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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위해서.


BY 정자 2006-09-23

어렸을 때 조기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살림을 하는 방법일 거라고 나는 두고 두고 생각했다.

 

원체 일을 하면 글석맞다고 하고, 난  제대로 하려면, 더 안되는 방향으로 틀어져서

결국 울 엄마가 그런다.

으이그..이 칠칠 맞은 것아!

나중에 어쩔려고 그렇게 털털맞냐?

뭐하나 오물딱지게 하는 게 없으니 뭐 될려고 그러냐?

 

이런 말씀도 말고 하도 많아서 일일히 기억해내기도 힘들다.

이런데다가 선머슴과라서 덤벙 덤벙 잘도 일을 저지른다.

대문이 안 열리면 누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왜 담을 넘어 ? 넘기는 그러니까 다리 삐고, 병원가고, 언제 누가 급하게 담넘으라고 시켰냐? 그러면 아니~~.

 

어찌 어찌 커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사는 걸 보니 울엄마 또 걱정이시다.

늘 덜렁 덜렁 대니 칠칠맞은 애니 울 남편보고 고생한다고 늘 미안하다고 하신다.

내가 딸이 하나 있으니 망정이지, 둘이 였으면 헷갈리는 일이 많이 있을거란다.

그러더니, 이젠 덜컥 딸내미가 회사를 그만두고 청소부로 취직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한걸음에 우리집에 내려오셨다.

 

아이구, 야 야..니 집에서나 설겆이 잘하고, 애들 그동안 니가 키운 거냐? 순 니 서방이 키운거지, 글고 니네 마당이나 더 쓸지, 또 어디 청소를 하러간다고 일만 내냐? 너 같이 일 못하는 애도 쓴다냐?

 

 아무리 울 엄마라도 해도 너무한 말씀을 하신다.

나도 얼결에 결정 된일이고, 아직 사지육신 멀쩡하고,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모두 아주머니들이고, 뭐가 걸리냐고 했는데, 울 엄마는 당장 안한다고 못한다고 학교에 전화 걸으란다. 그러면 뭐하나... 딸내미 고집은 똥고집이고.

 

그러니 울 엄마 찬송가 부르시고, 날 잡고 기도하시고, 제발 정신좀 나라고 신신당부하고.

그래도 기어코 나갔다. 올 여름에는 난 대걸레를 사용 하는 법부터, 화장실청소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그냥 일한 것은 아니다. 하루 삼만원을 일당을 받는 것이고.

 

울 엄마는 수시로 전화를 하신다. 니 오늘 안 짤렸냐?

에궁 환장 하겄다. 잘 하라고 빌어주시지 못하고 되레 언제 그만둘거냐고 성화시니.

사실 청소하는 일보다 근처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유독 나는 못 할거라고 하시는 울 엄마나, 다른 주윗분들도 느닷없이 잘 나가는 회사는 그만두고 웬 청소부를 하냐고 하고. 심지어 울 딸내미도 그런다.

엄마! 보험회사에서 짤렸어? 왜 청소하러 다녀?

 

그러거나 말거나 두달을 다니고 있는데, 같이 일하시는 청소부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신다. 그제야 그들의 연세를 보니 가장 어린 분이 육십대이고, 젊은 분이야 청소과 과장님이 오십대중반이니, 나야 아직 사십대고, 그들의 눈에 뭐가 부족해 보인 거다. 젊은 사람이 오죽 할 게 없으면 청소하러 다니냐고 하는 말이 나의 귀에도 들어 왔다.

 

 거기다 비리 비리 말라보이고, 힘도 성차지 않을 것 같으니. 청소반장 아줌니가 나를 과장님에게 일을 잘 못하니 다른 사람을 구해달라고 건의까지 했어나 보다. 그래도 난 할려고 한 건데. 그래서 어이없게 울 엄마가 늘 기도 했나, 난 청소부도 두달 만에 짤렸다.

 

 문제는 남편에게도 울엄마에게도 말 못하는 거다. 큰 소리 탕탕치고 일년이고 이년이고 계속 할 것이고 뭐 그런 허세를 부렸는데, 이거 출근하는 시간에 갈 데없는 실직자들 마음이 꼭 내 마음이었다. 어디로 갈 지. 산으로 갈지, 괜히 한 바퀴 이 동네 저동네 기웃거려도 시간 보면 겨우 점심시간이고, 오후를 보낼려니 만만한 곳도 없고. 서울이라면, 맨 전시회에 하다못해 탑골 공원에 빙 들러 걸어보기나 한다지만,

 

 그래서 할 수 없이 또 도서관에 출근 했다. 그래도 차도 지정석으로 주차 할 수있고. 영화도 매일 다른 거 골라서 본다고 해도 대여료 안받고, 책도 공짜로 보는데는 도서관 만한 데가 없다. 그런데 거기서 나를 청소하는 대학교에 소개해준 아줌니를 만났다.

 

 그 아줌니도 도서관에 시간제로 일하시는 분인데.

이 분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으신다. 나는 속으로 일도 못해서 짤린 거 아직 모르시나보다 하고 말씀드릴려고 입을 열려고 했더니.

\" 에그..왜 그랬어. 어른신들 커피는 타드려야지. 그 분들이 다른 감정에 그런 게 아니래.

 다시 나와서 청소하라구?\"

\" 예?..무슨 말씀인지...\"

 

 사실은 그렇단다. 그런데서 일하시는 분들은 고참과 신참이 있으면, 신참이 늘 선배들 커피도 타주고 치닥거리를 해주는 건데, 난 내 일만 보면 후딱 집으로 가더란다. 그리고 과장님 사무실까지 치워주고, 커피도 챙겨주고 그래야 되는데, 그런 거 안해준다고 과장님에게 건의를 했지, 그만두라고 한 적이 없단다.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안 보이니. 청소하시는 분들이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나서 소개해준 나에게 전화가 왔는데. 듣고보니 사람이 싹싹하고 좋은 데 몰라서 그런 걸 어떻게 그만두라고 하는바람에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단다.

 

 그러니까 내가 일을 못해서 짤린 게 아니고, 단지 커피도 제대로 못 타주고, 뒷 치닥거리를 못해서 그 말만 했더니, 관리과장님은 덜컥 나를 그만두게 했다는 말인데. 나에겐 다행이다 싶다. 사실 내 생각엔 커피심부름이나, 자잘구레한 일은 누굴 시켜 하는 것보다, 스스로 움직여서 하는 게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꼭 누굴 시켜 받아 먹는 맛이 틀리다면, 다방에 주문해서 먹어도 될 것인데.

 

 난 다시나오라는 말을 사양했다. 사실 그 말은 반갑지만 누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 전에 얼마든지 나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 그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일에 우선 성급하게 무리수를 두는 그들의 태도에 과연 내가 맞춰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반가운 것은 나도 어디서든 청소부를 할 수 있고. 일은 힘들더라도 서로 사람관계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될 자리라는 것도 몸으로 익혔으니 값진 경험이다.

 

나는 얼른 울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청소 그만뒀어? 헤헤...

울 엄마 반갑다는 목소리로 잘 했다고 한다.

내가 널 위해서 얼마나 기도 한 줄 아냐?  

 

얼른 남편에게도 그만뒀다고 해야지. 에구..아침마다 갈 데 없는데.출근하는 척도 할 짓이 진짜 아니다. 그래도 도서관이 있었으니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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