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한쪽 어깨가 무겁다.
모로 누운 채 또 오래 잠들었 던 모양이다.
둘째 아이가 열 여덟이니 그 지나간 햇수 비슷하게 시작된 모로 누워 자는 잠이 버릇이 되었다.
남편은 원래 성생활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첫아이 때도 병원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날부터 꼬박 아이가 태어나기 까지 내 옆에 오질 않았었다.
그땐 많이 기다리던 아이라 조심스러워 그러려니 싶어 나도 별 생각 없이 잘 지내고 미국 파견 근무 중 건강한 아이를 맞았다.
그리고 술자리가 덜 하고 직접적으로 상사에게 간섭 받는 일이 없어 스트레스가 덜했는지 조금씩 다시 사랑하던 시절의 내 남자로 돌아가는 듯 했다.
파견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둘째를 가졌다.
첫아이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입니다 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날부터 남편은 다시 내게서 멀리 떠나 버렸다.
이번엔 몸과 마음이 함께.
그렇게 멀어져 간 남편은 어느날부터 자신의 이부자리 쪽으로 행여 아내가 다가 올까 봐 팔로 이불을 꼭 누르고 자는 것이었다.
처음 그 풍경이 얼마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어떤 연유인지도 모른 채 남편에게서 잠자리 소박을 맞은 난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취중 악담에 몸서리쳐지도록 깊은 외로움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내겐 두 아이가 있어 외로움에 빠져 드는 것도 여의치 않아 아이들이 잠들면 다시 내일을 생각해야 했기에 나도 잠을 자야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잠들면 내 시간이 갖고 싶어 맥주 한잔 들고 거실에 앉으면 내게 너무 멀어져 가 버린 남편으로 마음이 아파 자신의 연민을 무디게 하기 위해 마신 한 잔의 맥주가 한 병이 될 즈음 스르르 잠이 들어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은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겐 술도 한창 때, 아내를 소홀히 여기는 것도 한창 때, 가족의 의미가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그때가 소위 한창 때라 말하는 그 때였나 싶다.
변죽이 별로 좋지 못한 남편은 한번 내게서 멀어져 간 후로 좀체 날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존심과는 별개로 난 그의 아내였기에 그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고 행여 오고는 싶은데 올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넌지시 몇번 다가 가 보았지만 역시 꼭꼭 이부자리를 닫고 있는데 더 이상 그를 원하는 건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상처만 키우는 것 같아 그때야 나도 남편처럼 내 마음 안에서 남편을 내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를 내 등뒤에 있게 하는 모로 누워 자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가 열 여덟살이 되었고 그만큼 모로 누워 자는 습관이 그 햇수와 비슷한 시간이 되다 보니 이젠 반듯하게 누워 잠드는 것도 불편하고 더구나 남편 쪽으로 돌아 누워 자는 것도 어설퍼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길이 들어버렸음에도 내 몸은 아직도 가끔씩 불편을 드러내곤 한다.
이젠 그 한창 때를 벗어나 남편도 자신에게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하는 듯 하고 나 또한 그 힘겨웠던 한창 때를 벗어나 남편이 오롯하게 내게 존재하고 두 아이 건강하게 성인이 되어 가는 것에 그저 행복하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작은 불편이 그 한창 때와 연결이 되어 버리면 쓸쓸함이 곧바로 마음을 휘젓고 가는 바람이 되어 가벼운 현기증에 흔들리곤 한다.
그리고 아직은 온전하게 잊혀지지 않은 내 남편과의 살 부비는 따뜻한 섹스를 한번쯤은 가져보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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