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은 일하는 것 보다 더 바쁜 날이다.
온종일 뛰어 다녀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서 주는 기쁨 보다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기쁨이 커서일까
하루종일 보내는 나의 시간은 돈 버는 것 보다
바빠도 기쁨은 두배이다..
늦은 저녁 시간 부부동반 초대를 받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데. 소꿉친구가 전화를 했다
평택에 있는 동생네 과수원에 가서 배를 따 가지고 왔댄다
해마다 추석이면 배를 가지고 머언 거리를 달려오던 친구
어버이 날이면 엄마 생각에
슬퍼할 까 외로워 할까 걱정 되어
꽃 한다발 들고 와서 날 위로해 주던 친구이다.
친정 엄마가 돌아 가신지 벌써 다섯 해가 흘렀다
삼년 동안 해 마다 어버이 날이 되면 나에게
엄마 처럼 찾아 와 내 맘을 따스하게 녹여 주던 소꿉친구
몇 년 전인가 남편의 실직으로 많이 힘들어 할 때
친구는 은행에 다니면서 한달 받은 월급을 반 똑 같이 나누어
살며시 우리집 식탁 위에 얹어 놓고 갔다
형제보다 더 고마웠던 그 마음을 무엇으로 갚을까
그 친구는 내가 친정 엄마 처럼 느껴 진댄다.
그 사랑 갚을 길 없어 주말 농장에 열무와 상추를 심어
열무김치 담가 전해 주는 것이 내 작은 나눔이다
비가 철철 내리던 날 남편이 외국에서 오는 날 이라기에
내가 상추를 뜯어 줄께 했더니
쏟아 지는 빗속에 한시간을 운전해서 온다기에
난 남편과 철철 내리는 빗속을 뚫고 주말 농장에 가서
우산을 바쳐 들고 상추를 뜯어 전해 주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나눔 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하찮게 생각하는 작은 사랑이다.
그 친구는 내가 어릴 때 내 맘에 가장 아픈 상처를 주었다
난 지금도 그 기억 속에 홀로 외로워 할 때도 있다
철없던 시절 학교 가는 길. 하급생들에겐 찐고구마를 다 주었는데
난. 대장님 소리를 안한다고 주지 않았었다.
난 이 다음에 크면 고구마를 많이 심는 집으로 시집 가리란 꿈을
가졌었다. 하하.
그 친구는 나에게 꿈을 하나 둘씩 변하게 해 주었다.
얌전하던 나에게 도전을 받게 하던 친구였다.
난 더 잘 되어야 한다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 친구와 난 똑같이 서울에 와서 공부를 했고
똑같이 어엿한 숙녀가 되어 멋진 직장생활도 하였다.
지금은 서로 환경이 달라도 어릴적 동무로
가슴에 따스하게 남아도는 친구이다.
언제 만나도 해맑은 마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가슴에 맺힌 슬픈 기억을 말했을 때
난 친구에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 난 가해자이네.. \"
전혀 그런 생각이 나지 않네 하면서
\" 미안해 \" 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 짓던 순간.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껴주는 친구가 되었다
잘 살아야 해 ! 하며 늘 염려해 주는 친구가 되었다.
나누어 먹을 것이 생기면 아낌없이 들고 달려 와 전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홍제동에서 성내동 까지
병어를 냄비에 졸여 따근한 채로 가지고 와서 어서 저녁을
먹으라며 내 밀던 내 친구이다.
미움과 사랑이 늘 교차하던 어린 시절과 중년이 된 지금
난 행복한 사람이 되는 자리에 오늘도 초대 받고 왔다
차 뒷좌석에 배 두 상자가 내 고운 우정 안고 누워 있다
어서 가자구요..
효숙씨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구요.. 배 들이 말한다
부우웅.. 차창 밖으로 친구를 바라보며
맨날 받기만 하구 난 언제 주며 살지.. 하고 한마디 던진다.
백미러로 보이는 친구 얼굴엔 엄마 같은 사랑이 남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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