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좋더라.
그래서 여기저기 창문 열고 커튼도 걷고 방안으로 햇볕을 들여놨더니
햇볕이 기분 좋구나, 하면서 내 방에서 뒹굴고 있어.
베란다 난간도 쓱쓱 닦아서 이불을 널고.
어제 사다 논 양상추랑 된장국이랑 해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다!
햇볕이랑 같은 마음.
컴퓨터로 조용한 노래를 틀어놓고 엄마 생각이 문득 나서 편지를 쓰고 있어.
어젯밤 꿈에 엄마가 나왔어. 어제 엄마랑 통화해서 그런가?
사실 어제 친구가 집에서 택배가 왔다고 얘기를 하더라고…….
집에서 반찬이랑 이것저것 진공포장해서 왔다고.
그 말에 괜히 심통이 나서 엄마한테 투덜거리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게 아닌걸 알았어.
어제 꿈에서 엄마는 나에게 작은 거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분주하더라고.
엄마 맘 아는데,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아.
반찬이랑 그런 거 여기서 잘해먹고 있으니까 보낼 필요 없어.
내가 김치 없으면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다 여기서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아! 숙주나물 무치는 거 물어본다는 걸 까먹었다. 싸더라고, 숙주가.
엄마랑 상록이랑 잘 지내면 나도 잘 지내는 거니까.
학교수업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수업도 있어. 일한 대조언어학이나 그 외 등등…….
학점인정은 안되지만 일본어음성학이 듣고 싶어서 나만 그 수업 들고 있는데, 꽤 재미있어.
날씨가 좋아서 친구랑 자전거 타고 공원갈거야, 네잎크로바 찾으러.
엄마도 좋은 하루되길 바래.
잎새달(4월). 21일
엄마, 일본은 날씨가 이상해.
햇볕이 쨍 하다가도 갑자기 비바람이 치질 않나
잔뜩 찌뿌렷다가도 쨍! 하고 빤빤하게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어.
오늘도 일어나서 커튼을 걷었더니 눈이 부실정도로 날씨가 좋기에,
밥 먹고 나가야지 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뭐가 날아다니는 거야,
아마 내가 베란다에 놨던 비닐이었나 봐.
놀래서 봤더니 비바람이 무섭게 불더라고,
아! 오늘 나가는 거 포기다, 하고 밥을 먹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 나가자고.
아! 글쎄, 금세 티 한 점 없는 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 있지?
어이가 없어서 웃길 정도라니까.ㅋㅋ
꼭 고등학교 때 나 닮았어. 베슬거리다가 신경질 내고 토라지고…….
뭐,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오늘도 자전거를 끌고 나들이를 갔다 왔다는 얘기.
요즘 일본은 ‘골든위크’라고 일주일 정도 연휴야
이때 축제나 전시회를 많이 하는데
우리 동네도 작은 전시회랄까? 축제랄까? 암튼, 꽃시장이 열리드라고
며칠 전부터 축제 준비하는 곳을 지나가면서 꼭 구경 와야지 했었어.
작은 화분부터 작품이라고 하는 것까지 이러쿵저러쿵 하는 꽃들이 많더라고
봄꽃이란 봄꽃은 죄다 들고 나온 것 같아.
흔한 장미부터 엄마가 좋아하는 수수한 보라색 꽃들이 잔뜩 있었어.
내가 하려는 말 짐작 했으려나? 엄마 생각이 나더라는 이 말씀이야.ㅎㅎ
보랏빛 꽃이 핀 화분을 살까말까 들었다 놨다 했는데, 살걸 그랬어.
우리나라 돈으로 7~800원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 화분이 눈앞에 약을 올리네.
여긴 특산물이 꽃이야.
진짜 신기한 게 일산도 꽃으로 유명하잖아, 매년 꽃 박람회도 하고
나고야랑 일산이랑 닮아 있어. 신기하지?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꽃을 많이 길러, 종류도 색도 다양하고.
지나갈 때마다 이름이 뭘까? 하면서 꽃만 보면 꽃처럼 환하게 웃던 엄마가 떠올라.
그래서 우리 개 이름을 꽃순이라고 지은 거고…….
꽃순이에게 안부 전해줘~~밥 잘 먹고, 상록이랑 싸우지 말고,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며칠 전 공원에서 갈색푸들을 만났어. 꽃순이를 만난 것 같아 달려가 안아줬어.
꽃순이가 온 몸을 내던져 날 반기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그르르 돌더라.
여기 사람들은 답답할 정도로 느긋해. 일본사람들의 특성인 것 같아.
융통성도 없고, 이건 성격이 좋은 건지 매사에 술렁술렁.
학교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힘겹게 낑낑대며 천천히 오르고 있었어.
신호에 걸려서 뒤를 봤더니 글쎄! 내 뒤로 자전거 행렬이 쫘 악~~
그것도 교복 입은 애들 무리,
아니, 여태까지 천천히 올 동안 뒤에서 소리 한번 안내고 그냥 온 거 있지.
순간 완전 민망해져서 옆으로 비켰더니 내 앞으로 슉슉 지나가는데,
그 행렬이 개미 줄처럼 끝이 안보이더라고,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청해졌다니깐.
그럴 땐 말을 해야 서로 맘이 편하잖아.
원치 않게 한 사람을 장애물로 만들다니…….
남을 배려하는 건지 느긋한 건지, 뭐…….일본의 특성이겠지만서도…….
자전거로 등교하고 출근하는 게 일반적인 일본인데도
여기가 좀(많이 시골은 아니라는 뜻, 헤헤)시골이라 그런지
길이 좁아(인도겸 자전거길) 자전거 한대면 끝.
그러니 매 아침마다 자전거 행렬이 개미 줄처럼 생길 수밖에 없겠지.....
온지 한달밖에 안돼선지 매일매일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돼.
좋구나 하는 점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불편한 것도 있고 그래.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과연 한국인인가 했었는데, 살아온 환경이란 게 대단해,
아무리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라 해도 한국에서 사는 게 더 나은 거 같애.
외국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이 딱이네.
연분홍이었던 4월도 마지막이야.
벚꽃은 지고, 이젠 색색의 철쭉이 피어있어.
여기선 개나리를 보기가 힘들어.
우리나라는 학교 담장에도 개나리가 팔이란 팔은 다 들고 아는 척을 하는데,
개나리가 너무 흔해 매 끼니때마다 밥 먹는 것처럼 식상해서
가끔은 피자가 먹고 싶고, 기름에 팔팔 튀긴 닭이 먹고 싶듯이 개나리가 두 눈에 삼삼해.
민들레나 토끼풀은 많은데 말이지.
5월의 일본은 또 어떤 색일까?
학교 수업 듣느라고 힘 빠지고 지쳐있다가도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면 왠지 웃음이 실없이 나서
내일도 힘내야지, 하곤 해.
어떤 크레파스로도,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 못할 맑은 하늘을 보면 기분이 맑아져.
엄마도 지칠 땐 하늘을 봐봐
아마 엄마랑 같은 시간에 나도 여기서 하늘을 보면서 힘내야지, 하고 있을 거야.
2007년 잎새달, 마지막 날 밤.
엄마랑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 딸내미가.
덧붙임: 꽃시장에 갔는데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튤립 꽃잎을 쌓아 놨드라고
기념 삼아 몇 닢 가져와서 말렸더니 색이 요상해졌어.
꼭, 떨어져 시간이 많이 흐른 목련꽃잎 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