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어머니와 손위 시누형님들과 남편 봉식씨 그리고 배다른 형님 내외분, 이분들을 놓고
각각 한사람의 어른으로서 감히 평가를 해 보라면 이분들중 누구도 남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그리 특수하게 못 되고 아주 극악한 인간이라고 평가 받을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저분들의 며느리가 된다든가 시누 올케지간이 맺는다든가, 동서지간이 된다든가
어떤 동등한 크라스에 속해서 저분들과 친구관계가 된다는가 하면 저분들의 시샘과 질투때문에
필요이상의 구속을 당해야 하고 저분들의 심술에 남모를 고초를 격어야 하며
저분들의 끊임없는 입담에 의하여 최소한의 자존심마져도 완전 강타 당하는..
어찌보면 하나같이 우중충한 여인들이 되는것이다.
어떤레밸의 인간이든 간에 이분들 앞에선 누구도 상큼한 여인이 될수 없고 그누구도
흉허물의 대상에서 비켜나갈 여지가 없었다..
내가 결혼했을때 막내시누 형님댁은 우리집에서 도보로 7분 거리쯤에 위치해 있었다
장가가더니 완전히 지집한테만 빠진 봉식이는 나쁜놈!! 이라는 구설을 면하기 위해서
날마둑 일수 찍듯이 시누형님댁엘 들렀는데, 시누형님댁에 가면 그때 한참 혈기왕성하시던
어머니와 시누형님, 그리고 애들 고모부님 세분이서 나누는 대화거리는 주로 집안의
누구를 지목해서 그사람의 사생활을 들추고 비난하는거였다.
이분들이 날마둑 험담의 대상으로 꼽는사람들은 1순위가 봉식씨의 배다른 형수이고
두번째로 이모님의 큰 며느리, 그러니까 나의 이종 동서형님 그담으로는 사촌형님들 내지는
어머니와 동서지간 되시는분들과 그외의 자기 시집식구들 등등 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그래도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니다. 누구든 흉허물 없는사람은 없는거고
어쨋거나 본인의 귀에만 안들어가면 무사하니까,
그당시 내가 당사자가 아님에도너무 부끄러워 할 말을 잃었던,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인간이하의 몰상식으로 생각되는것 몇가지중에 기억나는것 한가지를 이야기해야겠다.
지금은 어떤일을 계기로 180도 달라지셨지만 그때에 한달이 멀다하고 시골에서 아들집에
다닐러 오시기만 하면 며느리와 머리채 잡고 싸우시고(그게 매일 시누님댁에서 화두거리였다.)
아들내외를 날마둑 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거의 이혼직전까지 이르게 하곤 하셨던 이모님이
철썩같은 동기간인 언니(봉식씨 어머니)를 보러 오신다는 이유로 수시로
시누형님댁엘 들르셨었다. 낮에는 어머님이 시누형님댁에서 계셨으니까.
그 이모님께서 둘째 아들인 도련님을 장가 들일려고 여기저기 다릴 놓던중
드디어 소원하시던(큰며늘을 못마땅해서 윈수보듯 하셨으니..) 둘째 며느리를 보시게 되었다.
중학교 중퇴하고 그뒤 건설현장으로 객지생활 하시던 도련님과 고등학교 나온 과수원집
딸과 중매로, 당근 도련님의 학벌은 고등학교로 늘려서.
이정도도 속였다는게 문제지 사실 암껏도 아니다. 두사람이 눈이 맞았으니까.
어느날 도련님의 색시 될 아가시가 도련님을 만나기 위해서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왔다가 마지막 기차를 놓쳤는지 그날 밤 두사람은 합방을 치렀다고 한다.
결혼 앞둔 사람끼리 어떻게 하다보면 실수로 합방을 치룰 수는 있는거였다.
그러나 도련님과 아가씬 중매로 만난지 얼마 안되서 합방을 치렀다는 것을
시가 어른들까지 다 아시고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것이
어찌보면 아직 미혼인 당사자에게는 몹시 수치스러울 일이었다..
그런데,,,,
결혼도 않하고 만난지 얼마 안되서 얼떨결에 무방비 상태에서 일을 치뤘으니
두사람은 혹시 임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로 걱정을 하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동서 될 사람은 순진했으니 나름대로 맘을 몹시 조렸겠지.
그러던 차에 생리가 나왔던 모양이다,
아가씨는 기쁨과 안도하는 마음으로 도련님께 편지를 썻던 모양이다.
임신 됬을줄 알고 걱정했는데 어저녁에 생리가 나왔어요.그러니 임신이 안되었으니
당신은 걱정하시지 말아요.. 라고
오직 두사람만의 사랑스럽고 비밀스런스런 내용을 예쁜 편지지에 적어서
남편될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왔는데,
순진한건지 미련한건지 마마보이 도련님은 그만 자기 색시가 보낸 편지를
자기 형에게 보여주고 형수에게도 보여주고 시골에서 뻔질나게 올라오시는 어머니인
이모님께도 보여주고,,
말재주가 기가막힌 이모님은 며느리 될 애가 그랬다고 그 편지내용을 고향으로 어디로
동네 방네 소문내고 다니셨으니
입방아 꾼들의 아지트인 시누님댁까지 그 편지의 내용이 전달이 아니 되었겠는가!
당근 1순위로 날라왔던것이다.
뭐 그것까지도 참을수 있다. 늙어서 그러련.
시누님댁에서 모였다 하면 어머니와 시누형님들과 고모부님의 화재거리는
그 동서될 사람이 혼전에 모질라는 여자처럼 잤다고..
또 어머니는 며느리인 나에게 오셔서는 당신 조카인 도련님 이름을 부르시면서
갸 색시감이 그랬단다 미친년이여,, 하시며
계속 깔깔깔깔 웃어죽겄다고 배꼽을 잡고 웃으시고 조카며느리 될사람을
가지고 노상 웃음거리로 삼으시며 깔깔대고 웃으셨다..
그 뒤로 동서가 들어오고 난 뒤에도 몇년을 그사람 없는 자리에선 미친년이여
챙피한것도 모르고 어떻게 그런 편지를 써서 보냈냐고...살다살다 별일을 다 본다고
수다스럽게 험담하고 또 배꼽 잡는다고 어린애들처럼 깔깔대고 웃으셨다.
하여간에 그런 사실을 등잔밑이 어두워 당사자인 새색시만 모르고 온 집안 사람들이
다 알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희안한건,
어머님은 조카며늘들 없는 데선 미친년들여.. 지 시엄니한테 그렇카구..
미친년들여 종딕(조카)이가 죽것다고 벌어다 주면 홀딱 써서
이모가 그냥 부화가 나서,, 그냥 몇일을 잠도 못자고 속이 썩어서 병이 났댜
그렇게 당신 딸들과 이모님과 모이셨다하면 며느리들을 흉을 보시고는.....
막상 그 동서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안면 싹 바꾸시고...
가장 편안하고 너그러운 시이모님인것처럼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렇게 철저한 이중생활을 하셨다.
그 동서는 이모님이신 봉식씨 어머니나 시누형님들께서...
날이면 날마다 자기들을 무시무시한 요리감으로 삼았다는걸 짐작이나 할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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