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끝난 뒤 주말농장의 과일나무며 농작물이 궁금해서 밭을 둘려보았다.
쓰러진 과일나무는 없는지 채소는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장마가 끝난 일주일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채소들은 긴 장마에 다 녹아버렸지만 고구마는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싱싱한 줄기를 뻗어내고 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고구마 이랑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줄기는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고, 이랑은 흔적도 없이 다 파헤쳐져 허연 구덩이가 다 드러나 있었다. 단 한 포기도 성한 것, 온전한 고구마가 없이 철저하게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작년 봄에도 고구마 씨알을 4월에 묻어놓고 줄기가 자라나면 밭에다 옮겨 심으려는 노력이 허사가 된 적이 있었다. 한 뿌리도 남겨놓지 않고 멧돼지란 녀석이 다 파먹었던 것이다. 그때 그 황당함을 겪고 나서 주말농장에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고 출입문도 단단히 달아놓았다.
주말농장을 경계로 나무 울타리를 심어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넓은 밭에 울타리를 치기도 그렇고 농작물을 지어 먹지 못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우리 가족은 대비를 한답시고 멧돼지가 들어 올만 한 틈새는 다 막았다고 여겼다, 출입문도 막았기에 아무 탈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으로 작년 봄에 당했던 허망함을 또 당한 것이다.
다른 짐승들은 그렇게 무지막지하지는 않는다. 잎만 야금야금 따 먹든가 조금씩 눈치를 봐가면서 농작물을 먹는데 이 멧돼지란 놈은 한번 들어왔다 가면 농작물을 완전히 망쳐놓고 간다. 더군다나 야생동물 보호차원에서 아무리 농작물을 망처 놓아도 마음대로 잡지도 못한다고 하니 농촌에서는 멧돼지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는 푸념을 많이 들었다. 땀을 비 오듯 하며 고구마 이랑을 일구던 남편의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가을이면 이랑 가득 고구마를 캐는 재미도 쏠쏠한데 그 기분도 앗아가 버린 멧돼지가 얼마나 쾌심하고 밉던지 내내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다시는 멧돼지에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내 오기는 이내 내 것을 지켜야겠다는 대비로 다시 울타리를 더 단단히 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내 것에 대한 소유 즉, 내 것을 다른 외부적인 것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방비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집에는 담장을 쌓고 대문을 달아 밖으로부터 자신 또는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보호하려는 자구책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그기까지 되었다. 과학의 발달은 더욱 견고하고 지능적인 울타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을 넘으려는 쪽과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쪽과의 팽팽한 당김은 어쩌면 우리 인간을 수없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가두고 있고 갇혀 사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은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한 수만은 그물망 같은 울타리 속에 갇혀 살고 있다. 동네입구에서부터 하품하는 것까지 CCTV에 다 찍혀지고 내 컴퓨터에는 나의 신상명세서가 둥둥 떠다닌다. 아무리 울타리를 쳐 놓아도 어느 누군가는 그 울타리를 넘보고 있고 더 강한 울타리를 필요로 한다. 미래의 울타리는 어디까지 어떤 방호벽으로 막아 낼지 의문이다. 그 울타리가 또 다른 울타리를 쳐서 인간은 아마도 거미줄에 갇힌 곤충처럼 옴짝 달싹 못하는 지경에 까지 가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멧돼지란 녀석으로 인해 별 해괴한 상상까지 다 해본다.
생각 같아서는 멧돼지에게도 좀 나눠 주고 인심을 쓰며 울타리를 치지 말걸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멍청한 녀석이 서리도 적당히 해야지 어쩌자고 한꺼번에 절단을 내 버리니 돼지머리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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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년전에 작가방에 \"섬진강의 나루터\" 라는 타이틀로 글을 올리다가 바빠서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삭제를 했는데 오랫만에 에세이 방에 글을 올려봅니다. 역시 에세이 방의 다양한 글들과 여러님들을 만날수 있어서 정겹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저도 가끔 이방의 식구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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