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저쪽에서 딸아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엄마! 또 나타났어. 그 남자.”
“엉? 그 남자가 누구야?”
“몇 달 전에 나타난 옷 벗은 남자.”
“어엉? 바바리 맨?”
대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대전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 있다가 중국유학생은 많고 기숙사는 좁고,
그래서 2학년 때는 과친구랑 둘이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냉장고도 딸려 있는 원룸식 방을 얻을 때도 딸아이가 알아서 얻었고,
자취를 한지 얼마 안 지나 처음 바바리 맨이 나타났을 때는
일을 다니고 있어서 딸아이 자취방에 가보지 못했다.
처음 남자의 발가벗은 몸을 본 뒤 딸아이는 두통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리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지만 딱히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없고,
내가 대전으로 내려가 함께 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이 다녀가고, 주인집에서 세콤을 달아주고, 열쇠도 단단한 것으로 바꿔 줬다지만
딸아이는 밤길에 혼자 다니는 것이 무서워서
친구들을 달고 다니거나 믿을 만한 남자친구들에게 바래다 달래서
자취방으로 들어온다고 말로만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켰다.
몇 달이 지나 딸아이는 바바리맨을 잊을만했는데
또 그 놈이, 딸아이 말로는 같은 남자인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아직 어리고 여려서 눈을 감아 버렸을 테니까 얼굴을 보지 못했겠지…….
자신의 음밀한 곳을 내 놓고 실컷 보라고 창밖에 서 있더라는 것이다.
딸아이와 같이 한방에서 자취를 하는 과친구 부모님은 공부고 나발이고
보따리 싸가지고 당장 올라오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어려운 형편에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었고 딸아이는 적응을 잘 해서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내년이면 일본 유학까지 보내주는 대학을 석 달 남겨두고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딸아이도 집안 형편을 너무 잘 알기에 학교를 그만 둘 수는 없다고 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딸아이는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종일 서서 고객에서 공손하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서 영화 표를 파는 일.
휴일은 더 바빠서 외갓집 식구들이랑 냇가에 놀러도 못 갔지만
월급을 타 동생 옷 하나 사 들고와서 내게 갔다 주면서 딸아이는 그랬다.
“엄마, 2년 6개월만 고생 해. 졸업하면 동생은 내가 돌볼 테니까
그때 엄마가 꿈꾸는 시골로 내려가 살던지, 좋은 남자 있음 같이 살던지 엄마 맘대로 해.”
여름동안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쉬었다. 무기력 증에 빠져 일도 하기 싫었다.
집안의 가장인 나는 종일 침대에서 뒹굴고 방바닥에 다리 뻗고서 티비 리모콘만 들고 있어도
딸아이는 새벽이고 밤중이고 영화 표를 팔러 나갔다.
“엄마는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마음 편하게 쉬셩~~”
“그랴~~네 덕분에 엄마는 편하다. 영화표 많이 팔아라~~”
“푸하하하 엄마, 영화표가 아니고 티켓팅이라 하는 거야.”
딸아이가 영화관에서 일을 하는 덕분에 아들아이랑 친정엄마랑 공짜로 영화도 봤다.
그 유명한 괴물을……. 그렇게 일만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갔는데…….
“그런 것은 감옥에 쳐 넣어야하는데, 딸아? 근데 그런 놈들은 실전에 약하단다.‘
이게, 이게 엄마가 할 소리인지, 어찌되었든 딸아이를 안심시켜야 한다.
“문 앞에 후라이팬을 갖다 놓던지, 몽둥이를 갖다 놓던지,
때려 팰 걸 갖다 놔. 나타 났다하면 사정없이 패버려. 알았지?”
“......???”
“너네는 둘이잖아. 여자둘이 덤비면 남자가 아무 짓도 못 해.”
“??? !!!”
“그런 놈들은 영원히 못 쓰게 만들어야 하는데…….”
“으응~~~엄마......”
전화를 끊고 불안해서 누웠다가 앉았다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애들 아빠가 원망스럽다.
애들 아빠가 있었으면 의논이라도 하고 오밤중이라도 딸아이한테 달려가고 싶다.
큰소리는 땅땅하게 말도 안 되게 쳐 놓고선 내가 더 불안하고 겁나고 무섭다.
그래도 다음날을 위해 잠을 잤다.
오전 잠이 많은 나는 한낮에 일어나 수업중인 딸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 일 없다고 문자가 날아왔다.
저녁 무렵 딸아이와 통화를 했다.
교수님께 전후사정을 얘기했더니 기숙사를 알아본다고 하셨단다.
그러니 엄마는 걱정 말고 잘 먹고 잘 자라고 했다.
11월 달까지 기한인 자취방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이 숙제가 남아있지만
몇 십만 원 손해를 본 다해도 기숙사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밤에 다시 통화를 했다. 기숙사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바바리맨들은 정신병의 일종일 것이다.
그런 정신병자는 병원으로 보내져 갇혀 살아야 하는데
여리고 어린 딸들이 정신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처음 바바리맨을 봤을 때는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다고 했지만
이미 옷자락을 휘감고 날아간 바바리맨을 어디서 찾을 수가 있는가…….
다시 나타날 때 신고를 하라고 했다지만
바바리맨을 보고 딸아이가 놀래서 소리를 지르거나
여자들이 자신의 멋진(그런 놈들은 자신이 멋지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알몸을 봤다는 걸 알면 이미 없어져 버리니
얼굴도 모르는 그 놈을 어디서 찾을 수가 있느냐말이다.
나는 한번도 바바리를 입은 그런 놈들이 내 앞에 나타난 적이 없는데,
내 앞에나 나타나지.
그러면 뜨거운 물을 거시기에 확 부어 버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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