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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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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에서 띄운 편지(7월 어느날)


BY 개망초꽃 2007-07-18

하루는 비가 쏜살같이 왔다가 이틀은 쨍쨍한 날이 이어지고

오늘은 쨍쨍 이라는 날이야.


어제는 개천절이라서 도서관에 안 나갔어.

잘못하면 꽃순이를 잃어버릴 뻔 한 날이기도 하단다.

휴일이면 꽃순이를 데리고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날인데

옛날에 살던 동네에 볼일이 있어서 못 데리고 나가는 게 미안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만이라도 상록이를 동반해 꽃순이를 데리고 나왔거든

나는 버스를 타고 상록이는 꽃순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 봤는데

상록이한테 전화가 온 거야

꽃순이를 잃어버렸다고, 가슴이 덜컥 내려 붙더라.

너도 한번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 4살때였을거야.

목욕탕가자고 신발을 신겨서 대문 앞에 두고 빠뜨린 게 있어서

집에 들어왔다 나와 보니 네가 사라진 거야.

워낙 얌전해서 그 자리에 있으라고 하면

얼음땡 놀이하는 것처럼 그 표정 그대로 있던 네가 없어졌으니…….

이 골목 저 골목 네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녀도 없고

옆집 아줌마가 나와서 같이 찾아다녀도 없는 거야.

탁구공만한 게 없어졌으니 찾기가 힘들 수밖에…….

얼굴과 머리통이 똥글똥글, 눈이 똥글똥글, 그래서 탁구공 같다고 놀리곤 했었는데,

네가 사라지니 가슴이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나드라니깐.

옆집 아줌마가 안 되겠다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라는 거야.

신고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찾기가 힘들어진다고...

막 뛰어서 똥물 흐르는 개천 다리를 지나 찻길 건너 파출소에 들어가 보니

네가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거야. 한손엔 때밀이 초록 수건을 들고.

푸하하하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마구 나온다.

파출소아저씨가 그러는데 앉으라고 해도 안 앉고, 먹을 걸 줘도 안 받아 먹고,

때밀이 수건을 내려놓으라고 해도 꼭 쥐고 안 놓고,

울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기만 하더래.

어떤 아줌마가 널 파출소에 데려다 놓고 갔는데, 목욕탕 앞에 네가 서 있더란다.

그러니까 목욕탕에 먼저 가서 엄마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다시 꽃순이 찾은 얘기를 해야겠다.

우짰든지 꽃순이를 찾았다고 다시 전화가 와서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제자리에 놓고

버스에 흔들리며 볼일을 보러갔단다.

상록이가 승강기를 타려고 꽃순이를 내려놓았는데

번개처럼 아파트를 벗어나 달려 가드래.

너도 알지? 꽃순이가 달리기 선수라는 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혹시나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더니 거기 서 있더란다.

나를 찾아 나선거지. 네 말마따나 엄마 딸은 꽃순인가봐. ㅎㅎㅎ


일본은 섬나라라서 끈적 끈적끈적한가보다.

여름날 바닷가에 놀러 가면 그 끈적함이 싫어서

여름휴가는 냇가나 계곡으로 가자고 주장을 하잖아.

대부분 엄마 고향인 강원도로 가게 되지만.

올 해도 네가 빠졌지만 매년 똑같이 고향 냇가로 가게 될 거야.

돌판에 삼겹살 구워 먹으며 네 생각 많이 해줄게.ㅋㅋ


어제는 우리가 처음으로 집을 사서 들어간 아파트 동네에 볼일이 있었어.

같이 컴퓨터 배우던 아줌마 하나가 그 동네에 사는데

공원이 붙은 허름한 상가에 가게가 하나 비었는데 탐이난다는거야.

장사를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자신이 하려니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못하겠고

그냥 아깝다고만 하기에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서 가봤더니 우리가 살던 동넨 거야.

우리가 살던 아파트 후문과 화성아파트 중간에 반쪽짜리 상가 있지?

엄마랑 너랑 책 빌리러 가던 곳? 생각나지?

그때 책빌리러 책여대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책대여점도 탐이 났지만

바로 앞 공원이 너무 좋은 거야.

그 공원에 꽃을 심고 책대여점이 하고 싶어서 책대여점 주인에게 물어 본적도 있었단다.

혹시, 책대여점 내 놓으셨나요? 하면서...

딱 그 자리였어. 장사할 생각도 없던 내가 그 자리가 탐나서 어제 다시 가본거야.

순전히 뜰에 싸여 있는 가게가 좋아서, 꽃을 내 맘대로 심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슨 장사를 해야 하나? 가게가 마주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을 죽치고 있었단다.

결국은 떡볶이 장사가 딱이겠구나, 했어.

떡볶이 카페... 빨간 차양을 치고 가게 앞 나무 밑에 빨간색 파라솔을 두어 개 놓고

꽃무늬 벽지에 나무무늬 장판을 깔고...

사방에 꽃을 심고, 작년에 카페에서 꽃을 사방에 둘려가며 심듯이 심어 놓으면

사람들이 꽃을 보면서 떡볶이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결국은 장사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꿈만 꾸다가 왔단다.

일단 음식장사 경험이 없고, 자본금이 삼천만원은 있어야 하고,

엄마 친구랑 같이 하려고 했더니 그럼 자본금이 반으로 줄어들잖아.

주변에서 동업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해서, 꿈만 꾸었단다.

엄마는 매일 매일 꿈을 꾸며 산단다.

그게 헛꿈이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든

꿈에서 살면서 분위기에 빠져서는 몽롱한 상태로 살 때가 더러더러 있단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자질구레한 시름이나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잊어버리지.


오늘서부터 시험이겠구나.

네가 한만큼 결과는 나오겠지.

상록이는 여전히 학교 빼먹지 않고 잘 다니고, 성실함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지만 서두...

꽃순이는 여전히 엄마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더운 여름이 더 덥지만

마음은 따스하단다. 동물 하나로 마음이 따스해진다는 건 참 대단한 존재지?

네가 보내준 사진의 꽃, 물봉선화 닮았다는 그 꽃은

내가 보기엔 허브 종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다음에 그 꽃을 보면 잎을 하나 따서 냄새를 맡아 보거라.

박하향이 나면서 먹고 싶다면 맞을 거야.


우리나라 온 땅에 개망초꽃이 점령을 했어.

개망초꽃의 끈질김에 모두들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지만

엄마는 그 길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아서...

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는 엄마는 낭만이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낭만이 건강을 챙겨주는 것 같다.


개망초꽃의 나라 여기는 모두들 잘 있으니까

너도 끈끈한 섬나라에서 잘 적응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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