게 잘 말아진 김밥 두줄이 왜 그렇게
안 넘어 가던지...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어 갑니다
이곳에 딸아이 수시모집으로 대학 입학하여 기쁨도 잠시 등록금 걱정으로
울던 딸아이 애처로워 글 올리던 때가 어제일 같은데
어느사이 무사하게 4학년 이제 2학기 등록까지 마쳤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머나먼 땅 타국에서 마야님 비롯 많은 분들이 그 당시 많이들 걱정 해주시고
염려 주셨는데 그 딸 교환 학생으로 유학까지 다녀오고 이제 졸업이
코앞이랍니다.
다시금 그 때일 떠올리면 너무도 고마워 가슴이 뭉클합니다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있는 처서인 오늘 하루가 참 길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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