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엄마는 나에게 친구다
외로운 친구
슬픈 사연이 가득한 친구
여기저기 안아픈 곳이 없는 친구
친구가 필요한 친구
\"우리 집에 와.\"
엄마가 오면 오늘은 엄마 얘기만 들어줄 생각이다
절대로 중간에 말을 끊거나 내 얘기만 하거나
엄마 누구 욕하면 같은 편이 되어 같이 욕해줘야지...
오라고 하지 않으면 우리 집에 마음대로 오지도 못하는 못난 엄마....
남에게 속엣말을 다 꺼내 놓지도 못하는 소심한 엄마....
남이 아무 생각없이 한 말에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엄마...
오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늙고 힘없은 엄마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바람빠진 고무 풍선처럼
내 마음을 살짝 흔들어 놓았다
\"밥은 먹었어?\"
눈치를 보니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닌 모양이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가서 감자전을 후다닥 만들어 엄마에게 내놓았다
엄마는 아무런 말 없이 너무나 맛있게 감자전을 잡수신다.
\"우리 딸 이런것도 할 줄 알어?\"
그 말에 또다시 내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마음 같아서는 친정엄마를 내 곁에 두고
아침 점심 저녁 다 챙겨드리고 싶은데
현실이라는 문 앞에서 나는 겁쟁이다
시댁 식구들 눈치보느라 문을 열지 못하고 만다
결혼한지 어느덧 6년째.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전부였듯이
나에게도 엄마가 전부였기때문에
신혼집을 알아볼때도 나도 모르게 친정집 근처만 맴돌았었다
결국 결혼하고서도 친정집 근처에서 살게 되었고
엄마나 나나 가끔은
딸이 결혼을 한건지 내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건지 모를때가 있다
겉으로는 결혼을 해서 엄마에게서 멀어진 것 같지만
속으로는 결혼을 했어도 엄마에게서 멀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가끔은 너무너무 좋다가도
그것이 가끔은 너무너무 귀찮을때가 있다
친정집에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챙기지 않아도 되는 친정집 일까지 챙겨야 할때가 있다
시댁 제사에 친정 제사까지
적당이 모른척하고 넘어가려고 하면
엄마는 딸 속도 모르고 전화하셔서
\"밥 먹으러 와\"하신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남편 눈치를 보게 되고
시댁 눈치를 보게 된다
친정집 근처에 산다고 해서 다 좋은건 아닌가 보다
엄마가
외로워하는 것을 다 보고 살아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다 보고 살아야하고
늙어가는 것을 다 보고 살아야하고
아파하는 것을 다 느끼고 살아야하는것이
당연한건데도
가끔은 모른척하고 싶을때가 있다
엄마는 오늘도
이런 저런 속 마음을 털어 놓으신다
아무에게 말 못하는 말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만 할 수 있는 옛 일들...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도
내가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도
그래야 엄마 속이 시원하신가 보다
그런데 그만 ...
난 실수를 했다
난 또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데...
난 또 참지 못하고
\"엄마, 이제 그만 좀 해...그 말 천번도 넘게 말했잖아...\"
엄마는
그 일이 가슴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아서
생각할 수록 속상하고 억울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인걸 알면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나는 귀의 문을 닫게 된다
엄마에게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인데...
난 바보같이 속상해서 온 엄마에게
더 속상하게 해서 보내드렸다
결국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보같은 엄마의
바보같은 딸
이래서 내가 엄마 곁을 떠날 수가 없는가보다
언제쯤 엄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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