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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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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교사 체험기 5


BY 허무한 2006-09-26

그러고 보니 아이들도 가지가지다.
알랑방귀 형, 막무가내인 형, 눈치코치없는 말썽형.모범생형....

첫째 알랑방귀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넘들은 잘 떠든다.
그리고 내가 한마디 할 썽 싶으면 미리 선수를 친다.
\"옷차림이 너무 맘에 들어요\"
\"여태까지 온 대리교사 중에서 젤 맘에 들어요, 맨날 왔으면 좋겠어요\"
\"영어 액센트가 넘 맘에 들어요\"
\" 너, 날 놀리니?\"
\"아니예요, 정말이예요. 말하는 게 너무 귀여워요(?).\"
뭐 요렇게 미리 입을 막아 버리고 벌을 피해 보자는 심리다.

막무가내인 형.
\"자 지금부터 과제 시작해라\"
막무가내형 아이, 허공을 쳐다보거나 엉뚱한 잡지책을
내놓고 본다.
\"넌 왜 엉뚱한 짓 하고 있어? 왜 안하니?\"
\"난 원래 안해요, 해도 0점 받는데 하면 뭐 해요?\"
이런 애들은 달래도 안되고 어떤 방법을 써도 안 먹힌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그냥 교실 밖으로 쫒아 버리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설득하여 마음을 바꾸어 보고 싶지만 상주교사도
아니고 하루만에 사람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눈치코치없는 말썽형도 말하자면 막무가내와 좀 비슷하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든다.
살짝 경고를 한다.
\"만일 한번만 더 떠들면 추방이다. 농담 아니야\"
말을 알아 듣는냐 하면 결코 아니다.
\"내가 뭐랬니? 보따리 사서 조용히 나가. 사무실(서무실)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해봐.
니가 뭘 잘못해서 거기가서 앉아 있어야 하는지\"
사무실에 보내는 이유가 여기는 교무실이 없다.
\"벌써 한번 갔다 왔어요, 또 가긴 싫어요\"
하면서 떼를 쓴다.
\"그랬으면 안 가도록 노력해야지. 니가 더 잘 알거 아냐?\"
학생이란 넘이 연필도 없고 노트도 없다.
연필도 주고 노트도 줘 가면서 설득하려 했지만 그 넘의
입을 어떡하진 못한다.
못 들은척 했지만 그 넘이 응얼거리는 걸 분명히 들었다.
\"저 개같은*을 내가 왜 상대해야 할까\"
요런식으로 말이다.
아이를 보니 저능안지 정상안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간다.
안 간다고 떼를 쓰고 있는 넘에게
\"니 발로 걸어가지 않으면 사람을 불러서 데려가게 할테니 선택해\"
결국 그 넘이 포기하고 나갔지만 이런 애들은 대책이 안 선다.

능글이 형,
이런 애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실실 웃는다.
저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분간을 못하는 거
같다. 금방 뭐라고 꾸중해도 다시 내게 와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뭔가를 묻는다.
조용하라고 하면 내가 옆에 있을땐 입 다물었다가 자리뜨기
무섭게 다시 떠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애들은 대부분 과제의 5분의 1도 마치지 못한다.

어떤형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걔 중엔 적당히 말썽을 피우지만 그래도
정이 가는 애들이 있다.
첨엔 물론 애들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애들은 그래도 멍청하거나 그런 형은 아니다.
잘 설득을 하고 구슬려주면 진도를 나갈 수 있는 애들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누가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면
더 잘 하려고 하는 애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솔직히 모범생인 애들보다 더 정이 간다.
혹시 복도에서 마주치더라도 꼭 아는체를 하고 인사를 한다.
걔 중엔 한 넘은 교장앞에서 나를 \"우리 선생님\"
이라고 칭했다.

그럼 모범생은 어떤가?
애들은 간섭이 필요없는 아이들이다.
뭐든지 주어진 과제를 말없이 최선을 다해서 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니 나는 그애들의 이름을 모른다.
흔히 말썽장이들의 이름을 제일 외우게 될 뿐
모범생들은 이름을 부를 이유가 없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 이 부류의 애들은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면
싹 무시하고 지나간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냉정한 아이들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말려들지 않겠지만..
내가 볼땐 이 애들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교사이던 대리교사이던 다만 자기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교실에서 인간적인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밖에서 보면 싹 무시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떨땐 내가 보기엔 꽤 괜찮은 애 같은데도
매일 벌을 받는 애들이 있다.
이런 애들은 그냥 특정교사와 코드가 맞지 않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그 넘은 말썽장이야\" 라는 정보를
그 전 담임으로부터 물려받고
그냥 재고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치부해 버리고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동네 북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걔는 원래 그런 애라는 인식이 있어 아무도 동정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애가 다른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뀌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일례로 대리교사 가기전에 미리 그 담당교사를 만난적이 있다.
그녀는 명단을 훑어 내려가다가
\"교사로써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넘은 입 열면
그냥 사무실에 보내 버려요. 난 이 애한테 학을 뗏어요 그러니 상대할 필요도 없어요\"
나는 그냥 선입감이 없이 교실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날 수업을 햿지만 그녀가 그렇고 그런 애라고 말한 애가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물론 교사라는 일이, 아이를 상대하는 일이 때때로 무척 피곤하고
힘든 일이라는 걸 알지만 이런 경우는 좀 슬프고 답답하다.

또 하나 더,
앵무새형이 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서 놀려먹는 취미를 가진 애들이다.
내가 한마디 하면 그대로 흉내낸다.
아이들이니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한 번 두 번 자꾸 반복이 되면 이쯤해서 끊어줘야 한다.
\"물론 나는 너희들과 다르게 말한다. 그렇다고 그걸 흉내낸다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니야. 지금부터 누구든지 내 말투를 흉내내는
아이는 사무실형이다\"
이 정도 해주면 대부분 그친다.
그런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는 애도 있다.
문제를 푸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멍청한 거 같지는
않는데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형이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한 명의 아이라도
더 희망을 주고 가능성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게 내 일의 보람이라고 생각햇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일을 마치고 사인하고 나올때 사무실 직원이 물었다.
\"오늘은 어땠나요, 할 만했나요?\"
\"아이들인 걸요.\"
하면서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녀는 폭소를 터트리고 나도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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