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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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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향기 2006-11-02

칠십년 대엔 대학 진학이 그리 많지 않았다.
더욱이 지방에선.



73년 여고 졸업반 때였다.


졸업을 앞 둔 우리에게 가끔씩 기업체에서 직원 채용을 위한 면접이 있었던 때였다.
어떻게 그 기업체 면접을 하게 되었는지 까지는 기억이 없는데 그때 우리나라의 유명 화장품회사의 미용사원을 뽑기 위해 그 회사의 직원들이 파견되어 내가 그들 앞에 서게 되었다.

몇 명의 순서가 거쳐가고 마지막에 두명만이 그분들 앞에 서게 되었다.

내게 물어왔다.
그 중 가족사항에 관한 것이었지 싶다.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서울에 살고 있는 큰오빠를 말했던 것 같다.
오빠가 뭐 하시는 분인지 직업을 물었고 난 작은 주점을 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들이 물었다.
안주가 무엇이냐고.



안주?
그때 잠깐 보았던 오빠네 가게 유리창에 씌었던 글이 생각났다.



“안주 실비”



난 그 뜻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던 시절이라 “안주는 실비” 라고 대답했다.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안주는 뭐냐고.

난 다시 대답했다. 그들이 내 대답을 못들은 줄 알고.
“안주는 실비인데요.”

ㅎㅎㅎㅎㅎ



그 “안주 실비”라는 단어는 내겐 당연한 단어였던 것이다.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안주 실비”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생맥주집을 드나들게 되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 면접관들이 자꾸 안주는 뭐냐고 되풀이 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굴에 불이 오르는 것처럼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면접관들의 수준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얄팍한 것을 물었던 면접관을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도 면접관으로는 초짜였지 싶다.)

아무튼,
“안주 실비”를 써 붙인 오빠네 가게에선 어떤 안주를 실비로 하고 있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대표적인 실비 안주는 빨갛게 무쳐 낸 홍어회 안주였다.

그렇게 실비 안주를 써 붙인 가난한 주점의 주인인 오빠는 20여년 정도 고생하고 지금은 돈을 쌓아 놓고 인생을 아주 잘 즐기며 살고 있다.



그 회사에 입사하지 못한 나는 그 후 그보다 훨씬 적성에 맞는 회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어내고 6년을 그 회사에 몸담고 있다 남편을 만났다.

각자의 삶에 그렇게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어쩔 땐 가끔 쓸쓸해지기도 하고, 어쩔 땐 가끔 안심이 되기도 하고, 어쩔 땐 가끔 두렵기만 하다.



내 아이 수시 2학기에 지원했다 오늘 “불합격”이라는 단어를 아프게 받아 들이며 어쩌면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 습관으로 자생을 위한 위로를 하면서 내 어린 날의 아픔을 내 아들의 아픔에 대비하며 추억해 본다.



점점 성적이 좋아지는 내 아들에게 어쩌면 더 좋은 결과를 주기 위해 수시 2학기에 불합격이라는 결과가 주어졌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내 아들과 같았던 내 그 시절을 돌아 보는 시간으로 억지로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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