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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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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여자


BY 개망초꽃 2007-07-04

춘천 외삼촌집에 모여

거실에 이불을 깔고 다섯 여자가 누웠다.

올 봄에 황토로 지은 집은 넓었고,

창 위로 밤하늘에 달이 늙어가는 여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세월은 유리표면 같은 여자들을 들깨 뿌려 놓은 아줌마로 만들고,

주름 가득한 빨래판 노인네로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촌수는 다르고,

삶의 역경은 다르지만 한 지붕아래 누워 교실의 쉬는 시간처럼 떠들고,

소낙비처럼 와르륵 웃고 있었다.


다섯 여자들 중 누가 제일 불쌍하고 팔자가 세고 한숨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이런 화두로 돌아가게 되었다.

막내 이모는 건강을 잃어서 지금 자신이 제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하기에,

그럼 우리 넷 중에서 누구랑 이모 인생과 바꾸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모는 멀뚱하게 우리를 둘러보더니 바꾸고 싶은 사람이 없네, 한다.


다섯 여자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우리 엄마는 28살에 남편을 잃고

술 팔고 몸 파는 일만 빼고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호떡 장사부터 빌딩 청소를 육십살까지 했었다.

마음은 허허벌판처럼 외롭고

몸은 오래된 마대걸레처럼 치덕치덕 늘어져 있다. 

여배우 남정임을 뺨치게 예뻤다던 젊은 날의 엄마는 없고 빨래판  주름만 우둘우둘하다.


외숙모는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인 산골로 시집을 왔다.

외삼촌은 자기 멋대로 하는 무서운 성격의 소유자다.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너무 귀하게 여긴 탓에 세상에서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시다.

그러니 외숙모의 마음고생은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춘천에서 식당을 하셨고,

이제는 인삼농사를 하느라 하루라도 몸 편하게 누워 있지를 못한다.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하염없이 문제를 일을켜서 결혼은 했지만

결혼생활을 할 수 없고, 외숙모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곳에서 근신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 속 썩이는 것보다 자식 속 썩이는 게 훨씬 가슴을 난도질한다.

남편은 무시하고 안보면 그만이지만

자식은 평생 내 분신이고 내 일부분이라서 안볼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넷째이모는 시인이었다. 감성이 남달랐고 언제나 편지와 펜을 옆에 끼고 살았다.

넷째이모하면 떠오르는 것이 편지였다.

매일 편지를 쓰고 편지가 매일 산 고개를 넘어 날아들었다.

시골버스 안에서 이모부를 처음 만났다.

넷째 이모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땋고 다녔다.

그런 산골처녀에 반해 군인이었던 이모부는 버스에서 내리는 이모에게 주소를 적어 주었고,

그렇게 두 분은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을 했다.

서글픈 일은 이모는 이모부를 사랑했지만

이모부는 이모 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결혼의 인연은 따로 있듯이 사랑하지도 않는 이모와 결혼한 이모부는

항상 사랑하는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모부는 너무 가난했다.

방 한 칸도 넷째이모가 혼수대신 얻어야만 했다. 

사랑하지 않는 뜬구름 남자와 가난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남자.

넷째이모는 활달한 성격에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했지만 

불뚝불뚝 화를 못 참기도 하고, 감성이 메말라 글 한 줄 쓰지를 못했다.

지금은 그리 가난하지도 않고, 울화증도 없어졌지만

이모부는 지방에서 일을 하셔서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게 다라고 한다.


막내이모는 예쁜 공주다. 무엇이든 예쁜 걸 좋아한다.

속옷도 레이스 달린 걸 입고서 이것 봐라, 하면서 겉옷을 훌러덕 올려 보여준다.

내겐 이모 같지 않고 언니 같고 친구 같다.

막내이모부는 공무원이고 경기도에 땅도 많아서 먹고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두 아들은 성실하고 착하게 자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막내이모는 사십대 중반에 유방암에 걸렸다.

유방암 스트레스로 혈압이 생기고 당뇨가 같이 왔다.

매 끼니마다 한 움큼씩 약을 넘겨야하고, 매일 운동을 해야 하고, 식욕을 억제해야한다.

소설속의 정신병자 좀머씨처럼 온 동네를 걸어 다닌다.

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여자중 내가 제일 어리다. 나는 내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네 여자들은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젊은 나이에, 네 여자 입장에서 나는 젊다.

그 몸매에, 네 여자가 보는 눈에 나는 날씬하다.

그 얼굴에, 네 여자 입장에서 나는 아직 예쁘다. 

꽃 좋아하고 살림하는 걸 좋아하고 얌전하고 착한데 왜 혼자니? 한다.

내가 그런다, 너무 완벽해서 그래.

다섯 여자가 서로 얼굴을 보며 단비처럼 촉촉하게 웃는다.


건강을 잃으면 세상을 잃는다고 한다.

그래서 막내이모가 지금은 제일 힘들고 불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내이모는 어느 누구의 인생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여자도, 저 여자도, 조 여자도, 요 여자도 모두 고단했고 불행했고 불쌍해 보인다고 했다.


달은 창가를 지나 뒷뜰에 있는 전나무에 숨어 버리고 

새벽 세시까지 다섯 여자는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했다.

누구나 한두 가지씩 십자가를 지고 산다고 한다.

우리 다섯 여자뿐만 아니고

세상에 모든 여자들, 모든 남자들은 한두 가지씩,

서너 가지씩 쓰라린 상처와 슬픈 가슴으로 산다.


나도 네 여자들 중 누구하고도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좋다. 내가 행복하다. 내 주변에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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