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에는 과일도 이쁜걸로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했다.
나는 좋고 비싼 과일은 엄두도 못냈으며, 오일장이 파하는 시장에 나가서 떨이 하는 과일을
사와서 먹었다.
못생기면 어떠랴, 비타민만 섭취하면 됬지, 안먹는것 보단 낫다라는 내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시키면서.
그러다 가끔 친정엄마가 오셔서 그런 과일들을 보시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엄마는 오실때마다 예쁘고 잘생긴 과일들을 골라 사오시곤 했다.
결혼전엔 왜 그리 집을 떠나고 싶었던지,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니까
친정이 있는 서울로 가고 싶어졌다.
점점 결혼시즌이 다가옴에 따라 남편은 바빠졌고,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성격이 내성적인 탓에 옆집이나 윗집 아줌마들하고 터놓고 지내지도 못하고, 시장통에 있는
뜨게질가계에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임신 6개월 즈음에 나는 이가 아팠다.
저녁을 먹다 충치가 있는 곳을 건드렸는가 보다.
잠자려고 준비하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그렇다고 진통제도 먹을 수 없고, 그런날 보고
남편은 병원 응급실에도 전화 해봤지만,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그저 냉동실에 있는 얼음을 입안에 넣고 꽉 물고, 내일 출근 해야 하는 남편과 다른방에서
나는 이불을 물고 울음을 삼키며, 빨리 내일이 되길 바랄뿐이었다.
예전에는 치과에 가기가 제일 싫었었는데, 이렇게 치과 갈일이 기다려지니 말이다.
저녁을 먹으면 우린 산책겸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나보다 석달전에 몸을 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가 그랬다.
빨리 몸 풀고 싶으면 뱃속에 있는 아가한테 엄마가 빨리 보고싶으니 빨리 나오라고
세뇌를 시키란다.
나도 배를 문질러 가며 어서 나오라고 세뇌(?)를 시켰는데,아무래도 그말은 일리가 있나 보다.
첫 아이는 예정일보다 늦는 다던데 그 날은 예정일보다 열흘전이다.
아이를 가지면 쉬이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그래서 나는 침대 바깥쪽에서 잤다.
그날도 새벽에 볼일이 보고싶어 일어나는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한쪽발을 내딛고
나머지 발도 내딛는 순간..........
나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변이 나온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른 새벽 나는 친정엄마 한테 전화를 했고, 엄마는 집안일 정리하고 오신다고 하셨다.
열한시 쯤 해서 엄마는 검은비닐봉지를 하나 갖고 오셨는데,
그것이 뭐냐고 하니까 삼겹살이란다.
아기를 낳으려면 기름기 있는 거 먹고 미끄러지듯이 쑤욱 낳으라고.
엄마는 신발을 벗자마자 고기에 잴 양념장을 만들고 제육볶음을 잔뜩 해놓으셨다.
새벽에 양수가 터지고, 배가 살살 아픈데, 이게 사람 미치게 만든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배를 붙잡고, 아 ~ 하는데
또 금세 아무렇지도 않아지고,
엄마한테 병원에 가야 되는거 아니냐고 했더니, 병원가서도 특별히 할일이 없단다.
배가 아프고 어느정도 자궁이 열려야 한다면서.
병원에 전화도 해봤다.
아직 예정일이 십여일 정도 남았다니까 가진통 일 수도 있다고 아프면 오란다.
그렇게 엄마가 만들어 주신 제육볶음을 이른저녁까지 먹었는데도 영 진통다운 진통은
없었다.
그래도 불안한지라 일찍 들어온 남편과 함께 병원 문닫기 10분전에 택시를 타고 갔는데....
헐 ~~~
여의사는 나를 무식한 여편네 쳐다보듯 하면서
양수가 터졌는데 왜 지금 오냐 그런다.
의사들 퇴근 시간이고, 시간도 그러하니 촉진제는 맞을 수가 없단다.
이구 친정엄마 말만 믿다 난 망했다.^^
10 시가 지나니까 진통다운 진통이 시작됬다.
나는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간호사들은 아직도 멀었다고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한다.
아무리 직업이 나같은 산모들 보는것이라지만,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는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찬기가 뚝뚝 떨어진다.
엄마도 옆에서 한몫 거든다.
싸가지가 없다는등.......
ㅎㅎ
열두시가 넘어가자 나는 비몽사몽간에 눈을 감고 잠시 잠들었다가도 진통이 시작되면
소릴 지르고.........
그러다가 어느새 자궁문이 다 열렸는가 보다.
간호사가 분만실로 가는 침대에 옮기란다.
나는 비몽사몽 간에 누워있던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떨어졌다.
간호사들은 깜짝 놀랬지만, 그때 나의 고통은 떨어진 건 암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분만실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힘주라는 소리밖에 들은게 없는데,
그때 내 머릿속엔 너무 힘주다 혹시라도 큰(大)변이라도 나오면 얼마나 창피할까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도 더 힘주란다.
