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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옹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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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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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살고싶으다으다~~


BY 개망초꽃 2006-12-04

“월출산 갈려? 좀 멀지만…….”
“그랴…….오랜만에 여행 삼아 가지 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앞뒤 생각지 않고 결정을 해버렸다.

막상 그날 새벽이 되니 후회막급이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은
두들겨 패지 않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새벽 4시쯤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여름휴가 때 차 막힌다고 일찍 서두른 적이 몇 년 전에 있었고,
신문배달이나 우유 배달을 한 적 없으니 도대체 새벽에 일어난 기억이 내겐 남아 있지 않다.
쓰잘떼기 없는 생각이나 독백에 가까운 글을 쓴다고 새벽에 잠을 설친 적이 있긴 한데
내 돈 내고 내가 산에 간다고 이렇게 일찌감치 서두른 적이 나의 사전엔 없는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아프다고 문자나 넣고 이불 뒤집어쓰고 다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친구와의 약속이라 비그적비그적 일어나 어그적어그적 화장실 문을 열었다.

백석 역까지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이라서 걸어가야만 했다.
세상은 밤길에 묻혀 인적도 없고, 택시만이 머리에 불을 켜고 내 곁을 스쳐간다.
저 택시를 잡아타고 갈까하다가 시간이 넉넉해 걸어가기로 결정을 했다.
백석 역에 다다르자마자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이 버슨가? 기웃거리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나를 보고 웃는다. 반가운 친구다. 히히
날름 버스에 올라타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흔들리지 않고 내리고 타기에 편한 자리군, 좋아…….히히히
그냥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만 빼곤 여행을 간다는 건, 산을 보러간다는 건 무조건
비질비질 웃음이 삐져나오는 일이다.
“먹을 거 뭐 싸왔냐?”
“너는 뭐 싸웠니?”서로 먹을 거 가지고 대화가 오고간다.
누가 보면 비쩍 마른 것들이 먹을 것만 밝힌다고 하겠다.
배낭을 앞 의자에 걸어 놓고 내 배낭 누가 빼앗아 갈까봐 끌어안고 있는데
누군가가 짐칸에 넣으라고 자꾸 그러는통에 배낭을 넘겨주는데
왜 그리 허전한지…….먹을 것을 통째로 버스가 삼켜 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먹을 게 배낭 속에 많냐하면 전혀 아니다.
찬 밥(쌀 땐 분명 뜨신 밥인데.산에 가면 찬밥이다),
별 것 아닌 반찬, 뜨거운 물, 과자, 인절미 몇 개, 요게 전부인데…….ㅋㅋ

자다가 졸다가 끔뻑이다가 게슴츠레하다가 그러다가 보니 전라도 땅이다.
“남쪽나라~~~어쩌고저쩌고”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거 뭐시기…….이십대 때 풋사랑, 편지만 열나게 쓰던 옛사람이 생각나고…….
비가 옛추억처럼 주절주절 내린다.
비가 오면 산에 우째 간다냐…….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버스는 월출산 입구에 아무 탈 없이 우리를 내려 주었고,
내 배낭을 소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뱉어 주었다.
고마워잉~~~

월출산 입구에서부터 비가 간지럽게 내렸다.
내리려면 겁나게 내려버려야 하는디...이건 우째야 할지…….
매점에서 비닐 우비를 샀다.
흰색, 분홍색, 보라색 중에서 보라색을 골라서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쌀쌀한 날이었는데 비닐을 뒤집어쓰니 금방 후끈해진다.

산 초입엔 초록 잎이 무성하다.
동백나무였다. 꽃망울이 선명하게 달려 있었다.
친구랑 나랑은 동백나무만 보면
동백꽃 필 때 오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북쪽 일산보다 기온이 높고, 동백꽃이 선홍빛으로 피고
겨울에도 햇살이 비치는 뜰엔 자잘한 들꽃이 피는 남쪽나라가 난 좋았다.
추위를 타는 체질 탓이기도 하지만 들꽃을 많이 볼 수 있어 남쪽이 좋았고,
남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었다.
내 고향 강원도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첫 번째로 많이 했지만
그 다음엔 남쪽 땅에서 살고 싶었다.

월출산은 친절한 산이었다.
바위로 엉키어진 산을 철제로 계단을 놓고, 구석구석 안전하게 잡을 곳이 만들어져
올라 갈 수 없는 곳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진 산 길,
아주아주 친절한 곳이었다.
산봉우리를 하나 넘을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위와 바위가 어우러져 수묵화 여러폭이었다.
어떤 바위는 모아이 석상을 닮았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 얼굴이 몽글어진 세계 7대불가상이 중에 하나인 모아이상.
월출산은 남쪽의 금강산이라고 한다더니
금강산을 가본적은 없지만 금강산을 보듯 감상을 했다.
바위 사이사이 빈 나뭇가지엔 봄이면 파릇한 생명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계곡이 초록 물감으로 흘러내리고,
가을이면 미친 듯 물드는 단풍 때문에 산사람들이 산에 미쳐 산을 찾을 것 같은 산, 월출산.
계절마다 다시 오고 싶게 심장을 달뜨게 만드는 산.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면 감정이 눈물 되어 또로록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산.
아름답고 아름다운 산이었다.

난 친구와 항상 후미를 끝까지 고수하며 다녔다.
선두를 염두에 두어서 마음과 다리가 조급하고 바빴지만
바위에 걸터앉아 자연에 취해서 여유 있게 차 한 잔 마실 수 없이 서둘렀지만
산위에서 내려다 본 남쪽 마을은 더 보탤것 없이 아름다웠다.
“저 마을에 살고프다…….친구야…….그치?
들꽃 가득 심고, 수필 쓰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프다.”

남쪽은 밭안에 뭔가 돋아났는지 모르지만 봄날처럼 파릇했고,
산 초입 동백 잎에서 햇살 구르는 소리가 빤짝 반짝거렸다
낮게 앉아 꽃을 피운 들깨 꽃 같은 야생화를 발견해 한참 기웃거리기도 했다.

산꼭대기엔 스스로 가을은 물러가고
겨울이 바람을 몰고 와 진을 치고 있었지만
비가 눈이 되어 내리지 않는 걸 보니
그래, 그래 따스한 남쪽나라 맞구나, 했다.
잊을 수 없는 월출산아~~ 동백꽃 필 때 만나고 싶으다으다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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