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작약꽃
장미나 동백의 많은 꽃잎보다도 훨씬 많은 꽃잎들로 뭉쳐있는 작약은 포니로즈라는 이름으로 호주의 가장 아래지역 멜보런, 기온이 차거운 일정한 지역에서만
재배된다고 한다. 꽃 피는 기간도 아주 짧게 1달정도로.
그 이유로 가격은 다른 꽃에 비하여 3배 정도로 비싸다. 시드니에는 시내의 어느 큰 백화점 꽃센타에서 간혹 비슷한 꽃이 나와 있는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작년부터인가 프레밍톤 꽃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먼곳에서 배달되어 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재배가 잘 되지 못한 탓이였을까? 한국에서 보던 앙증맞고 예쁜모습
ㅤㅊㅏㅊ아볼수 없이 힘없이 활짝펴버린 커다란 꽃송이의 꽃잎들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질것 같은 쓸쓸힌 느낌을 주었다.
세월을 흐름속에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움안에 감추어 두었던 꽃이 였는데.
오늘 아침 함께 일하는 분이 출근길에 프레밍톤 꽃시장을 들려왔다.
2주에 한번 꼴로 가시는데 근래에는 거의 백합을 사오더니만 오늘은 백합과 함께 작약을 사왔다. 딸아이 미술선생의 그림소재로 사용 하기 위하여 사다 주는것이라 했다. 작년에 꽃시장에서 본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앙팍스럽게 봉오리
진것이 초록의 잎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여간 예쁘지가 않았다. 그것은 한국에서 보아온 것과 다를바없었다.
너무도 반가워 한참이나 꽃봉오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중국 그림에 거의가 목단꽃이 소재가 되는데 이곳은 목단은 없으니 대신 작약을 사용하여 봉오리가 열리는 과정을 그리는 것
같았다. 작약은 봉오리가 만개하면 장미꽃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은은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아주 오래전 날, 태능을 지나 의정부쪽으로 가다보면 아기들 머리만한 먹배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과수원들이 연이고 있었다. 그 길 중턱 불암산 아래에 먹배만 재배하는 다른 과수원과는 달리 복숭아, 자두 그리고 빈 공간들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친구의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하얀 배꽃과 또 다른 쪽엔 분홍 복숭아 꽃, 그리고 담을 끼고는 진분홍의 자두꽃이 어울려 피고 여름이면 시원한 수박이 한ㅤㅋㅕㅌ에서 익어가고 가을이면 몇차례 봉지를 갈아 씌운 커다란 배와 황도 복숭아가 박스에 담기고 작대기로 두들겨 떨어뜨린 밤나무껍질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가장 재미있게 수확하는 주렁주렁 줄지어 나오는 땅콩과 고구마가 심겨져 있었고 다른 한쪽으로 넓게 작약이 심겨져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 가까와 올때면 약제로 쓰는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친구는 봉오리진 작약을 가차없이 꺽어다 갖다 주었다. 한아름씩안겨온 짙은 잎속의 꽃봉오리들은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 속에서 아주 천천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리고 진하고 더 진하고 더 여린 보라색과 분홍색, 간간히 흰색들이 어울려 한꽃안에 셀수없이 많은 꽃잎들 만치 색갈도 여럿이였다. 조금씩 조금씩 꽃송이가 커지면 온공간이 꽃으로 덮히는 착각으로 즐거움에 빠져들곤 하였다.
난 유난히 꽃을 좋아했다.
서울에서 지낼때는 남대문 꽃시장을 들리는 것이 취미중 하나였다. 전국 각지에서 재배된 계절 꽃과 온상에서 재배되는 계절을 잊은 꽃,
그리고 별 희한한 꽃들이 다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겨우 사람이 지나갈수 있는
작은 길만 두고 빽빽히 들어선 작은 가게들은 나름대로 개성있는
다른 꽃들을 팔고 있어 아주 재미있는 곳이였다. 시드니로 옮겨 왔을때
가장 크게 잊어버린 것중 하나가 꽃시장이였다. 다행히 이곳에도 남대문 꽃시장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적은 규모의
프레밍톤 꽃시장이 이른 아침에 열리고 있었다. 토요일 이른 새벽 간혹 들려 싱싱한 꽃들을 향기를 맡으며 헤집고
다니는 것이 나에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였다. 몇바퀴를 돌면서 눈과 마음을 꽃향기로 듬뿍 축인후,
사철 청초한 모습으로 웃고있는 하얀 데이지 한다발을 사오는 것이 고작이지만 난 마치 커다란 행복을 한아름 사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멜보런, 어떤 건실한 농부가 작년보다 올해는 훨씬 알차게 재배하여 이곳까지 보내었을까? 오늘 아침에
동료가 사온 도무지 열릴것 같지 않게 야무지게 다문 작약봉오리를 몇번이나 들여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여본다. 과수원 한켠에 자리잡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시절따라 제 몫을 다하며 꽃피우고 있던 작약꽃. 지나는 세월에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친구처럼 전날의 모습은
흔적도 ㅤㅊㅏㅊ을수 없다는 그곳이라지만, 그 날의 작약은 지금 나의 눈앞에서 추억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다시는 되돌아갈수 없어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는 추억의 긴 그림자를..... (2006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