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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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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가방


BY 일상 속에서 2007-02-24

 

“아빈아! 미리미리 학교 갈 준비를 해야지.”

어느덧 중학생이 된 아들의 입학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월말부터 입학 통지서가 오기 전인 2월 14일까지 태연한 아들과 달리 나는 마음이 조급하고 좌불안석이었다.

그동안 교복이 비싸다는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건만 이제는 내 일이다 싶으니 교복에 관련된 일이면 뇌신경 안테나가 그쪽으로만 쏠렸다.

매스컴을 통해본 교복 값은 내 능력을 한참이나 벗어났기에 줄줄이 비엔나 쏘시지의 이어 붙은 꽁지처럼 한숨이 쉼 없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70만원에서 100만원이상씩이나 한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지. 속으로 이런저런 신세한탄을 하던 나는 전단지로 날아온 유명 교복 매장으로 전화를 했다.

“교복 값이 얼마나 하나요?”

조심스런 나의 질문에 상냥한 목소리의 점원 아가씨가 대답했다.

“네, 요즘 방송에서 너무 요란하게 떠들어서 다들 걱정하시는대요, 매스컴처럼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26만원이면 사거든요...”


아가씨 말처럼 방송에서 보고 들은 것보다는 저렴했지만 요즘같이 힘들 때, 무능력함에 최고봉인 우리 부부에겐 26만원 한다는 교복 값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교복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지켜보던 아들 한다는 말이,

“엄마, 인터넷에서 중고 교복도 판다던데... 저는 중고도 괜찮아요.” 한다. 요즘 아이들은 메이커 아니면 상대도 안한다는데, 아들의 말이 대견하고 고맙다기보다는 부모 된 도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측은하고 미안했다.

결혼 15년이 되도록 늘 퍽퍽한 생활비를 그나마도 불규칙하게 조금씩 대주던 남편이 그나마도 못 준 것이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든다.

생색 좋게도 허울뿐인 자영업자 ‘사장님’인 남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앗! 뜨거.’ 하는 느긋한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 나는 우물에서 숭늉 찾고 번개 불에 콩을 볶아 먹는, 개를 줘도 안 가져갈 못된 성질을 지녔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뭘 어쩌기도 전에 후딱 모든 일처리를 해대고 말았으니 남편의 무능함이 어쩜 나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아끼고 안 쓰며 모아뒀던 비자금도 바닥을 들어 낸지 오래다.

몸이나 건강해야 남들처럼 식당서 설거지라도 할 텐데 한심한 나는 몸마저도 변변치 못해서 37년 동안 크고 작은 아픔으로 받은 수술이 벌써 열손가락을 채웠으니... 한심한 딸을 둔 내 엄마는 지금도 두 다리 펴고 주무시지 못할 것이다. 틈틈이 생긴 돈을 아무도 몰래 통장으로 보내주시지만 불효막심한 나는 “미안해 엄마...고마워”라는 말 몇 마디가 고작...피 같은 엄마의 돈은 밑 빠진 내 생활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월세 날은 어쩌면 그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공과금에 아이들 교육비등으로 나는 늘 정신이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줄일 것도 없다. 먹는 것도 점점 부실해진다. 그나마도 김장 때 친정서 가져온 김치와 쌀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니 시대와 뒤떨어지게도 ‘보릿고개’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새삼스런 생각마저 든다. 남편에게 되지도 않는 사업 때려치우고 남의 밑에서 일해보라고 권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누워있던 남편은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곤 한다.

커가는 아이들의 눈과 이웃들을 생각하며 참았던 것이 어느 순간 터져버려서 이불을 재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당신이 가장으로써 대접받기를 바라면서 그 잘난 가장의 도리가 뭔지 생각은 해 본 거야?! 우리가 지금 사는 게 사람 꼴이냐고!!!”

악에 받쳐 눈물에 콧물까지 흘려대며 떠들어 대는 나를 보고 내 남편은 녹음기라도 켜놓은 양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한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기다려봐. 그 동안 내가 벌어 먹였지. 굶겼어? 취직하기는 쉬운 것 같으냐? 어쩌든지 내가 해결해야지. 누가 도와줬어?!”

뭐 낀 놈이 성낸다고 자기도 할 말이 있다고 되받아 치는 말들이 나의 염장을 제대로 지르고 만다.

누가 도와 줬냐니...

그동안 처갓집에서 물심양면으로 받은 것이 얼만데 공 없는 소리를 뱉어내다니... 부부싸움이 그렇듯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의 언어폭력은 내가 탈진 될 때까지 계속 된다.

