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아! 준비 다 되었능 겨?
예!
가을이 오면 초등학교는 가을 운동회를 꼭 한다.
여기는 가을 운동회가 온 동네 축제와 다름이 없다.
학교 입구에서 부터 만국기가 형형색색으로 휘날리고
몇 십년전 초등학교를 졸업한 선배이며, 아버지들이 풍장을 들고 나와서 들어오는 입구가
들썩들썩거려서 좀체 엄덩이를 주저 앉아 있을 틈이 없다.
특히 올해는 칠년전 이혼하고 막내가 두살박인 아들까지 포함하여 셋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난 며느리가 돌아와서 우리 영은이와 동갑내기 딸내미
운동회를 같이 참석하여 더 들떳다.
아침마다 엄마찾는 아이들 울음소리에 집떠난 에미귀에도 들어가라고
고래 고래 울 던 그 큰 딸이 영은이보다 더욱 크고 튼튼하고 건강하다.
할머니의 부단한 부지런함에 아침마다 난리를 부리는 손자손녀를 보내놓고
우리집 마루에 걸터 앉아 장미담배를 길게 피우며 그랬다.
그래도 이혼을 열 번 해도 지자식은 여기 있으니께 돌아 올 겨..
자식 낳은 에미는 자식이 집이니께.
지도 어쩔 수없이 돌아 올꺼구만!
혼자서 당신들으라고 다부진 그 말을 하구 또 하셨다. 어쩌면 그게 돌아오라는 기도와 간절함이었는지, 정말 거짓말같이 그 며느리가 돌아와서 운동회라고, 김밥을 싸며, 나에게 할머니는 같이 가자고 마당에 들어서는 목소리가 당당하시다. 할머니네 단감나무가 많이 열어 내가 단감을 좋아한다고 한 바구니 푸른 단감을 따오시더니, 지금은 안 준다. 울 며눌도 단감을 좋아한다면서 단감을 담은 바구니에. 어제 얘들과 밤 주우러 가서 삶아 온 도시락을 여신다.
삶은 땅콩을 좋아 하시니 아예 두 봉다리를 챙겨 오셔서 하나는 우리 것 하나는 손자 것,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은니가 박힌 잇몸 훤하게 실컷 웃으신다.
손녀는 우리 영은이와 같은 청군이다. 오전 내내 청군은 오자미도 늦게 터지고, 어른신들 바구니 이고 한바퀴도는 게임도 청군이 졌다.
이러다 우덜 청군이 또 지는 거 아녀? 작년에도 다 이겼는데, 백군에게 뒤집혀져서 진 것 아녀. 가만히 있어 봐봐. 야내들 모덜 데리고 와서 뭐 좀 먹여야 하는 겨 아녀?
심상이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관심은 사실은 없다. 높디 높은 가을 하늘마냥 즐거운 자리가 꼭 다른이에게 전염 시키듯이 그러고 싶은 게다. 지나가는 애들보고 삶은 밤을 주머니에
질러주고. 니 달리기 잘하나? 울 손녀가 영민인디. 니 갸보다 잘뛰나?
머리에 청군띠를 두른 아이보고 뭘하러 물어보냐며, 백군한테 물어 봐야지 하면서 옆 집 원당할머니가 참견한다. 가만히 보니 그러네.. 긍께 우덜이 청군이지.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니, 젊은 애기엄마는 중국집에 전화한다. 여기요..초등학교예요. 탕수육 대자리 두개하고요, 서비스로 군만두 꼭 갖고 오시구요. 아! 그리고 단무지하고 양파도 많이 갖고 오시구요.! 조금 있으니 또 옆에서 손전화에 소리 질러댄다. 풍장소리에 그 쪽 소리가 가물 가물한 가보다. 저기! 거기 치킨 시마리. 아 그러니께 세마리 후딱 튀겨갗고 젤로 키큰 나무 그늘로 오랑께!
자모회에서 금방 해 온 꿀떡에, 겉저리에 동글동글한 알록달록한 김밥에 복수박이 이렇게 다니께 포도도 디게 맛잇는 겨. 니 이거 먹고 달리기 일등을 꼭 해야 한다! 할머니 나 일등하면 뭐 해줄 건디? 야 이눔아 일단 일등 만 해 봐봐... 내가 니 업고 뛸거다. 근처에 그 소리 듣던 청년회 회장이 그런다. 에이! 할머니 업고 또 뛰라고 할려고 그러시지?
유치원생이 다 합쳐 열네명이 꼬까옷 입고 시집 장가가는 춤을 보니 울 어른신들 뒤집어 지신다. 신방이 운동장이여? 긍께 저게 무용이제? 잘 보라고...누가 모른디야..우덜 보라고 재롱잔치잖어? 잉. 인제 정신 나는 겨?
그러다 드디어 청백계주가 시작되었다. 모두 돗자리가 훤히 비고, 내빈석에 있던 손님들도 모자 흔들고, 풍장치는 사람들도 둥글게 그어진 선 바깥에서 징징 대고, 그 바람에 나도 얼결에 같이 서서 응원하는데.
내내 지던 청군이 처음에 늦게 출발하더니 두 바퀴돌고 세바퀴에 영민이가 역주를 한다. 간발에 겨우 역전을 했는데, 또 다시 백군이 키 큰 남자애가 저만치 먼저 뛰니, 영민이 할머니가 그런다. 내 업고 뛰라는 말 안할테니 빨리 빨리 뛰기만 혀! 아이고 백군이 왜 이렇게 잘 뛰는 겨?
그렇게 마지막 주자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얼라라! 우리 영은이가 마지막 주자다.
청군의 미지막 주자가 영은이네 했더니, 영민이 할머니가 벌떡 벌떡 뛰신다. 그러시더니 영은이가 뛰어 오는데 박수를 치시며 마구 따라가시니, 영은이가 골인 지점 한 오십미터 남겨놓았나 갑자기 다리가 안 보이게 냅다 질러버려 일등으로 골인해버리니.
높게 헹가래처럼 모자가 던져지고, 꽹과리가 징이 북이 함꺼번에 뭉쳐져서 나도 얼이 나가고.
영은이가 나를 향해 뛰어 온다. 모두 박수로 함박웃으니 우리도 뱅글 뱅글 돌았다.
그 동안 그렇게 아퍼서 고생하더니 이젠 몸이 건강해져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영민이 할머니가 또 삶은 밤을 한주먹쥐어주고, 영민이보고도 어이구 내 새끼땜에 우덜 청군이 이겼다아! 하셨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할 딸내미 가을 운동회가 될 것이다.
2006년 가을운동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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