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사 남매의 맏이이다. 남편, 시동생 둘, 나와 동갑인 시누이. 남편과 나는 나이 차이가 좀 있기 때문에 두 시동생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다. 작은 시동생은 착하고 약간 철이 나질 않아서 미워할 수는 없으나 가끔 답답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늘 상 동생 같이만 보인다. 똑같이 철이 덜 난 동서와 투닥투닥 거리면서 나름대로 부지런히 살고 있다. 큰 시동생은 고지식한 성격이라 말 수도 적고 무엇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른다. 덕분에 동서는 사는데 영 재미를 못 보니 옆에서 보기에 늘 딱하다. 결혼한 다음 해 추석 전 날에 봉화산자락 끝에 사시던 시댁에서 아침 준비를 돕고 있었다. 몇 개월 차이로 먼저 결혼한 동서는 허니문 베이비가 들어서는 바람에 먼저 낳은 조카녀석을 젖 먹이느라 방에 들어가 있었고 나는 출산을 두어 달 남겨 놓고 있었다. 송편을 빚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솔잎이 모자를 것 같다 시며 어머님께서 식전 일찍 산에 다녀오셨다. 어머님께서 가시고 잠시 뒤에 따라 올라갔던 큰 시동생이 어머님을 못 만나고 어머님 보다 한참이나 뒤에 내려왔다. 부드러운 바리톤의 목소리를 가진 이 말 없는 시동생이 차분하게 식탁에 앉더니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엄마, 보셨어?\' 그 말없는 시동생이 아침부터 부엌에 앉아 엄마를 부르니 나는 참 신기해서 자연히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시면서 눈치를 주고 계셨다. (오잉? 무슨 일? 비밀?) 궁금함이 속에서 발동하는 차에 시동생이 묻는다. \'왜요?\' (저런 눈치하구는.... 나중에 여쭤 볼 일이지.) \'느이 형수 임신 중인데...\' (뭐야, 나에 관련된 일? 아님 무슨 안 좋은 일?) 어머님께서 마지 못해 대답하시며 말꼬리를 흐리시니 나는 속으로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어머님과 시동생을 번갈아 쳐다보며 답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왜요? 무슨 일인데요?\' 하기에는 아직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시집살이 초기인지라 그냥 고개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조용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이 아침부터 옆구리 붙잡고 웃을 일이 생겼으니......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큰 시동생이 본래도 크지 않은 목소리를 더 낮춰가며 조심스레 던진 대사가 이러 하였다. \'왜~? 임신한 사람은 목매고 자살한 이야기 같은 거 들으면 안 되는 거야?\' ???? ....... !!!!! --;; 청명한 가을 하늘이 빛나는 명절 전날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무슨 사연 있었을까 하고 가슴 아파할 줄 모를 만큼 예의가 없거나 인간미가 없는 집안이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무뚝뚝하신 시아버님도 남편과 신문을 나눠 읽고 계시다가 \'저- 저- 자 좀 봐라\' 하고 웃으셨다. 나는 나이도 더 많은 시동생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서 마음 놓고 웃지도 못하고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때마침 조카 젖을 다 먹이고 방에서 나오는 동서를 핑계 삼아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보니 이 고지식한 형광등 시동생은 그제서야 머리 속에서 상황이 정리된 표정이었다. 가족들은 자꾸 돌아가며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동서는 영문을 모르겠고. 그 때 어머님이 동서에게 하신 한 말씀 \'OO아! (우리 시댁은 며느리, 사위를 이름으로 부르신다.) 너 우리 OO하고 사는 거 참 재미나겠다. 그치?\' 그 날 아침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온 식구가 소리 내어 웃은 그 아침. 사고 당하신 분과 가족에게는 지금도 미안하지만..... 헌데 이 무뚝뚝한 집안을 한방에 웃겼던 시동생은 지금도 농담 한마디 할 줄 몰라서 똑같이 고지식한데다 착하기까지 한 동서와 심심하게 살고 있다. 동서는 가끔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아주버님은 가끔 농담도 하시잖아요...\' 그러면 사실 나는 아주 발이 저리다. 그렇게 점잔 떠는 시아주버니가 사실 집에서는 얼마나 웃기고 까부는지(?) 실토 할 수도 없고 하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