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취직해서 다녔으니 오늘로 딱 한달이 되는 날이다.
여름방학에, 학원 방학까지 맞은 아이들은 지난 토요일에
친정으로 내려 보낸 뒤다.
큰 남동생 가족이 휴가를 내어 시골로 내려가서
며칠간 아이들을 챙겨주겠다니
반가운 마음에 깁스한(중복 날, 과음을 제대로 한 탓에...2차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3차였다는 노래방 부분은 전혀 기억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껴지는
두통과 울렁거림은 당연지사지만...어째 발목이 아픈 건지
남편이 술 취한 마누라 발목만 집중 적으로 때린 것도 아닐 테고... 노래방서
너무 과도하게 놀았는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미스테리한 사건이다.)
발목으로 뒤뚱거리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 없는 빈 자리를 적응하지 못하는 아영이를 위해서
작은 ‘거북이’ 2마리를 사주며 하루 3시 세끼 먹이를 주고
이틀에 한번은 물을 갈아 줘야 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많은 사랑을
준다면 사람의 말도 알아듣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수도 있다고 말 해줬는데,
그 말에 feel 꽂혔는지 아영이가
복잡한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도 거북이가 든 작은 통에서
물이 출렁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 안은 체였다.
자신이 없으면 밥 챙겨 줄 사람이 없어서 굶어 죽을까봐서라나?
내 의도대로 ‘사랑’ + ‘책임감’을 갖게 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다.
워낙 낯이 얇은(?) 내 남편, 차로 애들을 데려다 주라고
말해봐야 핑계들을 늘어놓을 것이 불 보듯 빤해서
묻지도 않은 상태로 평택으로 향했다.
탁한 도시의 공기를 벗어나 파릇한 풀내음이 상쾌한 친정집에
도착했을 때, 아영이는
파릇한 잔디밭 위에서 폴짝되는 메뚜기만큼이나 좋아서 폴짝거렸고
제 주먹만 하게 매달린 사과 열매 아래서 팔짝,
송알송알 매달린 방울토마토 앞에서 좋아라 했고, 토마토
색만치나 얼굴에 생기가 발그레~했다.
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포도송이들 앞에서 작은 눈이 포도 알처럼
땡그레 졌다.
표정이 어찌나 다양하게 변화하던지,
곁에 있던 아빈이도 처음엔 다리까지 다친 제 엄마가
못 미덥다며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녀석인데...어느샌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힘들어도 데리고 내려오길 잘했다, 싶었다.
난, 아픈 다리로 내려가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깁스까지한 딸의 몰골을 두 눈으로 봐야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선뜻 결정지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남편의 징징(?)거림과, 잠시 부재중인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느라 힘겨워하는 아빈이에게 휴가(?)등...을 이유로 용기를
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역시나 딸의 깁스한 발에 눈이 못 박힌 상태로 ‘어쩌다’를
연발하셨고 남편의 귀가 가려워서 긁다가 곪아 터지면(?) 어쩔까
걱정될 정도로 못마땅함을 표현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피해주셨다는 것.
아이들을 떼어 놓고 하룻밤만 자고 올라올 때, 아이들만큼이나
아쉬움이 컸던 나였다.
그날 저녁,
삶의 각박함 앞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잠 못 드는 늦은 밤이었건만
늘 그렇듯 마누라 속 헤아리지 못하는 내 낭군,
코가 삐뚫어지게 퍼마신 술의 기운을 의지해서 귀가했다.
그리곤 쉽게 잘 것 같지 않은 모양새로 씩씩거렸다..
하긴, 올해 들어 나 역시 벌써 알코올로 인해서 필름이 2번이나
끊긴 전적을 만든 경험이 있으니... 남편을 심히 뭐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지.
“당장 일, 떼려 쳐!”
“......”
술기운에 한껏 목에 힘이 들어간 남편의 말에도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 줄 당신도 알잖아.”
“......”
“나는 분명히 말했어. 한 달만 하고 떼려 치라고!”
“......”
“애들 잘못되면 알아서 해!”
듣자, 듣자 하니 끝도 없을 주정 레파토리가 이어질 판이다.
아니, 내가 처음에 취직했다고 했을 때는 아주 간단히,
‘조금만 더 참아보지 그래...’ 가 다였던 사람이,
이제 와서 불쌍한 아이들을 운운하며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니,
그럼 그동안은 돈을 벌 수 있어도 굳이 참았단 말이야 뭐야?
그렇지 않아도 밴댕이 속알딱지처럼 속이 잔뜩 좁아진 마누라의 심기를
더욱 오그라트리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닌지.
그동안 애들이 불안해 할까봐서 하고자 했던 말도 나름, 많이 참았건만
까짓 거 아주 오늘 제대로 터트려 버려?, 하는 마음으로 나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유감없이 벌렸다.
“계속 떠들 거야?! 조용히 해!!!”
“알았어!”
“...?!...”
30여분을 꿋꿋이 참고 있다가 터트린 내 목소리에서
술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감지한 걸까?
참새가 죽을 때도, “짹!” 한다더니 발악하듯 남편이
한마디를 하더니 정말로 조용해 졌다.
남편과 싸우고 나서 점점 느끼는 건데,
패배감이 든다.
그리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대도 남편에게 놀아나는 것 같은...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남편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점점든다.
왜일까?
지랄+성질낼 것 다 냈어도 끝내 애들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서 해야 할 엄마의 도리도 다 했고, 애들에게 미안해서 더욱
잘 하려하다 보니 내 성깔도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같구...
남편은 내가 취직을 했다는 말에도 느긋했던 것이
며칠 다니다가 말겠지 하는 마음이 있던 것 같다...
애들 때문에라도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둘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새삼 느꼈나보다.
한번 칼을 뽑으면 썩은 ‘무’가 아니라 뭉그러진 ‘오이’라도
썰고야 마는 아내라는 것을 그러니 안달이 났지.
얼마 전에 있었던 직원 회식 시간엔
남편과 아영이의 전화공세에 1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건만...
오늘은 동장님께서 전 직원들에게 ‘화려한 휴가’란 요즘 나온
영화를 관람시켜주겠다는 제의를 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내 낭군은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이제 점점 분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직원들과도 좀 편해졌는데
규정된 6개월은커녕, 2달을 버틸 수나 있을지.
남편은 한달도 많이 다녔단다.
남편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정작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스스로도 의문이 들곤 했는데...
내가 처음 다짐했던 마음으로 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