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 둘을 옆에 끼고 함께 동행하는 순간은
어찌나 마음이 든든한지 저절로 가슴이 쫘악 펴진다.
어디 그 뿐이랴...
어깨에 힘이 팍 솟는 것이 마치 보디가드를 양쪽에 세워놓은 듯한 기분이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어떤...뿌듯함, 즐거움...등등의 감정이 동시에 생겨난다.
175cm이상 되는 두 녀석을 양쪽에 세우고 다니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 두 녀석을 어려서부터 키워주신 친정엄마의 산소로 향하는 길
어느새 엄마 가신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젠 가슴 속 슬픔이 잔잔히 출렁이는 걸 보면 모든 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작년만해도 아직 채 슬픔이 가시질 않아
아픈 가슴 속 눈물이 먼저 앞서 뿌연 차창 바라보며 이 길을 달렸건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슴 속 슬픔이 점점 잦아들었듯이
내가 사는 도시의 모양새도 많이 변하였다.
그 사이 市에서는 \'불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네온장식이 생겼고
우리 동네 교차로 한 켠 바위산에는 인공 폭포수를 만들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게 하여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밤이면 오색 등을 밝혀 묘한 음산함에 \'귀곡산장\'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지나는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한숨 돌리고 가는 곳이다.
큰 아이는 작년 여름에 집을 떠났으니
어쩌면 그 광경을 보지못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얘~
저~기에 분수대가 생겼는데 넌 봤니?\"
\"웅~전에 봤어~\"
흠...이미 봤다고...맥 풀리네...
둘 사이의 대화를 뚫고 둘째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뭐?
저게 분수대라고??
엄만 저 폭포수가 분수대로 보여??
하여튼 울 엄만 무식해~!!\"
어라...
그러고보니 내가 왜 폭포수를 분수대라고 말했을까...
이젠 내 입이 거짓말까지 하네...
\"넌, 엄마가 분수대와 폭포수를 구분할 줄 모르셔서 그케 말하시겠니~
이젠, 엄마 나이가 그런 때이려니 생각하고 분수대라해도 폭포수려니하고
우리가 알아서 새겨들어야 할 때이지 않니~\"
짐짓 미소를 잔뜩 머금고 나즉하게 엄마를 놀리는 큰 아이...
\"엄만, 작년에도 왕의 남자 영화 볼 적에 연산군을 광해군이라 말해줘가지고
그대로 말했다가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무식한 애가 된 줄 알어?
기냥 내가 뒤집어썼다고요~
엄마 무식하다고 안하려고~\"
때는 이 때다 하고 그간 쌓인 나의 건망증 비화를 들춰내는 둘째 아이...
두 녀석이 킬킬거리며 조목조목 내 아킬러스건을 쿡쿡 찔러댄다.
큰 아이는 엄마 나이를 이해해라, 이젠 그러실 때가 된 모양이다,
둘째는 우리 엄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한다...등등
난 웃음보가 터져 두 녀석의 이야길 제대로 들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차차!!
어이하여 마음과 입이 따로 놀게 되었더란 말이냐...
너희들도 내 나이 되어봐라...
옛날에 엄마가 이따금 엉뚱한 말씀을 하시면 내가 꼭 토를 달았었지...
엄마! 그게 아니잖아~뭔 말씀이여 시방!!
그럴라치면 엄마는 입이 거짓말한다고 웃으셨었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분명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입이 엉뚱한 말을 하고 만다시며...
시어머니도 아들들 중 누군가를 부르실 적엔 다섯 아들 이름을 모두 차례로 부르셨었다.
그래도 정작 당사자는 잘도 알아서 대답을 하곤 했었지...
그 땐, 왜 그럴까 고개를 갸웃하며 그 분들의 변명 아닌 변명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불러 준 숫자를 틀리게 쓰시며 손이 거짓말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몰랐었는데
이젠 내 나이가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나...
큰 애 이름을 부른다면서 연거푸 둘째 녀석을 부르고 있는 나...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어느새 나도 예전 엄마의 \'그런 나이\'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손에 차키를 들고 한참을 뱅뱅거리며 찾아헤매는 나이...
아침에 메모해 둔 쪽지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책상 위를 온통 헤집는 나이...
예전엔 전화번호를 죄다 외우고 살았는데 이젠 폰에 저장해야만 되는 나이...
난 어느새 엄마의 건망증과 망각을 이어 받은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나보다...
설마...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찾으러 돌아다니진않겠지...
섦마...세탁기에 넣어 돌리진 않겠지...
또 한 번의 설이 찾아와 착잡한 심경으로 달력을 쳐다보며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싫어
떡국도 안 먹고 열심히 내 나이를 헤아려 본다.
이젠 살아 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어진 나이...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조심스레 행동을 해야만 하는 나이...
그 버거운 이름 앞에 이대로 주눅이 들어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내 앞에 남아있는 생을 더 멋지게 더 아름답게 엮어가기 위해
속으로 외쳐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야~!
지금부터 시작이다~!!!
알차게, 힘차게, 아자아자~!!!
**올 한 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과 행복이 넘치는 일상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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