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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식씨의 일기


BY 영영 2006-09-11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데 버스에서 순팔이 영식이 관수를 만났다. 
동네 앞에서 막 내리는데 관수가 \'야 봉식아 순대국집에 가서 쏘주나 한잔 하고갈래?\" 
그래서 우리는 다 함께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눈이 펑펑 오는날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순대국집 아줌마가 끓여주시는
안주와 마시는 술 발이 잘 받아서 외상으로 한병 더 먹고싶었지만 
괜히 교복입고 다니면서 낮 술 먹고 다니다가 
교생선생님께 걸릴까봐 한병 가지고 두잔씩 노나먹고 집으로왔다. 
집에 오자마자 졸려서 다락으로 올라와서 교복 벗고 누웠는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면서 저번에 빵 집에서 만났던 경자하고 명숙이 걔덜하고 한참 노는 꿈을 꾸다가
오늘도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오셨는지 엄마와 싸우시는 소리에 깼다

.................


봉식씨에게는 배 다른 누나와 형님 한분, 그리고 친 누나 세분 이렇게  계시는
육남매의 막내이자 어머니께는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요. 
아, 아래로 남식이라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분은 아홉살때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집 앞 물 웅덩이에 빠져서 불행하게도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봉식씨는 그때부터 이다음에 장차 커서 부모님을 부양하고 
부모님의 제사를  물려 받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 어머니께는 가장 든든하고 
귀한 외아들이 된거래요.

초등학교 1학년 중간까지 다니다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중도에 자퇴하고
일찍암치 9살때부터 타지에서 장사하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꼬마 장사꾼이 되었던 배 다른 형님과, 어린나이에 출가한 배 다른 큰 누님, 
그리고 친 누님들 세분등 
그분들에 비하면 봉식씨는 유일하게 고등학교 까지 입학 시키셨다 해서 
어머닌 봉식씨에게 막대한 희망과 기대를 안고 사셨대요.
 
봉식씨는 대학에 가고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가정의 형편 때문에 
공부보다는 지술(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여야 된다는 어머님의 의견에 따라
실업게 고등학교에 지원해서 고등학교 2학년인 열일곱살에
영등포 모 방직회사의 전기기술자로 취업 나온 그날 부터 현재까지 40년째,,
어머니를 모시면서 가족을 부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지요.

몰론 봉식씨에겐 
어릴때부터 서울서 숫장사로 가정을 꾸려 가시던 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버진 봉식씨 고등학교 2학년 되던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도 
못 가보시고 누우신지 사흘만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후 봉식씨는 영등포의 어느 방직공장의 천정 속에 들어가 
거미줄과 먼지속에서 뺀지들고 전기 손 보는 일로 
아버지 대신에 가계를 꾸려 가던중 군 입대 영장이 나와서 
군대를 갔는데요, 
아들이 군에 가면 이 애미는 뭐 먹고 사냐고 
울며 너무나 한탄을 하시는 어머니때문에 봉식씨는 군에가서도 
늘 불쌍하신 어머니 생각으로 불안불안해 하는 착한 아들이었답니다.

그런 봉식씨는 군데에 있으면서도 하루도 맞질 않으면 잠이 안 왔다고 해요.

쌀쌀맞은 누나들 밑에서 막둥이로 어머니껜 귀한 외아들로
그래서 누나들보다는 더 많은 챙김을 받고 커서 그런지 
봉식씨는 클때까지 누나들에게 욕도 많이 얻어먹고 혼나가며 
성장하기도 했는데요.
 
그치만 실상보다 남의 이목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갈줄 아시는
눈치구단의 어머니와  누나들 틈에서 자란 봉식씨인데 
군에서도 멍청하게  맞을짓이나 할 바보같은 사람은 아닌것같애요.

봉식씨는 어머니께도 호된 매를 맞을때가 많았는데요
어머니께선 매를 드셧다 하면
여느 어머니들처럼 회초리로 몇대 때리시는게 아니라  
보통 장작깨비가 두어개는 부러지도록 무섭게 맞았었다고 해요..

어느날인가 그날도 방학때라서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가 
한강변을 헤집고 다니다가 해가 뉘였뉘였 해 질무렵이나 
다 서 그제서 집생각에 들어왔더니요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 어찌나 화가 나셨던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더랍니다.

어머니를 닮아 눈치 구단인 봉식씨,, 
오늘은 엄마에게 붙잡히면 다리하나는 부려져야 되겠구나 
싶어 두려운마음에 냅따 줄행랑을 쳤다고 해요.

그랬더니 대문 밖으로 달아나는 봉식씨를 쫒아 오시던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둑이야!!! 저 놈 잡아라~~!!\" 라고 
크게...  외치셨답니다....

그럴때마다 지나가는 어머니의 다급한 고함소리를 들은 행인들은 
봉식씨가 진짜 도둑놈인줄 알고 의기협동하여 
어린 봉식씨에게 모두 달려들어 잡아다 어머니앞에 
고스란히 대령을 하곤 했다네요....

