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우스처럼 생긴 와이셔츠를 입고 논 밭을 누빈다는 남자 봤냐고
말 잘하는 우리동네 이장님은 늘 울 남편을 쫒아다니며 성가시게 한다고 법석이었다.
하긴 목단보다 더 풍성한 꽃잎이 등판에도 한 두어송이 피어있고
앞주머니에 담배 넣은 곳에 아예 주먹만한 꽃 한송이를 매달리게 보이니 영낙없이
봄에 입는 아가씨 블라우스인데, 남편은 이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논 밭을 누비면 울 이장님은 트럭을 몰고 쫒아다니면서 난리다.
오늘은 뭔 패션인 겨?
머리는 언제 짤를 건 감?
남편은 또 성가시게 군다고 틱틱 그러면서 그런다.
내비둬유? 아! 형님은 별 걸 다 상관하고 다니는 겨? 안 바뻐유?
그렇게 삼 사월이 젤로 바쁜 여기는 수박이며 딸기며 나물농사를 하는 통에 일손이 늘 부족한데. 그럴 때마다 우리집 마당에 한달음에 숨가쁘게 들어 오셔서는 불러대는 이름이
여이~~ 꽁지도사 있어? 있으면 대답 혀 ?
무슨 숨박꼭질 해대는 아이들 같다.
왜유~~ 남편이 대답하면
밝은 얼굴에 얼른 우리 하우스 일하러 가자고 보챈다.
난처한 얼굴이다. 남편은...
가면 뭘하나 일도 상머슴 부려먹듯이 시키고 요리빼고 저리빼는 다른 일꾼들은 용케 잘도 빠져나가는데. 남편은 이런 재주가 없다. 그래서 할 수없이 붙들려 가는데. 작업복이 잔잔한 꽃무뉘가 박힌 파아란 몸뻬바지에 목단 블라우스를 입으니 울 이장님이 아연실색이시다.
아니 일옷이 그렇게 없어? 무신 새댁같이 머리는 묶은데다가 옷은 그게 또 뭐여?
한 소리도 한토씨도 안틀리게 그 말을 또 하면 남편은 이런다.
그럼 일 안해도 괜찮아유? 마주보고 대답하니 그제야 이장님 일손이 아쉽지, 일꾼 패션이 무신 문제가 되냐고 또 그러시는데. 옆에서 보는 난 늘 뒤에서 웃곤 했다.
새참은 이장님이 직접 해다가 주시는 가보다.
남편은 막걸리 한 사발에 묵은지에 돼지고기 숭숭 썰어놓고 거기다가 손두부 넙적넙적하게 썰어넣어서 팔팔 끓이면서 연신 그러신단다.
야야... 니 이발비는 내가 책임질 께. 잉..지발 그머리 좀 풀고 짤라라...! 글고 니가 무신 십대냐 이십대냐? 인제 오십이 넘어가도 한 참인디 동네가 다 챙피스러워서 내사 망측한 겨....
새참 시간에 그 말듣고 또 듣는 애기를 남편은 모른척이다. 아예 남의 일처럼 모르쇠가 되었다. 형님 그냥 내비둬유..이렇게 살다가 가도 문제 없슈.....
그래도 이장님은 또 그 말씀 하신다.
남편은 똑같은 대답은 여전하다.
그렇게 오년이 지났다.
지금은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이장님은 작년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분이 하시던 비닐하우스가 우리집앞에 있는데. 농사는 다른이에게 넘겨주었는데.
이 분이 우리집에 오셔서는 불러대는 이름이
꽁지 도사님 어디 계셔요? 이런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돌아가신 이장님 목소리와 비슷한 것이다.
남편도 후다닥 문을 열었는데. 못 뵈던 분이다.
그런데 이장님처럼 키도 작달막하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이다.
누구세요?
저기요 강한철 이장님이 울 아버지 신데요. 어머니가 하우스 일 좀 도와 달라고 심부름을 왔어요...
남편은 멍하니 쳐다보았다. 강이장님 아들을 보니 그제야 똑같이 생긴 모습이다.
그제야 남편은 작업복을 찾아 입었다.
그 파아란 꽃무뉘 몸뻬바지에 목단꽃 블라우스를 입더니
아들에게 그랬다.
강이장님이 이 옷을 디게 좋아 했거던...
심부름 온 아들이 피식웃었다.
남편도 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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