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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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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나는 꿈꾸는 중


BY 홀로가다 2006-09-01

꿈을 바꿔 말하면 목표와도 비슷한 말이다.
꿈이 없는 인생, 즉 목표가 없는 인생은 희망도 없다.
플랜바흐(Fuellenbach)의 \"불을 놓아라\"에 보면, 꿈은 인간의 생각을 평범한 것들 위로 끌어올려 주는 날개라고 했다.
한동안 나는 집 짓는 꿈에 푹 빠져 살았다.
무엇에 몰두한다는 자체가 무미로운 일상을 평범 위로 끌어 올려주는 것 같다.

각자 타고난 그릇에 따라 포부도 다르겠으나,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평범한 꿈을 꾸었다.
친정과 시댁 양가의 빈곤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우선 목표가 경제적 독립이었다.
그것은 가난한 부부의 지상 임무였다.

장기 계획을 세워 봉급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외하고 적금을 붓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이 뿌듯하였다.
그러나 막상 적금이 끝나는 날은 몫 돈을 만지는 즐거움보다는 알 수 없는 허망함이 엄습하였다.
평소에는 만질 수도 없는 몫 돈을 손에 쥐고도 땅이 꺼질 듯한 허망함에 오랫동안, 참으로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답답하였다.

인생의 비극은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없다는데 있다고 한다.
내 꿈은 몫 돈이 아니라 그것을 모으는 과정이었으며 적금이 끝나면 꿈도 끝난 것처럼 느꼈다.
마치 설날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기다림과 설렘 같은 감성 속에서만 내 존재를 느낀 것이다.

나는 목표를 이룬 다음 밀려오는 허무가 싫어서 끝없이 계획을 세웠다.
결혼 초에는 보람 있게 사는 법을 모르니 억척스럽게 저축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때는 셋집을 전전하지 않고 우리 가족 비바람 피할 집 하나 갖는 게  목표였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넌 욕심이 너무 많아!\"

단 한번도 스스로 욕심쟁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느닷없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엄마 품에서 자란 철부지라면 보통의 소리로 들렸을 것이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지 않는가.
각자 결혼하여 딴 솥 단지 걸고 가정을 꾸린 상황이라 너무 뜻밖이고 의외였다.
형제에게 욕심 많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은 결코 바르게 사는 인생이 아니다.
꿈이 아무리 훌륭한들 핏줄 나눈 형제에게 비난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절대 바람직한 꿈이 아니었다.

 

왜 그런 소리를 듣게 됐을까?
어디서 어떻게 엉킨 것인지, 언니의 한 마디는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에게는 인색하나 타인에게는 후하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만의 착각일 수 있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나라도 튼튼해 질 것이라는 강한 독립 의지가, 관점에 따라 긍정 될 수도 있고, 부정 될 수도 있었다.

돈이라는 것이 그랬다.
지출의 폭을 줄이고 내 몫을 내가 모은 것이지만, 너무 집착하면 추하게 느껴진다.
절약이 지나치면 궁색으로 비치듯 억척스런 내 모습이 욕심쟁이로 비쳤을지 모른다.
그때부터 주변을 둘러보며 저축의 고삐를 늦추었지만 집 짓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쓰다 남은 노트에 집안 구조를 설계하고 가구들을 배치하다보면 하루해가 금방이었다.
내 손아귀에서 접힌 꿈, 지워진 꿈, 좌절된 꿈, 살아 꿈틀대는 꿈, 꿈이 멈추는 동안은 의식도 정지했다.

40대에 들어서 현실에 안주했고, 남아도는 시간에 허무가 엄습하여 방황의 기간도 있었다.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인가 하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안주하는 삶은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도는 것처럼 도퇴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발전도 없는 안개처럼 뿌연 시간들이 흘렀다.
그때는 꿈이 휴면 상태였고, 꿈이 잠든 동안은 허무가 내 동무였다.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기회는 꿈꾸는 자에게 찾아오지만 그 것을 잡고 놓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지난 2년 간이 내게는 그런 기회였다.
상황은 최악으로 두 아들은 입대했고 남편은 연거푸 닥친 불운으로 두 번의 대 수술을 하고 휴직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내 인생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싶어, 평생에 한 번도 짓기 힘들다는 건축을 연거푸 세 번이나 하였다.
건축을 하면서 닥치는 문제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자가 어떤 것을 이루어 내기엔 너무도 힘들다.

 

건축을 하면 죄가 없어도 죄인이 된다는 말은 그야말로 진리다.
햇빛과 바람 막는다며 하루걸러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며 면전에서 퍼붓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지독한 말들이 어느 가지에 걸릴까, 결국 주인 찾아갈텐데... \'

오히려 참된 진리를 모르는 그들이 가여워 햇빛과 바람의 댓가로 기꺼이 들어주리라 작정하고 어떤 모욕의 소리도 들어 넘겼다.

주변의 텃새는 내가 참으면 저절로 해결되지만, 사기치려고 작정하고 덤벼든 자판기 회사의 외판원과, 은행의 직무 태만으로 입은 손해에 정면 도전한 일과, 도시가스 회사의 부당한 공사비 청구 문제로 투쟁한 일들은 평범하게 살아온 40대 주부를 억척으로 만드는 일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들은 나를 풀무에 집어넣고 연단하는 대장장이들이다.
그야말로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전쟁터를 방불케한 싸움들에서 승리했을 때의 허탈감은 우리 사회에 대한 염증마저 가져왔다.
돈 앞에서는 상식도 통하지 않고 양심마저 마비되는 영혼 없는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이 가여웠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어디 쉽기만 하리요.
상처 주는 이웃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고 더러는 무시하기도 했다.
약자를 짓밟는 비열함에 맞서 짓밟히지 않으려 고개를 쳐드니 어느 순간 주변이 나를 억순이로 평가한다,
그 결과 자그마한 사업장은 하나님 축복으로 가득하고 지천명 바라보는 나이에 세상을 다시 본다.

 

이제는 물질에만 국한된 꿈이 아닌 의식도 함께 자란 꿈을 꾼다.
지금 다시 욕심쟁이란 말을 듣는다면, 나는 꿈꾸는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꿈은 나의 인간다움을 확인시켜주며 삶의 의욕을 북돋워준다.
내 어머니의 꿈으로 시작된 소중한 이 삶을 멋진 시간들로 채우고 싶다.
행위마다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소망하며 끊임없이 꿈을 꾼다.

인생은 끝으로 갈수록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빨리 풀리는데 작은 소망들이 앞을 다투어 산더미처럼 쌓인다.
서로 먼저 세상 빛을 보고 싶다고 아우성인데 이루어내는 시간은 왜 이리도 더딘고.
꿈아, 잠시 쉬었다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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