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 미선이는 천상 여자인데다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쯤으로 보인다. 미선이는 매사가 둥글둥글해서 대학 엠티때 밤을 지새며 얘기하던 그 설레는 순간에도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고 무드없다고 퉁박이라도 들을라치면 왜 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며 멋적게 웃으면 그냥 그걸로 다였다. 꼬인 구석도 옭매친 자리도 없다.
생김도 얼추 성격과 박자가 맞아들어 전체적으로 동그람한 윤곽을 지녔다. 동글동글한 얼굴 모양에다 덩달아 눈이며 콧망울, 입술 모양도 동글동글이니 굳이 말을 섞어보지 않더러도 그녀의 순함은 저절로 겉으로 묻어난다.
그에 비하면 난 모든게 길쭉하거나 모가 났다. 늘 한구석 모자란 결핍증 환자쯤이다. 길쭉길쭉하니 그야말로 균형이 맞기란 어려운 일이다. 늘 모자라거나 넘치거나가 다반사다.
극히 개인적이고 그릇된 관념일테지만 길다랗거나 모가 났다는건 동그람한것에 비해 얼마나 열등한 것인가.
동그라미가 주는 상징이 평온함 같은 것이라면 제멋대로 길쭉함은 우울함이나 공허가 느껴진다.
내면갈등따위는 없어보이는 미선이를 보면서 그의 선천성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부단히 노력하고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부모로부터 내생적으로 물려받다니 그건 노력없이 재산을 쏠쏠하게 물려받은 것만치나 부러운 것이었다.
그런 미선이가 뒤늦은 시집을 가더니 쑨풍쑨풍 아이를 셋을 낳았다. 남편은 중국에 파견 근무 보내놓고 7살 5살 3살난 아이들과 또한 즐거움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때에 맞춰 뭔가를 해두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내게 독려를 해오기도 한다. 알좋은 매실을 골라서 매실쥬스를 만들라던가 매실엑기스를 만들라던가. 도무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늘 말하는 사람만 손해인 셈인데...그런 줄아는지 모르는지..늘 때되면 같은 얘기다.
그 아이들 또한 지 어미를 그대로 닮았는지 된장찌개의 두부며 콩따위를 서로 먹겠노라는 극히 웰빙스러운 식성이 놀랍고 신기했다. 그녀의 노력이 단지 자기 만족이거나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솔깃해지기도 했지만 그 엄두를 어찌 낸단 말인가!
그녀가 먼저 10년전 꿈을 이야기했다.
아니, 나에게 누구 10년 전 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왔다면 나는 기억을 더듬느라 부산스러웠을뿐 딱히 마땅한 기억을 해내지 못했을게다.
그런 내 앞에서 그녀가 먼저 자신의 10년전 꿈 이야기를 했다. 무능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그녀는 늘 남편감에 대한 바램을 가졌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바램을 가졌는데 지금 바로 그대로 살고 있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그러니 지금 꾸는 꿈이 10년후의 우리 모습일테니 어떤 꿈을 갖느냐고 얼마나 소중하겠느냐고...
물론 미선이의 말솜씨가 유창하거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절대 지겨워하거나 건성으로 들을 수 없게 만드는매력을 동시에 지녔다.
20대를 넘어 30대, 그야말로 에누리 없는 중반에 들고나니 이건 여유를 부리거나 뭐하나 내세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실수나 저질러도 이쁘게 보일 나이 또한 아니어서 애매하고 어중간하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요리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너스레도 20대나 귀엽게 받아주었지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혼자 슬슬 부끄러워지는 것처럼.
삶은 늘 무엇인가로 까치발을 띠어보는데 정작 닿아지는 것은 없으니, 늘 이 버석버석한 결핍상태였다.
\"도대체 내가 10년전에 꾸던 꿈 봇따리 누가 집어간게야? 아니 그때 내가 꿈을 꾸긴 꾸었던게야?\"그녀에게 되물었더니 그녀가 웃었다.
더러는 벌써 이루었으되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냈거나 더러는 얼토당토 않는 꿈이라 생각되어 돌보지 않아서 제 발로 달아났겠지.
정작 영글어버린 꿈도 담을 줄 몰라 늘 푸석푸석한 허기가 들었나보다.
떡이 너무 좋아 떡장사를 하겠다는 일곱살박이 아들아이가 단잡을 잔다. 오물오물 입을 보니 예쁜 꿈을 꾸는게 틀림없다. 나도 오늘일랑 이놈곁에서 내 잃어버렸던 꿈 주우러 간다.
임자 없는 꿈 울고 있으면 제게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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