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남편이 다녀갔다.
그는 내일 운동 계획이 있다고 잠시 집에 머물렀다만 간다.
딸아이가 회가 먹고 싶다고해서 집앞의 횟집에서 모듬회 한접시와 소주 한잔씩을 했다. 그리고 나서 혼자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 50의 중년 가장의 뒷모습은 초라하다.
아직도 무거운 어깨의 짐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고 씩씩함으로 가장하고,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날리며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와 자식들의 마음에도
애잔함과 송구스러움이 혼재한다.
아, 고통스런 삶의 무게여.
노인1.
오늘 이른 아침 엘리베이터안. 70대 노부부.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와
성서를 넣은 가방을 들고 교회로 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툭툭 장난을 거신다. 오늘 뭐 할거냐고.
새침한 할머니, 그냥 토요일이니 집에 있을거라고 말씀하신다.
일층 현관에서 서로 잘 다녀오라고 챙기시는 두분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 왜, 바보처럼 보여요? \" 하고 내게 물으신다.
\"아니요, 보기 좋아서요.\" 라고 대답하니
\" 바보처럼 사는게 좋은거예요.\" 하고 말씀하신다.
\"할머니랑 같이 운동 다니시지요?\"
\" 우리 할멈은 교회 가는걸 더 좋아해요. 활동적이라서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활기찬듯 산으로 올라가신다.
노인 2.
고위 공직자였다가 기업체 고문으로 몇년 계시다 퇴직하신 남편을 둔 할머니.
아들 고등학교때 강남의 학교까지 드라이버로 실어나르던 그때.
가까스로 성수대교 붕괴현장에서도 살아나오신 그 할머니.
치과의사와 벤처회사 사장을 아들로 둔 그분은 지금 외손주까지 돌보면서도
혈기왕성하시다. 자부심 또한 대단하신 인텔리시다.
아들 둘을 출가시키고 집까지 다 장만해준 그분의 기세는 위풍당당 바로 그거다.
신도시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세놓으시고 다시 아들 이름으로 아파트를 사서
최근의 집값 폭등으로 또 많은 자산을 불리신 그 분.
\" 나는 돈이 보이는데. 남들은 그걸 잘 몰라\" 하신다.
일년에 몇차례 해외여행을 꼭 다녀오셔야 한다는 그분.
외손주때문에 왕년의 본 모습을 보여줄수 없음이 아쉬운 그런 분이시다.
그러나 만날때마다 내가 말할 틈도 주지않고 아들 자랑,
못마땅한 신촌의 이름있는 여대 출신의 며느리 얘기,
해외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하신다.
아, 그래, 이분도 말이 고픈거야. 라고 난 짐작만 한다.
노인 3.
시골에서 온갖 고생 다하며 키운 아들 4형제가 그 시골에선 소문날 정도의 수재들이었다.
한 아들은 그 시절 출세의 지름길인 사관학교 출신이었고
또 한 아들은 이름있는 공대의 4년 장학생. 막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공대 장학생.
배움이 짧고 가난한 그 할머니의 위세는
아들들로 인해 그 인근 지방까지 소문날 정도였다.
젊은 시절의 고생은 다 끝난듯 보였다. 어디서든지 당당하게 행동하셨지.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러한가?
자식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다 그 수준의 사람들이니 자식들 또한 자식들 나름대로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수있다는것을 간과하신 그분.
멀리서 다니러 온 자식들에게 밥한솥 해 줄줄 모르고 며느리들에게 오로지 위풍당당.
심지어 출산하는 며느리집에가서도 오히려 애낳은 며느리에게 밥얻어먹고온 그 위세.
며느리들이 40대가 다 지나 더 이상 그 어머니를 참고 견디지 않으니
이제 70넘은 나이에도 혼자 외롭게 사시는 할머니.
아직도 새벽같이 아들들에게 전화해서 큰소리로 혼내면
전국의 마음약한 아들들이 비행기타고 어머니를 보러가야하는 그 노인.
아들들도 4,50대가 되어 삶이 원하던 방향으로 풀리지 않아 기가 많이 꺾였지만
아직도 그 위풍당당한 그 기세가 싫어서 마음으론 다 도리를 알고 있어도
며느리들 아무도 곁에 다가가지 않으려하는 허울만 좋은 자식 잘키운 그분.
그분도 외롭다.
노인 4.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도시의 아들집에 얹혀 살려니 모든게 가시방석같은
그 어머니. 논밭 팔아서 자식에게 좀 보태줬으면 위신이래도 좀 설텐데.
빚더미에 그냥 헐값에 처분된 전답과 가옥.
자식이 셋인 아들집에 , 그것도 32평 아파트에 얹혀사는 두 부부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슴 조이는 시간이다.
교육이라도 잘 시켜줬으면 큰소리라도 칠텐데 시골에서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시켰으니 더욱 가슴만 졸인다.
봄에야 주변의 들로, 산으로 쑥도 뜯고 냉이도 캔다는 핑게가 있어 잠시 나와서 소일을 한다지만 뜨거운 여름에야 어찌하리.
노부부의 하루하루는 가슴졸이고 민망한 시간들이다.
며느리에게 될수있는한 시간을 많이 주려고 나물뜯으러 나와서 만난 나와
오랫동안 이야기하신다. 용돈이라도 벌수있으면 좋으련만 도시생활에 익숙치못해
모든게 난감한 상태이다.
늙은 부모는 자식보기 민망해 공원근처를 배회하며 오늘도 헤매인다.
그들에겐 목숨이 송구할뿐이고 민망할뿐이다.
노인 5.
젊은 날. 한창 사업하며 자식들 다 키웠는데 그 사업가의 기질이 이분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자식들 출가 시키고도 이걸하면, 아니면 저걸 하면 성공할것 같아서 일을 벌였다.
그러나 매번 실패. 살기 힘든 자식들 돈을 긁어다가 결국 다 망하고 오갈데가 없다.
이젠 병까지 들었다. 재산은 물론 한푼도 없다. 아들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버티다가
결국 병든 아버지는 노인 요양원에서 산다. 매달 자식들이 각출하여 병원비를 내야한다.
멀리사는 자식들을 일년에 몇번밖에 보지 못하는 이 늙은 아버지는
목숨이 구차하다고 한다. 효자인 아들들은 산삼뿌리며, 보약이며 해서 나른다.
모시지 못하는 불효를 씻으려고.
이 늙은 목숨은 왜 이리 질겨서 밥맛이 좋고 보약이라면 얼른 입에 털어넣고 싶어질까?
삶의 뿌리를 놓지 못하는 노인은 혼자소리로 이렇게 말한단다.
문득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주변의 노인들을 생각해봤다.
어찌 살아야 잘 살았다할것인가.
노인 1,2,3,4,5 의 어느 경우가 우리의 미래 모습이 될까?
마음같아선\" 바보처럼 사는게 좋은거예요\" 하시던 노부부의 모습처럼 늙고 싶으나
세상이 우릴 그렇게 놓아줄지가 의문이 든다.
갑자기 알수없는 공포가 몰려오면서 미래가 두려워진다.
난 겸손하게 살았는가? 난 혹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적은 없었던가?
내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모습을 보며 상처받았을 누군가를 만든건 아니었을까?
내탓이요,내탓이요를 입으로만 외친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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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두려워지는 가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