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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엄마의 꿈을 대신 꾸다


BY fishfly 2006-09-07

“***-3153”

지긋지긋하던 이 번호가 언제부턴가 반가워졌다.


“엄마, 뭐하고 왔어?”

“변 서방네 고추 따다 주고 들어오는 길이다!”

“엄마, 햇볕도 따가운데 하지말지~ 몸도 안 좋잖아~”

“그래도 우야노, 이래 도와주고 해야지 내 일자리도 알아 봐 주고 하지~”

2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벌어놓은 돈 없고 재산 없어 벼랑 끝 위기감을 느끼시는 엄마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니도 자식한테 그래 매달려 있지 마라. 자식 다~ 소용없다. 네 몸이나 건강하고, 어디 일 할 데 있거든 가서 일해라!”

엄마는 평생 우리 3남매를 위해 사셨대도 과언이 아니다.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의 전부를 다 짊어지고 사셨다.

엄마의 오로지 바람은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뚫어 남부럽지 않게 키워서 좋은데 시집 장가 보내는 데 있었다.

우리 3남매는 엄마의 그런 뜻 때문인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졌으며, 너무 가난하지 않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엄마가 나더러는 “집에서 아만 쳐다보고 있지 마라!”하신다.

그러지 않아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광로를 가슴에 담아두고 있지만 ‘아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꽁꽁 나를 집에 묶어두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필연적인 열정을 가지고 아이와의 하루 스케줄을 계획하고 반드시 실행해야만 내가 있는 것처럼 아이를 다그치고 그 쪽으로 몰아갔다. 그러기를 8여년 아이는 왠지 엄마와 뭘 하는 것에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짜증과 원망이 는 것 같다. 나의 10여년! ‘아 때문에’붙잡힌 그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아이에게 불을 뿜었던 건 아닌지. 그래서인지 아이는 자꾸 끌려가지 않으려는 못된 말 같이 더 강하게 뒷걸음질치는 것 같은 느낌만이 남아 있다.


나도 엄마에게 그랬을까? 나와는 조금 다른 것이지만 엄마의 자식 잘 키우려는 열정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너무나 나의 마음과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거세게 다가오는 그것에 질려버렸고  갈수록 원망의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내 아이를 보면서 난 하루에 열두 번도 속이 더 터진다. 내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인가, 나의 사랑이 아이에게 느껴지지 않아서 인가, 아님 궁합이 맞지 않는 엄마와 딸의 관계 때문인가.

엄마는 우리 형편에 맞지 않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나를 보며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또 엄마의 엄마인 우리 외할머니는 엄마의 삶을 보며 얼마나 가슴아파하셨을까?

먼저 산 그분들의 애달고 쓰라리고 폭발할 것 같은 그 속마음이 내가 아무리 정성을 쏟아 붓고 노력을 해도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는 아이를 보고야 가슴 뼈저리게 느껴진다.


자식을 위한 투자나 집착보다 나를 키웠고 나보다 수백 수천 배나 더 나를 생각하고 사랑했던 윗분들을 위한 시간과 노력과 애정과 관심을 더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엄마. 평생 자식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던지고 쭈글쭈글하고 온전치 않은 육신의 찌꺼기만이 남은 엄마. 이제는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저거 살 궁리 하느라 정신없는 자식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나가겠다고 돌처럼 무거운 육신을 매일 아침 일으키시는 엄마가 대단하다 못해 난 존경스럽다.


20살 곱디곱고 착하디착한 처녀의 첫사랑인 지금은 모 고교의 교감선생님으로 계신 그 분과의 로망스를 아직도 간직하시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예쁜 집을 짓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아기자기하게 살고 따뜻한 밥 지어 오붓하게 먹으며 웃음꽃을 피워보고 싶었던 엄마. 엄마의 묻혔던 그 소박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꿈을 내가 대신 꾸어 드리고 싶다.   

 

“엄마,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뭐?”

“외할머니집에 새집을 깨끗하게 지어서 엄마 편안하게 사는 거 보는 거야~”

“......”

“그림같은 집 짓고 기울어져 너덜너덜한 싱크대대신에 깨끗하고 매끈한 싱크대 넣고 식탁도 들이고, 거기다 엄마 좋아하는 예쁜 꽃들을 꽂아놓으면 엄마의 한평생 시름이 한 번에 다 날라 갈 거야~”


아이만 좀 크고 나면 이 우중충한 생활을 박차고 나가서 지금보다 더 지적이고 더 똑똑하고 더욱더 화려하게 변신하여 나를 선명하게 알리며 살 거라고 이를 북북 갈았던 내가 어쩌다 엄마의 꿈을 대신 꾸면서 이토록 황홀하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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