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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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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김치


BY 진주담치 2006-11-08

입동 추위가  제 구실을 한다.

평상시처럼 얇은 잠바를 걸치고 나섰다가 그만  부리나케 되돌아 들어와서

두꺼운 모직 반코트를 걸치고 나갔다.

며칠전부터 게으름을 한껏 부리다 알타리 김치를 담으려고 할머니들이 파는

길가의 난전에 들렀더니 알타리는 이미 없었다.

아뿔사!   지난주에 담가야 할것을....  벌써 노지 알타린 품절인가보다.

큰 마트에나 가서 사야 할 것 같다.

한쪽에 고들빼기가 한자루 있길래 사가지고 왔다.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 다듬었다.   TV를 보면서.

다듬어 항아리에 소금물을 만들어 고들빼기를 넣고 무거운 플라스틱 판으로 눌러 놓았다.

며칠 소금물에 삭힌 후에 젓갈을 섞어 김치를 담으면 한겨울 맨 밥만 있어도 별미를 즐길수가 있다.          우리집에서 고들빼기 김치를 먹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으므로

한여름까지 이 맛을 혼자 즐긴다.

그러면서 항상 중얼거리지.

\" 이 맛있는 걸 왜 먹을 줄 모르지?\"

우리 남편은 토속적인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난 그것이 시어머니 탓이라고 늘 말한다.  젊은 날 바빠서 제대로 먹을것을

안 챙겨줘서  먹을줄 모른다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고,  토속음식도

먹어 본 놈이 더 잘 먹는게 아닐까  해서다.

 

저녁에 설겆이 하다가 내 손을 보니 고들빼기 다듬느라  손톱과 손가락 끝이

누런 물이 들었더군.  아니 시꺼먼 물이었어.

아주 막노동을 오래한 노동자의 손가락, 바로 그것이었어.

손가락을 씻어도 씻어도 누렇게 물 든 손가락은 여전했다.

손가락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손이 생각나더군.

늘 일에 치여  누렇게 물들어 있던 그 가여운 손가락이 말이야.

갈라지고 물들고 손톱도 가끔은 부러져 있던.

 

나처럼 백조생활에 이골이 난 여편네도 한낮 잠시 다듬은 나물로 누렇게 손가락이

물들었는데,    여섯 남매 먹이고,  빨래해  입히느라 손 마디며  발꿈치가 성할 날이

없었던 우리 어머니의  손이 어찌했을까는 상상이 갈 것이다.

근데 그 거칠은 손이 오늘은 몹시도 그립고  또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만져보고 싶은거야.

그저 희망사항이었지만  그로 인해 난  오후 내내 슬픔에 잠겼었어.

 

살아가면서 우린 과거에 경험했던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 처할때가 많다.

그러면 자연스레 기억이 떠올라 과거속으로 빠지곤 하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어.

절기의 명절마다 잊지않고 음식을 해 주셨던 그 어머니.

정월 대보름의 나물부터 시작해서

봄엔  냉이며 쑥을 캐서 우리에게 먹이고,  여름엔 얼음을 사다가 수박 화채를 해주고

가을 추석엔 쌀 한말씩 떡을 뽑아  송편을 해 주셨던 그 어머니.

동지엔 가마솥 가득 팥죽을 끓이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나더군.

 

김장을 백 포기씩 해 내던 그 시절.

그 여인네들의 손이 어떠했을까는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두 아이 해서 먹이는 것도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난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소박 맞았을거야.  그치?

 

내일은 큰 마트에 가서 알타리를 사야겠다.

나는 또 알타리 김치를 담으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 거친 손을 생각해 낼테지?

눈물 찔끔 찔끔 흘리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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