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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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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지라도...(11)


BY 개망초꽃 2007-04-20

 

어제는 기찻길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기찻길로 놓여진 풀밭 길엔 풀꽃이 여릿여릿 피어있었습니다.


냉이 꽃이 긴팔을 높게 들어 하얗게 흔들어줍니다.

유년시절부터 우린 친분관계가 도타웠습니다.

겨울 매운바람에도 햇볕이 잘 드는 밭가장자리에

냉이는 납작 엎드려 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봄이 와서 너무 좋은가봅니다.

하얗게 손을 흔들다가 온 몸을 흔들어 내 품에 와락 안겨 듭니다.


꽃다지 꽃은 냉이와 사촌인 듯 합니다.

아니, 배다른 자매 같습니다.

꽃피는 모습이나 꽃 모양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똑같습니다.

다만 색깔만 다릅니다.

냉이 꽃은 하얀색이고 꽃다지 꽃은 노란색입니다.

꽃다지 꽃은 무리지어 피어 있을 때

5미터쯤 떨어져 보면 정말 아련하게 예쁩니다.

기찻길 가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다지 꽃을 5미터쯤

떨어져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기차를 타고 끝없는 평행선을 따라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

창밖 풍경에 나를 온전히 맞기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민들레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납작한 단추 같습니다.

노란 가디간에 민들레 꽃 단추를 달고 출근을 하고 싶답니다.

출근길 도로 가운데 화단에는 온통 민들레, 민들레, 민들레 꽃밭입니다.

누가 심었을까요? 아닙니다, 지들끼리 짰나봅니다.

“대한민국 화단을 점령하자~~!!”ㅋㅋ

협동심은 민들레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꽃마리 꽃은 보랏빛이 도는 하늘색 꽃입니다.

봄 풀꽃들 중에 작은 편에 속하는 꽃마리 꽃은

풀밭에 앉아 들여다보아야만 보일 겁니다.

꽃마리는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타나 봐요.

그러니까 관심 끌려고 그렇게 작고

그렇게 앙증맞고, 그렇게 고운 빛을 갖고 있겠지요.


봄맞이 꽃은요?

고만고만한 봄 풀꽃 중에 유난하게 희고 얼굴이 큰 편입니다.

고개를 길게 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뽀오얀 피부를 갖은 봄맞이꽃과

눈을 마주치면 누구나 첫눈에 반할 겁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봄맞이꽃은 바람둥일지도 몰라요.

바람둥이고 싶지 않은데

뭇 사람들이 한번만 보면 그 자리에서 건드리고 싶을 텐데…….

봄맞이꽃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예쁘게 태어난 게 잘못이지…….안 그래요?


목련꽃이 툭툭 떨어져 바닥에 낙엽처럼 깔려 있네요.

그래도 낮은 곳에 꽃몽오리가 있어 한 개 슬쩍 훔쳐 왔어요.

목련꽃 차를 만들어 마시고 싶어서요.

찬 물에 목련꽃잎을 한 잎 한 잎 따서 하루 동안 담가 놓으세요.

그리고 티백 녹차 해 먹듯

꽃 잎 한 장을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한 모금씩 마셔 보세요.

그 은은한 향기가 입 안 가득 번질 겁니다.

봄을 입 안에 돌리고 가슴으로 흡수해 흐르듯 놔 둬 보세요.

그 향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사랑이 이럴 거예요.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을 나 혼자만 따서 손에 꼭 쥐고 입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더듬어

결국은 사랑의 향을 흡수해 평생 내 곁에 두고 싶은…….

두고두고 이어지는 추억 한 자락이 되는…….


봄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비어 있는 잼 병에 꽃다지, 냉이, 꽃마리, 봄맞이를 꽂아 책상에 올려놓았어요.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니

꽃잎들이 꽃병 아래 떨어져 있어

입으로 훅 불어 날려 버렸어요.

더 떨어질까 봐 휴지통에 대고 꽃 머리를 강제로 흔들었더니 꽃잎이 샤르륵 떨어지더군요.

풀꽃은 약해 벌써 기운이 없는 꽃이 많아졌어요.

목련차 한 잔 타 놓고,

풀꽃과 마주 보며 한 모금씩 한 모금씩 향기로운 사랑을 가슴 깊이 흡수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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