나도 줄만큼 주고 있는데,
엣따 모르겠다.
실수라도 큰게 나올지 어떨지 이젠 안중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힘을 주는 와중에도 어른들한테 들은 소리가 난다.
중간에 쉬었다 낳으면 아이 머리가 짜부된다고.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주면서 중간에 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ㅡ 언제 준비했는지 엄마가 나의 입술에 손수건을 물려주셨다. 힘주다 치가 상한다고 ㅡ 힘을 주었다.
드디어
\" 으앙\"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분만실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오셨다.
엄마는 분명 의사선생님이 들어가는 걸 못 봤는데, 간호사들끼리만 아이를 받다가 혹여라도
아이를 떨어뜨린건 아닌가 걱정이 되서 분만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신 거였다.
나중에 보니 의사선생님이 사는 가정집하고 분만실하고 통하는 문이 있었던거였다.
아이가 태어난 시각이 새벽 4시 55분!
양수가 터지고 정확히 23시간만의 분만 이었다.
간호사들의 부축으로 나는 입원실로 왔는데,
와보니 이게 또 가관이다.
산모를 위한 방이다보니 온돌방은 따끈따끈한지라, ㅡ마침 내일아니지 오늘이 토요일이라
결혼시즌인10 월 그의 웨딩홀4개층은 이미 예약이 전부 된 상태였다.ㅡ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거였다.
에구야
나는 애낳느라 이리도 고생을 하건만 남편이란 작자는 따뜻한 아랫목에 자고 있다니
정말 그순간에는 얼마나 밉던지.
연속극 같은거 보면 마누라가 애 낳으러가면서 남편 머리끄뎅이 잡고 소리소리 지르더만.....
장모님의 애기낳았다 하는 소리에 그래도 남편은 벌떡 일어났다.
잠시후에 아기의 발바닥이 찍혀져 있는 출생신고서 같은 서류를 들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다섯발가락이 온전히 있는게 정상이란다.
아침에 미역국이 들어왔다.
입안이 까끌까끌해서 도무지 당기지가 않았다.
그래도 아기를 위해 조금 먹었다.
엄마도 뭣좀 먹어야지 했더니 안먹어도 배가 부르신단다.
딸내미가 시집가서 그집안에 아들을 떡 하니 낳아주니 엄마로선 그게 그렇게 신통방통
했던지 연신 기분이 좋으셨다.
내 새끼라서 그런지 아기도 눈썹도 진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한게 너무 이쁘시단다.
아침에 안면도에서 일을 하는 남동생이 와서 우리는 친정으로 갔다.
아침밥을 먹고 잠시 잠들었던 나는 또한명의 산모가 오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걸 보니
다시 어제의 진통이 생각나서 끔찍했다.
며칠 더 있어야 된다는 의사의 말도 거절하고, 사실은 하루라도 더 있으면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봐 난 핑계를 대고 아이를 낳은지 10 시간도 안되서 병원문을 나섰다.
이렇게 나온 우리 큰아들이 벌써 9살이다.
친정에선 큰아이인지라, 외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의 사랑을 듬뿍 듬뿍 받고 자랐다.
공휴일과일요일,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등은 더욱 바쁜 엄마 아빠를 둔 우리 애들은
부모님의 빈자리를 이모 삼촌이 엄마아빠 이상으로 잘 챙기고, 부모를 대신해 놀이동산에도
데리고 가주었다.
그런 내 동생들도 이젠 한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그때 내가 받은 그 고마움을 나는 베풀지 못하고 있다.
남동생의 둘째가 이번주에 백일이란다.
가족들만 모여 밥한끼 먹으려고 한다고.
멀리 있는 우리는 물론 참석은 못할 것이니라.
마침 여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내가 엄살을 부렸다.
에고야 나는 너무 억울한것 같다, 나도 하나더 낳아서 부줏돈 챙겨야 겠다고 하니
언니는 그런말 할 자격 없다고.
언니를 대신해 내가 애들한테 해준게 얼마냐고, 그렇게 조카들한텐 아까운것 없이
해줬는데 막상 자기 아들한텐 그리 안되더란다.
여동생 시어머님이 워낙 알뜰하신지라 사는걸 싫어 하신단다.
웬만한건 70넘은 노인이 직접 손수 만드신단다.
그렇게 절약해서 3남1녀를 둔 그댁에선 자식들 앞으로 다세대 주택 한채씩을 해놓으셨단다.
지금도 비싼 음식들은 절대로 드시지 않는단다.
시댁 밑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은 먹고 싶은것도 눈치가 보여서 못먹는다면서.
그런 그댁과 우리 시댁이 왜그리도 비교가 되는지
엄마도 그러신다.
있으면서도 아끼느라 쓰지않는 작은딸네 사돈댁과
개뿔도 없으면서 앞뒤 생각도 없이 그저 쓰고보는 큰딸네 사돈댁이 어쩜 그리 반대냐고.
차라리 있으면서도 안쓰는게 낫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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