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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일들


BY hayoon1021 2006-12-16

 

아이의 시력은 0.6으로 나왔다. 거기다 약시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근시도 난시도 아닌 약시? 안과에 처음 간 사람처럼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약시는 교정시력이 0.6이나 0.7을 넘을 수 없단다. 그럼 안경을 쓰나 안 쓰나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안경은 써야 한단다. 한창 크는 아이니까 꾸준히 교정해 줘야 더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고 또 간혹 좋아지는 경우도 있단다. 그냥 눈이 좀 나쁜 줄만 알았지 그런 고약한 진단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나는 은근히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그 말을 하는 의사의 태도가 어찌나 사무적인지 나는 그 의사가 미워 죽을 뻔했다.

의사의 처방전을 들고 안경점에 가던 날,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치료할 수 있으면 해주고 싶다던 남편은 침울한 낯빛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우리를 맞은 안경사는 노련했다. 안경테를 고르는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를, 그는 요즘 아이들이 안경 쓰는 건 햄버거 먹는 일만큼이나 쉽고 흔하다는 말로 위로했다. 하지만 아무리 세태가 그렇다 해도 하필 내 아이한테 이런 일이 닥쳤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처음 안경을 쓴 아이는 쑥스러운 듯 씩 웃었지만 이제부터 저걸 평생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안경이 얼마나 불편한 물건인지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안경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데도 관여하고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우리 행동을 제약하는 성가신 물건이다. 콘택트렌즈가 있고 라식수술 같은 방법도 있다지만 그건 차후의 문제고, 또 그것이 아예 안경 없이 사는 이의 자유로움까지 보장해 주진 않는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안경부터 더듬어 찾아야 하는 나로선 안경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다. 맨눈으로 책을 읽고 버스번호나 간판을 골라내고 영화자막을 읽어 내리는 사람들이 무슨 신처럼 보인다. 안경을 벗는 순간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파오는 나로선 맨눈으로 무얼 본다는 자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한데 이제 겨우 여덟 살인 내 아이마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아야 한다니 어찌 심란하지 않을 수 있나? 

내가 처음 안경을 쓴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2학년이 되어 첫 자리배정을 하던 날, 나는 칠판글씨가 안 보이니 맨 앞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덩치는 커다란 것이 안경은 안 쓰고 맨 앞자리를 떡하니 차지하자 유심히 나를 살펴본 선생님은 어느 날 방과 후에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셨다. 영문도 모른 채 이끌려 간 곳은 시내에 있는 안경점이었다. 난생처음 안경을 쓴 나는 세상이 이토록 밝고 선명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건 내가 지금껏 전부라고 믿어왔던 흐린 세상과 단번에 작별하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 것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내 눈은 이미 나빠졌을 것이다. 그래도 햇볕이 좋을 때는 어느 정도 윤곽이라도 잡히던 칠판글씨가 완전히 암흑이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맨 앞줄에 앉아야 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글씨가 잘 안 보여 늘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노트필기는 쉬는 시간에 짝꿍 것을 빌려서 한다지만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제일 난처하고 답답했다. 근데 참 미련하게도 그 지경까지 갔으면서도 나는 집에다 안경 맞춰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해봤자 우리 집 형편으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마운 선생님 덕분에 그 모든 고민이 해결된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생판 처음 보는 길처럼 새롭고 신기했다. 나는 믿어지지 않는 이 놀라운 일을 빨리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어서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그러나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벌어졌다. 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아니 내 얼굴의 안경을 보자마자 욕부터 퍼부었다. 어디서 난 안경인지는 궁금해 하지도 않고 다만 내가 안경을 썼다는 그 사실만 가지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허락도 없이 안경을 해 줬다는 이유로 선생님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엄마까지 합세해서 계집애 얼굴에 안경이 다 뭐냐고 하는 데는 더 이상 대항할 힘이 없었다.

난 방구석에 처박혀 펑펑 울었다. 저렇게 무식하고 독선적인 부모 밑에 태어난 내 처지가 너무 불행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중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나는 끝내 부모님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껏 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공부를 해 왔는지도 몰랐으면서 내가 안경을 쓰건 말건 새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 일은 그대로 내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아이 안경 때문에 며칠 어수선한 마음으로 지내는 동안 문득문득 그때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몇 십 년이 흐른 이제야 그때의 부모님 심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평생 안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더구나 약시라는 것도 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 아이 얼굴에서 저놈의 안경만 벗겨버리면 정말 그렇게 될 것도 같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도 부리고 싶을 만큼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싫은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던 나도 이 정도로 상심이 큰데,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오죽했으랴. 우리 가족 중 안경을 쓴 건 내가 처음이었으니 부모님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안경을 쓰면 무슨 큰일이 나는 줄 알던 분들이다. 공부에 지장을 주는 한이 있어도 안경은 안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덥석 안경을 쓰고 온 딸한테 어찌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추리일 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진짜 마음을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얼어붙어 있던 내 분노를 녹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아이한테 안경 쓸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원망을 안은 채 그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더럭 겁이 났다. 내가 피해자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는 상처나 사건들이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면? 단지 내 오해일 뿐이라면?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가슴에 쌓아둔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가장 못살게 하고 괴롭힌다. 이제 그만 복잡하게 뒤엉킨 내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싶다. 하지만 이미 시효가 꽤 지난 오해들은 내 의지만으로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의 깨달음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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