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죄가 되던 세상이 나에게 덩그라니 놓여있던 시절.
몇 년을 웃어 본 일이 없었다.
몇 년을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다.
원하지 않았던 주홍글씨가 에이자로 선명하게 낙인 찍힌 까닭에..
사람들은 그랬다.
여자가 품행이 방정하지 않으니 남자가 달려 든거라고.
아무리 강간하려 들어도 여자가 거시기를 벌리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은게 강간 이라고..
꿈이 많던 시절 아버지 말씀대로 변호사도 되고 싶었고 진정 바랬던 건
유아교육학을 나와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게 꿈인,나름대론 아름답고 총명한
스므살의 처녀였다.
꿈많던 스무살의 나이에 한남자에게 몹쓸짓을 당하고 아이를 가진걸 알았을땐
.......
세월이 지났는데도 후회하지 않은건 내게 주어진 운명 이랄까 그 운명 같은
세월을 거부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반대하고 엄만 약까지 드시며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으셨지만 내 몸 안에 자리잡은 아이는 나에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아이를 버린다거나
포기 해서는 안되는 나의 분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남잔 결혼하자 목을 메였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한 내 사랑을 갈라놓은,
아니 내 사랑 하는 남자에게 상처를 준 그 남자를 용서 할수가 없었다.
몹쓸년!
자존심 강하시던 엄만 깨어 나시면서 내게 그러셨다.
집을 나가라고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 못 살겠다고..
맘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데 그렇게 집을 나온 날, 엄만, 밤이면 문가에서
오래도록 기다리 셨단다.
그렇게 집을 낳아 아이를 낳았다.
여자로서 인생은 여기까지다라는 각오와 평생 결혼 하지
않을꺼란 각오가 함께 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젤 먼저 떠 오르던 첫사랑의 모습.
그가 환영처럼 병원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선하디 선한눈으로 슬프게 나를 바라봐 주던사람.
부모님껜 내 아이라고 그럴께 그렇게 다시 시작 하자라던 사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던게 해남의 작은 어촌 이였지.
그는 전경 이였고 상병 이였는데..
뱃속에 다른 남자의 아이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가슴에 품고
엉엉울며 날 놓아주질 못하던 사람.
어찌 그리도 모질고 매정 했을꼬.
그냥 돌아 설수도 있었을터.
다들 다니던 유치원 사진이 우리 아이에겐 없다.
일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유난히 엄마의 손길과 발길을 찾는
유치원엔 아이의 상처가 클까봐.
초등학교 대학교를 졸업 할 때 까지 학교에 찾아가 본 적이 없는데
아인 우등상을 놓친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땐 모범 어린이상으로 시장 상을 탔었고 대학내내
온 장학금을 놓친적이 없었다.
그렇게 이쁘고 착하게 크리란걸 알고 낳은건 아닌데도..
벌써 스물 하고도 아홉이니 세상사 참 빠르기도 하다.
세상물정 모르고 책만 파고 드는 아이인지라 삼촌들은 가끔씩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에게 띨빵이라는 애칭을 붙혀 주었다.
며칠전 통화중, 사는 집이 이젠 우리집 이다 했더니 우리 아이왈, 엄마 그럼
마당에 잔디랑 나무도 우리게 되는거야? 란다.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떨어 지기도 전 아이의 띨빵 같은 소리에 하하하..
사는건 산넘어 산이라 했는데 이젠 또, 얼마만한 산이 가로막고 설련지.
목메여 집을 산다거나 특별한 소유욕이 없었기에 무덤덤 할 줄로만 알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지나온 날들의 파편이 가슴에서 도지듯 빠져 나가는
느낌이 그랬고, 속 깊은 아이 한번도 아빠가 누구냐고 묻지 않는 그 깊은 속내와
그 설움이 내가슴에서 뭉클 살아나 눈물이 나왔다.
어려서 아인 내게 물었다.
누가 세상에서 젤루 좋아?
글쎄.
그럼 나는 몇번째 좋은데.
음. 두번째!
그럼 첫번짼?
음. 첫번짼 비워 놓은거야 더 좋아지는 사람이 생길까봐.
아인 울지도 않고 떼를 썼다.
내가 첫번째 할거야!
안돼!
엄마 맞아? 우리 엄마 맞어?
엉! 그럼~.
이젠 아인 묻지 않는다.
그 첫번째가 저라는걸 알아 버렸나보다.
아님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잊혀져 가는지.
젊은날 내게 연연해 주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내 흉허물을 다 접구 정말로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도 알고 있다.
처년줄로 알고 다가 왔다가 상처만 받구 간 사람도 알고 있다.
그땐 아는척 하는것도 죄가 되는줄 알았기에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젠 다 안다고...이야기 한다.
돌아보면 서러움 가득가득 배인 날이 더 많았건만 그래도 아이로 인하여
살만한 세상 이였다고, 이세상 떠나는 날 소풍나온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그
렇게 세상 살다 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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