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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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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와 올케


BY 너도밤나무 2006-09-01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다.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처지에서는 시어머니도 어렵고 조심스러운 상대인데 시누이까지 사사건건 거든다면 몇 갑절 시집살이가 고되기에 나온 말인 듯하다.


 내게는 손위로 시누형님이 한 분 계신다.  올해로 이순을 맞은 형님은 연세에 비해 밝고 건강하다.  아니 맑고 순수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환갑이 다 된 나이 든 여자를 맑고 순수하다고 하면 어색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형님은 언제나 밝고 활기에 넘친다.  그리고 모든 생각이 긍정적이고 건전하다.  아무리 걱정거리가 있어도 그리 심각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웃는 모습이고 얼굴에 그늘이라고는 없다.  그렇다고 형님에게 아무런 근심거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과년한 딸자식이 결혼적령기를 넘기고 있어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남편은 자기의 누님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로 생각하고 지혜로운 여성의  표본으로 여긴다.  결혼 초에 남편이 시누님의 좋은 점을 말할 때는 그저 자신의 핏줄이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애정이라고 여겼다.  이제 나도 오랜 세월 형님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공치사가 아님을 안다.  형님은 적절하게 손아래와 손위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잘 어우른다.


 며느리는 시누이가 어쩔 수 없이 부담되는 존재이다.  주위에서도 시누이와의 갈등으로 아픔을 겪는 내 또래 주부들을 많이 보아왔고 시어머니보다 시누가 더 밉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난 참 다행스럽게도 시누이가 한 번도 미워 본 적이  없었다.  당신이 시누이라고 부당하게 행세한적도 없었고 시어머니 앞에서도 항상 며느리인 내 처지를 먼저 이해를 해 주셨다. 나이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형님은 나를 올케로 생각하기보다 당신의 여동생처럼 대한다.



 남편은 가끔 어린 시절의 누님께 대한 안쓰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님은 중학을 졸업하자마자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60~70년대 우리네 살림살이가 다 그러했듯이 남편의 가정에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궁핍한 생활에서 여자는 소외받기 마련이고 진학의 꿈은 언제나 오빠나 남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다.  시누형님은 인형을 만들어 수출하는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셨단다.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남동생들의 학비를 벌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우리 동네 이웃집 언니도 도회지의 공장에를 갔다.  명절 때가 되면 그 언니들은 선물꾸러미를 들고 도회 처녀가 다 되어 나타났다. 그녀들이 다녀가고 나면 동네에는 한바탕 소문이 돌았다.  순이 네는 소를 사고 철이 네는 밭을 샀다는 말이 들리곤 했다.  그런 산업역군들 속에 남편의 누님도 함께 있었다.
그녀들이 가정경제를 살렸고 오빠나 동생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으며
나라 경제부흥에도 일조를 했었다.


 남편은 옛일을 종종 되뇐다.  한 달 꼬박 일한 대가로 동생들의 학비와 집안 가용으로 쓰여도 누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투정은커녕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단다.  월급날이면 누님은 막내 동생인 남편에게 줄 단 팥빵을 잊지 않고 사다주었고 남편은 누님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도 모르고 월급날이면 누님이 사다주는 단 팥빵을 기다렸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지금도 단 팥빵을 좋아한다.  유난히 피부색이 곱고 티 없이 맑던 스무 살 누님이었던 자신의 누님이 이제는 황혼 길에 접어들어 늙어가는 모습에 남편은 몹시 마음 상해한다.


 몇 년 전 공무원 퇴임을 하시고 지금은 누님부부가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누님으로부터 받기만 했었는데 정작 자신은 누님에게 별로 해 드린 것이 없다고 남편은 속에 말을 종종 한다.  그런 시누이 부부에게 난 깜짝 선물을 하려고 얼마 전부터 준비를 해 오고 있다.  가을 찬바람이 불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온천투어를 해 드리려고 한다.  부담은 좀 되겠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꿈도 포기 한 채 동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던 누님의 사랑에 작으나마 보답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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