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아이의 주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있는 이 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01

꿈-현실이되다


BY 미르 2006-08-29

 

꿈-현실이 되다


그가 나를 보고 웃는다. 그의 두 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살며시 나를 안아준다. 나는 그에게 안기며 행복해한다. (가만, 그는 내 남편이 아닌데... 그런데도 내가 행복해하는걸 보면 아마 결혼하기 전일까? 아니면 바람피느라 이판사판? 아니면... 그가 유명연예인이라 남편이 알고도 묵인?) 어쨌든, 행복한 이순간 갑자기 그녀가 끼어든다.  그녀는 너무나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뒤태를 자랑하듯 등이 훤하게 파인 파란색 칵테일 드레스 차림으로 우리앞에 나타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인데... 파란 드레스? 아하,  에어컨바람에 펄럭이던 그 파란 드레스..) 그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알지만(원래 다 그렇듯이) 나는 내 초라한 모습에 그만 지레 물러나고 만다. 라면먹어 퉁퉁 부은 얼굴(오늘따라 눈이 붙어버릴 작정인가?), 올인원을 입었음에도 겹겹이 드러나는 뱃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나의 두 아이들.... 무엇하나 나에게 응원이 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난 낙심한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아쉬운 상념에 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에게도 있었던 한때의 연애시절, 그때 느꼈던 가슴벅참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꿈이란.... 뭘까. 아니, 사람이 놀랍다.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오감에 육감까지 느낄 수 있다니... 그를 눈앞에 보듯 느끼고, 그의 목소리가 내귓가에 속삭이듯 들리고, 그의 손길의 따스함에 전율하고, 게다가 가슴까지 뛰고... 이쯤되면 꿈은 놀라울뿐 아니라 감사(?)하기까지 하다.

머릿속의 생각이나 상상이 내 몸을 바꿀 수 있다는것. 비단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닌것 같다. 그러니 ‘오랜 꿈이 현실로 나타나다’라는 식의 말들을 많이 하는 것이겠지.

정말 오랫동안 꿈꾸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꿈꾸고 싶다.

나는 꿈꾸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의 회사동료들 앞에서 전혀 주저하지 않고 냉장고에 칸칸이 유리밀폐용기에 들어 있던 잘 다듬어진 재료들을 꺼내어 꽃게탕과 구절판, 겨자소스를 얹은 닭뒷다리튀김, 떡잡채, 양장피 같은 것들을 뚝딱 해내는 꿈.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을 자가용 뒷자리에 태우고 문화센타, 예체능학원, 체험학습, 놀이공원 등지로 데리고 다니는 꿈.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공부 외엔 보습이니 과외는 한번도 안시킨 아이들이 해외유명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다니, 정말 저도 꿈만 같아요!”라며 인터뷰하는 꿈.

다니던 직장 ceo가 된 남편과 주말에 오붓하게 쉬러간 별장에서 남편이 와인을 앞에 두고 내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이게 다 당신덕분이야. 난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할꺼야. 그때가서 나 모른척하면 안돼.”라고 말하며 감격하는 꿈.

이런꿈.. 저런꿈...

이 꿈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현실일테지...

나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현실이 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여섯 살짜리 아들의 꿈은 ktx기관사가 되어 요리하면서 부산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시민들에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는 초코파이를 나누어주는 것이란다. 돌아올때엔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알래스카를 거쳐 미국에서부터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 있는 리우데자네이로에 가서 자기 친구를 만나는 것이란다.(매달 받아보는 책에 세계여러나라 어린이들의 생활모습이 나오는데, 이번달에는 리우에 사는 어떤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엄마가 여섯 살때 꾸었던 꿈보다는 비교적 현실적이군...

누구도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던 내가 이젠 이미 많은 이들에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조차 꿈으로밖에 못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다.

나, 아직 인생의 3분의 1밖에 안왔는데...

아주 가끔 남편이 잠들지 않은채 잠자리에 누워 있을때면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길~(long)’ 인생을 이야기한다. 100살까지 살려면 무언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남편회사의 정년이 55세이니 정년퇴직하고도 50여년이 남을텐데, 정년퇴직을 하든 더 일찍 퇴직하든 그때가서 할 일을 지금부터 생각해두어야 한다고.

그래, 내 인생이 만약 100살까지라면 3분의 1도 못왔다. 아직 승부를 걸 시간은 많이 남아 있어.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자식들의 나이와 더불어 내 인생을 흘려보내는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결혼하고 자식낳기전까지 열심히 돈벌고, 자식낳으면 자식에 메달려 키우고, 자식이 대학졸업함과 동시에 나도 사회생활졸업하고, 자식이 자식을 낳으면 나는 어느덧 인생의 무대 뒤편에 앉아 있는.

생각을 바꾸자. 결혼하고 자식낳기 전까지 열심히 돈벌고, 자식 낳으면 자식 키우면서 나에게 투자하고, 자식이 대학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제2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식이 자식 낳으면 나는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는 것이다.

남편은 나이 38세. 올 4월에 영업사원생활 10년만에 소장이 되었다. 요즘 남편은 자기가 번돈의 10%는 자기에게 투자하겠다며 월 30만원씩 하는 일대일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우리가 좀 똑똑했더라면 자식낳기 전에 영어공부같은것은 끝내두었어야 했는데..(사실 아이가 없을때 남편은 일본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일본어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학생으로, 자식으로, 아빠로, 남편으로 살아가는 남편은 지칠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꿈을 이뤄본 적 없는 우리에게도 꿈을 이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나도, 아이들 데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중이다. 큰아이가 방학인 지금은 금요일이면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매일다니는 운동을 아이들 데리고 가서 뒤에 앉혀놓고(꼼짝못하게 혼내면서)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셋이 다 같이 씻고, 밥먹고, 버스타고 엄마가 공부하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기고 나는 나만의 꿀같이 달콤하고 커피같이 향긋한 시간으로 들어간다. 2시간의 짧은 휴식을 마치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타고 집으로 온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등에 달린 혹처럼 느껴질때도 없지만, 낙타등의 혹이 낙타에겐 생명의 유약이듯 내가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를때,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는 생명수또한 아이들이다.)

두 아이를 낳아 젖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키우는 동안 잊고 살았던 나를 찾는 일이 이렇듯 힘들지만, 이 행복한 비명도 내가 공부를 마칠때쯤이면 끝이 날 것이고, 아이들로 인해 육체적으로 힘든것도 작은아이가 유치원다니기 시작하면 끝이 날테지.

바로 그때. 그때 나도 꿈을 이룰 수 있다. 지금 이렇게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이 나를 꿈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 작은 꿈을 이루고나면 또다른 꿈을 꾸고 이룰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낸 꿈이 마침내 누구에게도 현실이 될 수 없는 크고 아름다운 꿈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싯귀가 생각난다.

‘그대는 행복합니다. 꿈꿀 수 있으니. 그러나 그대는 불행합니다. 꿈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현실이 누군가의 꿈이 되는 그날, 나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이유는 이미 꿈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라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