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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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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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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걸어가는 이 길이


BY 동해바다 2006-11-15




     수유역에서 친지모임이 있으시다는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혼자 
     우이동 도봉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붉은 단풍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잎새들이 입동지나 찾아온 추위에
     바짝 움츠려들면서 산은 겨울로 접어드는 듯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일요일, 서울의 하늘은 너무도 깨끗했다. 
     구름 한자락 숨어있을 틈조차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아래 잎 떨궈버린
     우듬지가 가느다랗게 흔들린다.

     수능을 목전에 둔 딸, 입대를 한 달 앞에 둔 아들...
     이젠 엄마라는 자리가 텅 비어있을 아이들을 두고도 어김없이 배는 고프고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웃음을 흘려 보낸다.  
     
     함께 있진 않지만 마음은 늘 같이 있다며 보내는 문자에 스스로의 위안을
     실어 보지만 어디 그 모자람이 살가운 사랑만 할까. 아이들의 가슴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만들어 놓은 채 아직도 티격태격하는 못난 에미의 모습이 부끄
     럽기만 하다. 주변사람들의 이해와 위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얄팍해지고 나의 
     결심이 또 흐려지려 한다. 단칼에 잘려지는 무 토막처럼 두 동강이 나면 미련
     이라도 없을텐데...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활자가 매일매일 또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있으면서 몇 차례 올랐던 북한산, 먼지 옷으로 무장하고 있던 나무
     들이 깨끗해졌다. 폴폴 날리던 흙먼지도 잠재우고 산은 휴일 산행객을 맞아
     들인다. 진달래능선을 따라 대동문까지 50분만에 올라갔다. 친정엄마를 모임
     장소에 보내드리고 그 사이 잠시 다녀오면 되겠지 하는 맘으로 올라갔는데
     예정보다 빨라 하산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남을 것 같았다. 
 
     유럽의 축구열풍처럼 번진 등산매니아들이 대동문 안쪽에 무리지어 서 있었다.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물 한모금 쭈욱 들이키니 벌겋게 달아오르는 열기가 소강
     상태로 접어든다. 그 순간만은 희열이였다. 늘상 혼자 산행하고픈 마음은 있었
     지만 실행치 못하고 있던 차였다. 올케언니와 함께하던 산중에서도 길을 찾지
     못해 헤맬땐 겁이 나던 산행이였다. 길도 알겠거니와 휴일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붐빌 것을 이용해 혼자 산행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혼을 요구하며 홀로서기를 펴려 했던 내 결심에 아들의 원망은 농축된 물감을
     흐리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 그것은 변명일 것이다. 모든게 자신없었던 탓이였
     을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뭔가 바뀌어야만 했다. 몇 달 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눈칫밥 먹는 것도 막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
     다..

     츄리닝 바지에 인형 매달린 배낭하나 매고 출발지를 백운대로 정하고 일어섰다.
     내려가서 엄마를 기다리는 쪽보다 정상을 향하는 마음이 더 강해져옴을 물리칠
     수 없었다. 엄마는 버스타고 가시겠지 하는 맘편한 해석을 하고는...

     산성아래 보이는 도시의 한낮은 평온해 보였다. 정리된 도로와 주거지, 그리고
     배경이 되고 있는 산 이 모든 것이 하늘아래 있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른다. 점점 더 높이
     올라 그 성취감을 맛본다. 하지만 정상을 밟았다 하여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
     니다. 이내 부족함으로 또 다른 정상을 욕심내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들의 욕구는 우리가 가타부타 말할 계제가 되지 못한다. 나름대로 삶의 방식
     이기에...

     난 어떤 욕심을 바라고 살고 있는가. 
     욕심이 없다는 것,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손해보는 듯한 삶은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방법이 편할거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다보니 피폐해진 육신밖에 남지 않았다. 
     비우고 버리고 덜고...이제는 아니였다.

     산으로 다져진 몸뚱아리를 믿어보며 길게 늘어선 산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올라갔다. 용암문을 지나고 위문으로 가는 가파른 바윗길은 닳고 닳아 매우 
     미끄러웠다. 불끈 샘솟는 힘으로 금새 목적지까지 다다라 올려다 보니 백운대까지 
     올라가는 길이 정체되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져 있다. 허연 민머리 바위산엔 
     암벽타는 사람들이 줄에 매달린 채 그들 최고의 스릴을 맛보며 즐기고, 정상에선 
     희열감에 들뜬 이들의 외침이 부대끼는 일상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는 북한산 백운대...
     시계가 넓어 인천앞 바다까지 보였다. 산을 알게 해 주고 산맛을 느낄수 있도록
     도와준 분에게 감사의 폰메시지를 전달하고 마음 속으로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에미의 진심이 전해졌음 하는 간절하고도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올라온 정상은 없다. 땀과 수고가 있기에 한 몸 산 끝까지 밟을수 있었다.

     넓은 반석 위 앉아 있는 무리 틈에 끼여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천정부지 치솟는
     집값에 언감생심 살 터전을 마련할까. 억억 하는 아파트 앞에서 늘 나는 작게만
     느껴지고 가진 것 하나없는 몸으로 어찌 버텨 지낼까 싶은 생각에 초라해지는 내
     자신이 이렇게 무능하게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물론 세상을 올려다 보는 것만은 
     아니였다. 

     섣부른 자만심으로 나를 아끼며 살았던 지난 날을 후회해 본다. 눈물겹도록 찢어
     지게 아픈 가슴은 이미 울화가 자리하고 있지만 시간이 치료해주리라 믿는다. 
     체험! 삶의 현장 속에서 나를 잊어버려야 하고 다시 돌아가야 할 집은 이제 내게
     없다는 것을 주지시켜야만 한다. 돌아오라 말하지만 독하게 마음 먹은 내가 흔들
     리지 않도록 자신을 곧추 세워야만 한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 위에 내가 있었다.
     땀 흘린 만큼 얻어지는 결과에 웃음 얹어질 그 날이 꼭 오리라 믿어본다.

     뒤돌아 바라 본 북한산에 해가 기울고 홀로 가는 길 위로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총총걸음으로 하산하니 아무 것도 먹지않은 뱃속에서 신호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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