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 강가 흙바람이 이 먼 한반도 그 중에서도 남해 끝간데 삼천포 하늘에도 도착했다
누런 삼베 구겨진 듯 사방이 구깃구깃하다
오늘은 삼동 추위는 저만큼 가라할 만큼 맵삭한 날씨다
창문도 단속하고 커튼도 내려 버렸다
늙은 겨울은 봄을 낳느라고 산고가 최고조에 이른 듯 하다
어둔 실내에 붙박힌 뒤주를 열어 보니 오래된 쌀됫박이 일 없이 누워 있다.
며칠뒤 봄 이라는 아이가 나오면 됫박에 쌀알 담아 재앙상 차려 볼까나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골동품 아닌 골동품이 곳곳에 한자리 하고 있다
시어머니 시집 올때 갖고 오신 자그만 화초장은 여주인 잃고 고독히 서 있고
장농 위 나무 다듬이돌은 방망이가 두둘겨 주질 않아 까맣게 속을 앓고 있다
한때 제대로 날렸을것 같은 홍두깨는 좀이 먹고 있고 산해진미가 빛나던
나무 모반에는 무심한 세월만 내려 앉고 있다
쓰지도 않으면서 막연히 섭섭하단 마음에 그 무거운 멧돌도 옮겨와서는
성의 없이 베란다에 밀쳐놓고 시시하게 운동화 말리는 댓돌로 만들어 놓았다.
시아버지가 일본 유학하는 동안 쓰셨다는 오주 짜리 나무 주판도 주인 잃고
셈 기능도 잃은 채 오래된 이야기만 숨겨 놓았다
집안 이곳 저곳 선친의 유품은 이곳이 내가 살곳 이라는 말 없는 정착을 알리고 있다
이젠 집안 어른들은 다 떠나가시고 종갓집 이라는 명패만 물려 받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 오셔서 열한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다섯명을 내리 잃고
여섯을 겨우 건져 키우시며 종갓집 큰 며느리 도리를 너끈히 해내신 멋진 여장부 이셨다
그 큰 살림에, 그 많은 제사에, 당신 손 안가고 남의 손 빌리는 일 없었다
내가 갓시집 왔을때, 고추장, 된장 담는거며 메주 쑤는 거며 동동주 담는거 까지 세세히 일러 주셨는데
나는 재밌어라 하면서 건성건성 듣고 말았으니 이제와선 후회 일색 뿐 이다.
시어른이 계셨을땐 나이 많은 시고모님도 친정 이라고 오시고 일가 친척들도 가끔 오시더니
이제 한 분 두 분 발길이 끊어지신다
돌아가신 분은 못오시고 살아 계신 분도 안 오시고...
제사도 많이 줄였건만 두달 걸러 제사다
자연히 제사 음식도 간소해 지고 있다
주위분들은 처음엔 한 접시 씩만 해라 하더니 이젠 날짜 잊어 먹지 않고 챙기면 된다 그러신다
어른 놀이 하는 두 내외는 집안 어른들 눈엔 아직도 철 없는 조카요 동생일 뿐이다.
옛날 시어머니적 흉내도 내지 못하지만 순서대로 찿아오시는 선대 영령의 진지상만 올리는데도
날밤을 지샌다
하나 있는 동서도 일본 있고 하니 일손 없어 허덕이니 이제는 이 집 종손 인 남편이 전을 부치기도 한다
제사 음식 싸서 들려 줄 객도 없고 오로지 산사람 잔치 음식 차린 양 식구 끼리 몇날 며칠을
포식 하는거 같아 씁쓰래 하긴 하다
상황에 따라 처지에 따라 하나 둘 바뀌어 간다고 스스로 고개를 주억거려 보나
도무지 종가 종손 며느리 소릴 듣기엔 참으로 민망하다
안방에서 거실에서 부엌으로 더해서 베란다 까지 어디에고 시어른들 유품들이 자리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에겐 무시로 경종을 알리는 종가 며느리 증표인가...
독자 집안 외며느리 였던 시어머니에 비해선 나는 꽃방석에 앉은 허울 좋은 며느리 인지도 모른다
비록 시어머니 벗어논 신발 근처에도 못갈지 몰라도 마음은 그래도 따라갈려고 한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시어머니가 너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내가 시집 오고 십사년이나 건재 하셔서 이만큼 가르침이라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몇년 안가 나도 외며느리를 보게 될것이다
그 며느리에게 내 시어머니 하시던 대로 조곤 조곤 집안 일을 가르칠수 있을까...
아마 아는게 없어서 그리 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식 가정사 배우려고 들지도 않을것 이다. 요즘 세대 며느리들은..
어쩌면 종가 종손의 의미도 인지 하지 않으려 들지 모른다
내 아들이 친할머니 하고의 각별한 추억이 있으매 각시를 잘 이끌지 모르겠다
지할머니 중풍 투병시에 열세살 종손은 할머니 귀저귀도 갈아주곤 하였으니
모쪼록 미래의 지 각시를 참한 종가 며느리로 만들어 주길 바래본다.
오늘도 오래된 양은 찜통에 곰국을 끓이니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궂은 물건이 있어야 새것도 있다 하시던 말씀이..
이래 저래 구닥다리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팔순이 다된 집안 오촌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 아 좀 바까라 메눌아.
선산 성묘 때문에 의논 할일 있다고 먼 곳에서 전갈 하시는 시어른은
종손에게 결재 받는것 처럼 조심 하시다
당신은 큰 감투 쓴 양반 이우...
허허로운 웃음으로 되받는 남편은 \" 내 복이다 이것도..\"
그러면 내 복도 보통 복이 아니네.
뒤주 안에 쌀이 들었다면 쌀알 들이 웅성거릴지 모르겠다.
삼월 하늘에 뜬금 없는 싸래기 눈발이 날린다
매정한 바람 속에 그 옛날 기세등등 하던 홍두깨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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