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98

여자의 상상력은 죄가 없다


BY 진주담치 2006-08-29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가 제법 크다.

태양이 작열하던 한여름의 그 사나운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의 인성도 한여름 태풍과 같은 열렬함과 강함이 있는 사람이 있고

가을바람처럼 고독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다.

봄바람같이 하늘거리며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을테고.

내가 어느 계절같은 인성을 가졌는지 생각좀 해 봐야되겠군.

 

계절이 바뀌어가니 상념이 많아진다.    쓸모없는.

치매끼있는 노인처럼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가지고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산만하게 움직여본다.

내 마음과 똑같이 집안도 어수선하구나.

 

오후에 화장실에 갔다가 아들 아이가 두고 나온 책 한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란 책이었는데  중학교때 읽던 책이었나보다.

화장실에서 읽다가   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참 무수히도 많은 별이 있구나.

우리가 익히 아는 수,금,지,화,목,토,천,혜,명 같은 태양계의 행성들.

아, 명왕성은 퇴출되었다고 며칠전 뉴스에 떴었지.

 

그리고 큰 곰자리,작은 곰자리, 카시오페아,기린자리,처녀자리,왕관자리,

오리온,페가수스자리,  등등등.

계절에 따라 보이는 별자리도 틀리며  물론 지역에 따라 틀리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자리는 6000개 정도라고 한다.

 

한참 별자리를 읊어보다가   문득

\"나\"를 생각해봤다.  이 지구라는 별속에 사는.

왜냐면 내가 본 세상의 중심은 항상 나로부터 출발하므로.

 

만약 어떤 절대자가 있어 지구를 포함한  모든 별자리들을 세포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면?

6000개 뿐이 아닌 우리가 관찰할수 없는 수 만개의 별을 포함하여.

 

그 무한한 존재속의 한점 세포인 지구라는 별에 사는 \"나\"란 존재는?

지구인구 60억,  대한민국(남한) 인구 5천만,  이 도시 인구 88만.(대략)

그중에  한점  \"나\".

 

아, 보잘것 없는 생명이여!      이 미미함이여!

기 죽는다, 기죽어.

 

가끔 산행중에 만나는 개미떼를 관찰한 적이 있다.

1mm 정도뿐이 안되는 그 어린 생명체들의 부산함. 곱게 갈아 쌓여진 고운 흙들.

작은 못 하나  겨우 들어갈 구멍속의 그들의 안식처.

 

또 할일없는 상념은 이 개미떼를 괴롭힌다.

내 몸의 가장 작은 부속물인 새끼 손가락으로 이 작은 생명들의 집 앞에 줄을 그어보자.

이들에겐 큰 재앙이 닥친 것일게다.  그 갑작스런 재앙에 이들의 도열이 헝크러지고

부산하게 헤매기 시작한다.

이 개미떼에겐 내가 사는 아파트 옆동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거리일까?

아마 우리가 은지님이 사는 미국이나 불토끼님이 사는 독일까지 가는 거리와 맞먹을것이다.

미국도, 독일도 가보지 못한 내가 페가수스, 카시오페아,큰곰자리,처녀자리 별들을

상상해 보는것이 우습다.

 

 

혹시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자신을 괴롭히는가?

친구의 자식들은 일류명문대에 다니는데 내 자식은 인서울도 못한것이

당신을 기죽게 하는가?

나보다 못생기고 학교 다닐때 나보다 성적도 훨씬 아래였던 년이

남편 잘 만나 호강하고 사는게 배 아픈가?

좋은 부모 만나 매사가 술술 풀리는듯한 내 동료가 아니꼬운가?

줄 잘서서  출세라는걸 한 동창녀석이 보기 싫은가?

 

10분 빨리 가려고 교통신호 살짝살짝 무시하며 운전해가면서 자신의 민첩함에

 흐믓해 하는가?

남보다 조금 넓은 평수(겨우 10평이나 20평 정도 넓은) 아파트에 사는게 뿌듯한가?

조금 나은 외모를 가진 덕에 어디서든지 짱이라는것이  으쓱하게 하는가?

내일 저녁 근사한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가슴 두근거리는가?

 

에이,  아서라.

        

1mm도 안되는 개미떼를 관찰하듯  지구와 그 수천의 별을 세포로 가진

한 절대자가 현미경으로 이 지구라는 세포속을 관찰하고 있다면  우리의 이 모든 희노애락은

또 얼마나 미미하고 가치없는 것일까?

이 무한한 절대자가  관찰하다가 하도 시끄럽고 웃겨서  기침이라도 한번하면 어찌될까?

     

 

그래도

그 한 세포인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을,  

또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를

읊을수 있을까?

 

 

      :

      :

휘리릭~~ 땡땡땡~

     :

     :

자아, 이제 꿈 깨고 내일 잔뜩  쌓아놓은 빨래며 베란다 청소를 할 생각이나 해야지.

월말까지 내야 할 공과금도 꼭 내고.  

오락 좋아하는 아들 녀석 감시도  게을리 해선 안되지.

딸년 혹시 공부 안하고 어떤 날라리 만나고 다니지는 않는지 안테나 세우고 있어야지.

 

지구 인구가 60억이 웬 상관이야?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이 웬 상관이야?

이 도시 인구 88만이 웬 상관이야?

내가 중요하지.  그럼.

 

죽는날까지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야겠지.

 

 

 

 

ps:   제목만 보고 무슨 짜릿한 거라도 상상하고 클릭한 님들이 계시다면  sorry!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