그길로 봉식씨는 집안으로 끌려 들어가서 
죽지 않을만큼 매를 맞곤 했다고 해요.ㅋㅋ

봉식씨 어머니는 급하거나 화가 나시면 어린 자식에게도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워 곤경에 빠트리는 방법으로..
어느상황에서도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셨다고 합니다....

봉식씨의 형제들은  모두 어머니의 매를 무서워했는데요

결혼식 하루 전날 어머니께 장작으로 머릴 맞아 
철철 피를 흘리고 머리에 붕댈 감은채 
시집 간 큰 누나 이야기도 전설적이긴 해요. 

그런가운에서도 외향적이고 순진하고 봉건적인 성향을 가진 
봉식씨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너는 이집의 외 아들이니
너를 고생하며 키우신 어머니께 반드시 효도 해야 된다라는 
조기교육을  잘 받고 성장한지라 
자기 어머니와 형제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각별한 
착한 아들이었답니다....
외향적인 성격이다 보니 막상 행동은 잘 안되엇겠지만요.

봉식씨가 17살때부터 직업전선으로 취업나가 일을 하고 
한푼 두푼 힘들게 일한 월급을  봉투째 가져다 드렸슴에도 
어머니의 약간은 푼푼하신 살림솜씨때문이신지 
단 두식구 가정형편은 늘리기는 커녕 
날마둑 돈에 쪼들리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 
어느새 장가들 나이가 되었다고해요.

생각다 못한 봉식씨는 머나먼 중동땅으로  한 1.2년만  다녀 오면
장가는 갈 수 있겠다는 계획을 하고 
전기 기술자직으로 중동으로 나갔다고 해요.
그때만해도 정권이 바뀌기 직전이라 우리나라 일꾼들 
중동에 1.2년만 갔다 와도  땅도 살수 있고 왠만한 단독주택 한채는 
산다 하던 그시절 이었답니다.

봉식씨도 대형 건설회사의 중동 현장 전기 관리소장이라는 
중요한 입무를 띠고  
외화를 벌러 나간만큼 남들만큼의 많은 액수의 월급이 매달 꼬박꼬박 
한푼도 안쓰고 어머니통장으로 붙여 드릴수가 있었답니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이 나가고 없으니 장사 하시는 막내 누님댁으로 
들어가셔서 살림을 맡아 해 주시고 계셨기에 
일정의 보수를 받는건 아니었지만 담배값등 누나집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 하실수 있었기에 
아들에게서 붙여 온 돈을 단돈 십원도 안쓰고 모두 저축을 하실 수 
있었답니다.


봉식씨는 한참 젊은 청년 나이에 그 뜨거운 나라 중동에서 
2년을 버틸생각을 하니  매우 힘들었지마는.. 
너가 보내오는 돈은 매월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는 
글 모르시는 어머니의 대필로 보내오는 누나의 편지를 받을때마다

보람도 느끼고 어서 돈을 모아서 한국에 들어가면 장가도 가고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희망감으로 
중동에서의 2년의 세월을 보낼수 있었다고 해요.

드디어 2년이라는 약정한계약이 완료 되자 봉식씨는 꿈에 부푼 마음으로
새카만 얼굴을 하고 누나들과 부모님이 계시는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니 누나와 어머니께서 봉식씨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기왕에 나간 것 이참에 한 일년만 더 고생하고 오면 어떻겠냐고 
중동으로 다시 나가줄것을 종용하시더랍니다. 

하여 그때만 해도 어머니와 누나 밑에서만 뱅뱅 돌은 자기 개성이라는건 
눈 씻고 찾아볼래야 없던 착한 봉식씨였던만큼 
어머니와 누나의 말씀을 따를 아량으로 다시 중동길에 나섰다고 해요. 

고등학교때부터 직업전선에 나가서 일했지만 나이 서른이 다 되가 나이에 
장가도 못가고 다시 중동으로 나간것이죠.

그 지겹던 일년도 어느새 가고 어느새 다시 계약완료가 되어서 
꿈에 부푼 맘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이 계시는 서울로 돌아왔답니다.
어머니와 누님들께 반가운 인사를 하고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그동안 못햇던 휴식도 취하고
한 며칠을 그렇게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봉식씨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벌었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어머니께 통장을 보여 주시라고 했답니다.


그랬는데,,,,

그제서 어머니와 누나들은 난 그 돈 모른다 하고 서로 답변을 미루시더랍니다.

,,,,,,,


늦게나마 장가 가서 불쌍한 어머니를 모시고 오손도손 행복한 
가정을 꾸려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 지혹같은 중동땅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봉식씨..
어머니와 누나들의 말을 듣고 40도를 웃도는 더위에 헐 벗어 가며 
모래사장에서 뺀찌 차고 고생한 불쌍한 봉식씨,,,, 

17세부터 방직공장으로 건설현장으로.. 나중엔 머나먼 타국
중동까지 나가서 하루도 안쉬고 일했지만
여전히 빈곤을 면치 못하는 가난한 봉식씨,,,,,


그날부터 술로 방황으로 영등포의 밤거리를 누비는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것도 장사하는 누나에게 매일 용돈이나  얻어쓰는 식으로.......



사계중 6월의 뱃노래 Vladimir Ashkenazy(Piano)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