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여덟
에고 어머니께서도 벌써 칠순이시다
그러나 2남2녀 사 남매를 두시고도
자식 복은 지지리도 없으시고
장녀가 아직도 안정 되지 않고 있으니 걱정도 많으시다
늘 맘속으로 너 잘 되라고 기도하고 계신단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 나셔서 2남 4녀중 넷째로
일제 시절 여성이 공부하면 안된다고 큰 외삼촌이
학교만 가면 최우수상을 타오시던 어머니의 학문의 길을
막으셨다고 한다
열아홉에 구남매 맏이한테 시집오셔서 김해에서 일가를
이루시다가
외삼촌의 천거로 부산 시청에다 아버지를 취직시켜 주셔서
장녀100일 날 부산으로 오셨다고 한다
늘 절약으로 자신을 돌보시는데는 인색 하시더니
90년도에 자궁암 수술을 하시고
어쩌나 했는데 3기말 이었지만 송도 복음병원의
유명한 의사님 덕분에 완쾌 되셔서 수를 누리고 계시는 것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저절로 마음으로는 늘 감사합니다다
학교 다닐때 일기장에다
남루한 바바리 차림의 엄마라고 쓴 글귀를
잊으시지 않으시고 마니 서운 해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공부를 아들을 시켜야 한다고 장녀의 뒷바라지를
못하신 것을 약주만 드시면
우시곤 하셨다
그리고 시집의 아홉 남매를 다 시잡장가 보내시고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이 일에 묻혀 사시다가
아버지 퇴직금과 막내 여동생의 저축으로
이제 4년전에 대지100평 건평 35평 집을 지어
안정 되시는가 하는데
아작도 못난이 큰 딸 때문에 항상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
어머니 욕심이 마나서 그러세요
아니다 너만 잘되면 얼마나 좋겠노
저도 잘 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해도 여전 하시다
나중에 내 이야기 글로 써다오
그러지요 하고는 나도 하맹년 세월이었다
머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셈이 빠르시고 단정하신 어머니
니는 나를 닮아라 하신다
너무 퍼주는 딸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것이다
한톨이라도 아껴라 절약 만이 살길 이야
네네
자동차를 가지고 부산에 있을 때는 내 차를 타시고
다니시는게 편하다고 자주 부르시곤 하셨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고 서울 에서 마음만 쓰이게 하는
불효 딸이 되어 지송 합니다 어머니~~
지금도 김치하나 제대로 담글 줄도 모르고
손수 해주시는 맛에 감탄만 하는 딸을 어찌하실런지
어머님 이야기 계속 가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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