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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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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왕소금 남편의 꿈


BY 올리비아송 2006-08-21

 

\"저기가 내가 대학다닐때 살던곳이야...\"

\"저기서? 정말?\"

\"응....거긴말야..화장실도 공동으로 쓰고....\"

더이상 말을 꺼내려다 접는다.  그곳은 하천가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붙어있는 집들이

지붕엔 시커먼 타이어를 몇개 얻어놓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밧줄로 동여매여져있다.

결혼하고 산 백삼십만원짜리 중고차는 남편이 살았다던 게딱지마을을 슬그머니 지나친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저기서 사는거지? \'

사람사는거야 다 거기서 거기이고 조금씩의 색깔이 다른 보자기를 풀면서 살뿐이라던데...

 

 

 

 

아버님은 여러번의 사업실패와 사기....등을 겪으시다 결국은 고용주의 집으로...서울의 변두리마을 전전하시다 그 곳에 정착을 하셨단다.

난 남편을 대학일학년때 대학써클실에서 만났다.

ROTC제복을 차려입은 남편은 작지만 그래도 아담했고 떡벌어진 어깨는

어디다 내놔도 모그릅 회장님의 자제라고 해도 될정도로 얼굴부옇고 부자집 아들같았다

그런 남편이 그 당시 살았어야 했던집이 저곳이었다니...

 

 

 

 

남편은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고서야 서서히 철이 들어갔다

\'난 아버지처럼 노동을 하면서 살진 않을꺼야...\'

그렇게 마음을 잡은 날부터 남편은 의자에 자신의 몸을 묶고서 공부를 할정도로 무섭게 공부를 해서 어렵사리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을 한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경제적으로 힘든 현실을 경험하고 철저하리만치 근면한 어머님 밑에서 자란 남편인지라 근면과 성실..그리고 알뜰함이 몸에 베어서 그누구도 남편의 정신력에 대항못할 단단함을 갖추어 놓았다.

 

 

 

 

그거에 비하면 난 경제적으로 떵떵거리면서 자라지는 않았어도 아쉬움 없이 자란터라

또한 여자들이 조금씩은 있을 허영심도 있는 나였기에

주위사람들은 \'넌 결혼을 할때 조금은 부자집으로 가야 될 듯 싶다..\'라는 말을 듣곤했다

그 뜻이 당시엔 뭔지도 몰랐거니와 결혼생활과 돈과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맘에 와 닿지 않았던 때인지라 난 덜컥 남편과의 결혼을 결정지었다.

전세집도 결국 남편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서 얻어야 했다

\"내가 그 회사를 다니지 못했다면 결혼을 못했을지도 몰라\"

난 사실 남편이 그렇게까지 아니 시댁이 그렇게까지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혼전에 몰랐던것이다.

 

 

 

 

어머님이나 남편은 항상 입에

아껴야한다..

한푼두푼 모으다보면...

절약해야지...

를 달고 다니셨으며 좋은말도 매일 듣다보면 나중에는 매너리즘에 빠질정도로

뒤에 담아두질 않게되고 신경질부터 나기 마련인데 하루이틀 매일 듣다보니

내 자신이 한탄스럽기까지 했다.

\'다 맞는 말인데...\'

 

 

 

 

 

난 단지 그당시의 현실이 싫었던 것이었다

누구는 시어머니랑 백화점에 가서 쇼핑도하고 맛있는 식사도 했다느니..난 그게 꿈이었는데...결혼하면 시어머님이랑 잘 지내면서 쇼핑도 같이하고 밥도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난 백화점은 커녕 동네 구멍가게도 함께 가본적이 없을 정도로 서서히 시어머님 앞에서는 돈을 되도록이면 안쓰고 꼭 꼭 숨겨두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가 절약하는 며느리며 아껴쓰는 며느리로 인정을 받았으니까..

나의 작은 꿈이 그렇게 무산되어지면서 결혼생활은 정신적으로 힘들어져만 갔다

모든 경제적인것은 남편이 관여를 했고 고집스러울정도로 돈에 집착을 했다

 

 

 

 

 

결혼하고 처음산 중고차는 몇번을 고쳐도 고쳐도 이젠 굴러갈 생각을 안하길래

폐차를 시켜버려야 했다.

당시 어린 큰아이를 데리고 친정까지 3시간의 거리를 버스를 4-5번을 갈아타면서 오는게 안타까운 나머지 아버지는 새로 차를 사시면서 타시던 차를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남편은 멋적게 받아는 왔지만 그 타박을 차가 매일 고장이 난다거나 왜이리 잘안나가느냐를 얘기삼아 자존심을 높여가고 있었다.

차는 그럭저럭 잘 굴러갔고 남편의 꿈인 조그만 아파트도 분양을 받게 되었다

아파트에 입주를 하면서 아버지가 주신 차도 폐차를 하고 남편은 또 작은 꿈을 이루었다

처음으로 새 차를 사게 된것이다.

800CC급 경차를...

 

 

 

나의 남편...

사십을 훌쩍 넘긴 모기업의 중견간부...

그래도 서울에서 살기좋다고 하는곳에 사는 남자

오늘도 800CC급 경차를 타며 이제나 저제나 절약의 정신으로 똘똘뭉쳐 매일매일

또다른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늙어서 돈없이 지내는 불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도 남편은 그 작지만 인생의 제일로 중요한 큰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노란 경차는 쌩쌩 달린다.

남들은 그정도의 사회적 지위이면 중대형차도 굴릴수 있는 처지인데 왜그러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나또한 그 차를 사는 시점부터 계속 보이지않는 신경전을 벌여왔고

몇년 타다가 처분하고 다시 사겠지...

그렇게 세월은 지나 7년이 흘렀다.

아직도 돌아다니는데 별 문제가 없고 이것도 황공하다고..

나의 작은 꿈인 여자로서의 허영심은 그 차와 함께 멀어져갔고 

아니 남편의 커다란 꿈에 그늘져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깃이다.

 

 

 

이제는 남편이 꿈꾸는 멋진 노후를 나도 덩달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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