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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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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BY 루나 2007-01-08

도무지 집안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누가 딸을 결혼 시킨후말그대로 가슴이- 하다..”라고 표현했는데 가만히 보니 여자쪽은 즐거움을 만킥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쩌면 속마음을 감추려 신바람나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던 결혼발표가 있은 작년 10 이후 몇달동안 시쿵둥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학기 말이라 더욱 바빴던 학교일은  절실하게 쉬고 싶었고  방학하자마다 미리 예약하여 두었던 호주의 남단 적은 타즈마니아  있는 친구집에 남편과 함께 8 9일로 갔다가  한해가 끝나는 돌아왔다.

한동안 쉬어 괜찮을까 싶더니만 다시 시작이다. 다른 것은 정상인데 집안일만 손에 잡히질 않는다. 지독히 게으르고 싶은  핑계감을 제대로 ㅤㅊㅏㅊ은 셈이다.

남편의 도시락은 북어국밥같은 인스탄트로 대신 하여주고 김치도 떨어진지 오래고 3가지로 만족해 하던 반찬은 숫자가 줄어들고 라면이 곧잘 단골손님으로 오기도 하였다.   

 

드문불출과 함께   남들과 대화가 거의 단절되고  멀뚱히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이유는  결혼한다는 광고를 일제히 하고 이웃 가까운 집에 갔더니만  예단은, 여자아이에겐 무엇을 사주어야 하고. 여자엄마께는 무엇을 …”. 우아, 한국의 전통을 이야기 하시는데 너무 정신없이 복잡하였다.  그대로 할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통에 메이기에는 우린 서로 한국을 떠난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몇살인데, 교민인가. 어디서 살건데..  . 몇마디씩만 비슷한 것을 물어도 대답하는 나의 입장은.  짜증나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대답하는것이 별로 흥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 날짜가 이번 토요일로 닫아왔다.  걱정이 이웃들의 전화가 잦아졌으나 이제는  몇일만 있으면 되니까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이제는 모든 준비가 거의 마칠때이고 실질적인 것에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줄 아니까.

 

예식은 여자아이가 유치원부터 다닌 사립학교 체플에서 하고싶다하여 그러라 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그곳에서 결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피로연은  어른들이 하는 곳을 늦밤까지 빌려  저녁에 친구들과 따로 하기로 하였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지 다른 곳에서 하겠다고 우겨 한참을 싱겡이하다 그러라고 아들이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식으로 맞추어 하려하는 것도 사실 무리일수가 있기는 한것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다.

 

나엮시  둘다 학생이니 신분에 맞게 가장 가난하게 하라고 하였지만  올케들의 공식같이 늘어 놓는 설에  헥가닥하여  남들 하여주는대로 따라주어야 했다.

엮시 딸아이를 갖고 있는데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한다면 전혀 한국전통을 무시할수도 없고 섭섭하게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휴가가기전에 반지들을 맞추어 주었다.

옷과 화장품도 사주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아이의 엄마한테 전화하여 사주라고 하였다. 나는 옷이든 무엇이든 거금을 들여 본적이 없어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가 의류계통의  무역을 하기때문에 그런것에는 나보다 훨등히 나을것은 말할나위가 없었다.  

 

시집 보내기도 서운하겠지만 아들 장가보내기도 마찬가지인것 갔다.

데리고 있는다고 하여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것 같아 한국청년들 군대간 요량하며 고생하면서 생활력을 길려보라는 마음이였는데  막상 날이 닫아오니 그동안 못해준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이상하리라 만치 내가 감당 할수 없게 마음이 변덕을 부린다.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초심을 잃지 말고 지혜롭게 하라

아이들이 연애하여 결혼하면 사돈간에 오해도 생기고 안좋은 감정도 생기니까.”

안하기로 하였던 예단이 화근이 되어 친구한테 푸념을 하였을때 들은 말이다.

 

초심은 시원섭섭 함이였다. 커다란 빨래 안해도 되고 파트타임하며 넉넉지 않아 조금씩 주던 용돈 주지 않아도 되고 이제나 저네나 들어오나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의지가 없다며 투덜되며 인상쓰는 남편의 모습보지 않아도 되고.

숨을 씩씩대며 먹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고. 때로 퍼질러 자는것 보지 않아도 되고.

조금 있으면 모든 것들이 그립기도 할터인데 말이다.

이번 한주가 어쩌면 힘든 시간으로 느껴지것 같다.

아직도 할일들이 분명 있을텐데 무엇을 하여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니 움직이기가 싫다는 것이 정확할것이다. 쉽게 만들수 있을것 같아  결혼순서지를 내가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 보려니 그도 쉽지 않아 숫하게 여러장 프린트를 하여 여자집에 보내니 그곳에서도 지적사황이 있었다. 아니 다른 의견을 제시하여 준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스크에 담아 바꾸고 싶으면 바꾸라고 하고는

일단 나의 일을 마무리 짓는다.

 

목요일에 딸아이가 올라온다. 이럴땐 아이가 하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변변한 옷이 없어  금요일에 옷을 사입혀야 하고 피로연장에 가서 테이블 셋팅하여야 한다. 그리고  결혼식장에 한번 들여다 보려한다.  

예복빌리는 곳에서 머리는 서비스로 하여 준다고 하였지만 단체로 가서 벅적되는 것이 싫어 딸아이가 집가까운 곳에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부산이모께서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 한복을 입고 몇시간 지내면 일륜지 대사를 마칠수 있을것이다.

엄마 결혼식날 울거야?” “울긴 우냐, 너가 장가간다고 성이 바뀌냐? 오는 아이의 성이 바뀌는 것이지”. 그리 말은 하였어도 어느 부모가 자식출가 시키며 갖는 느낌을 엮시도 받고 있는것이다. 더도 덜도 아닐 그들 만큼 충분히 받고 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