상황이 그쯤 되면 남편은 언제나처럼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면 집으로 전화해서 나의 상태를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우리 부부가 아닐 수 없다.

빙빙 돌아가는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런다고 뭐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지도 사람인데 생각이 없을까...누굴 탓해... ’하고 후회를 한다. 언제나 되풀이 되는 일상들에 지친다.

어쨌든 근근이라도 살게 해주는 남편의 고마움을 나또한 그 동안 잘 몰랐기에 알게 모르게 무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벌 받나...모두 내 죄다.


어쨌든 늘 고민 많은 제 엄마를 지켜봤던 아이들이기에 남들보다 철이 일찍 들어버린 것 같다.

교복을 준비하고 보니 주변에서 가방과 신발을 운운했다.

남들보다 월등하게는 아니더라도 중간은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며칠 전에 아들에게 가방을 사러 가자고 했더니 아직 쓸만하다며 한번 빨아주기만 하면 된단다.

역시나 미안했지만...사람이 살면서 늘 잃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이런 궁핍한 생활 속에서 돈이며 물건에 대한 중요성 하나는 제대로 깨칠 수 있을 거야, 하고 내 자신을 위로하며 아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난 그동안 내가 남들 이상으로 가정적인 엄마라고 자부하며 살았다... 분수도 모르고 자만했던 것 같다.


빨아 줄 테니 가방을 세탁기 속에 넣으라는 나의 말에 아들이 따랐다. 나는 세탁기 속에 들어있는 가방을 1시간가량 세제 물속에 불렸다가 돌려, 건조대에 널어주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 말랐을 가방을 얘기하며 입학식 때 가져갈 준비물을 챙기라고 아들에게 말했다. 나의 말에 “네, 엄마.” 하던 녀석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에서 멈춰서 더 이상 미동이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운 채로 노파심에 입으로만 잔소리를 했다.

“너 뭐하니. 가방 챙기랬더니!”

“네. 하고 있어요.”

“뭘 하는데 그렇게 가만있어?!”

“뭐 좀 하고 있어요. 엄마 나오시면 안돼요. 그냥 제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엄마는 분명히 준비물 얘기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아.”

“네.”

거실이라고 말하기도 손바닥 만 한 곳에서 녀석이 뭘 하는지 연실 대답뿐이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만사 귀찮은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20여분쯤 지났을까, 녀석이 히죽거리며 가방을 들고 와서는 준비물 챙긴 가방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처음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가방 속 간단한 준비물뿐이었다.

중학교 교가 인쇄물, 필기도구... 그것이 전부였다. 그 간단한 것을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니 한심했다. 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필기도구 싸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렸어?!” 라고 언성을 높였다.

성난 나의 목소리에도 녀석은 처음 들어올 때처럼 여전히 히죽거리는 얼굴로,

“짠!!! 어때요 엄마?” 하더니 가방의 손잡이 부분을 보였다.

내 눈 안으로 연한 회색 가방 한쪽에 진한 회색 실로 10cm쯤 엉성하게 꿰매진 부분이 들어왔다.

녀석은 서툰 바느질 솜씨로 20분 동안 터진 가방과 씨름을 하고 있던 거였다.

그것도 미리 눈치 체지 못한 무정하고 무능력한 나는 잔소리도 모자라서 신경질을 부리고 말았다. 눈물이 핑...돌았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실이 안 보이게 꿰맸어야지. 이게 뭐냐...엉성하고 삐뚤빼뚤... 다시 꿰매와.”였다.

“엄마, 이것도 멋이죠. 괜찮아요...에휴...난 칭찬 받을 줄 알았더니...”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된 녀석이 힘없이 가방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난 녀석이 나가고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곤,

“이제 보니까 우리 아들 바느질도 할 줄 알고 다 컸네.” 라고 했다. 녀석이 다시 입을 헤벌리고 들어와서는 “정말요?! 엄마 저 정말 잘했죠?” 한다.

작은 말 하나에 기뻐하는 녀석... 그 쉬운 것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나...

행복은 분명 멀리 있는 것이 아니건만... 아이들 건강하고 밝게 크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일진데 난 순간순간 그 사실조차 망각하곤 한다.

지금도 내 눈 닿는 곳에서 녀석의 바느질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가방의 그 부분이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변변한 졸업선물도 못해줬는데...

어쩌든지 가방하나는 준비해줘야 할 것 같다.

어쩌든지...

내 나이 이제 37세...

어쨌든 아직은 젊기에 기회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희망마저 놓칠 순 없다.

앞으로 우리 가정사에서 복된 일만 생긴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삶을 마음바탕으로, 자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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