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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한번 되봅시다


BY 동해바다 2006-08-21


 

      일요일 아침..
      휴일의 의미는 우리에게 이미 퇴색되어 버렸다. 하루도 다르지 않은 그날그날이 휴일이
      다.

      전화벨이 울린다.
      \"신선 한번 되봅시다\"
      천하에 법없이도 살 사람마냥 선하게 생긴 남편 선배의 전화이다.

      밤새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뒤늦게 배운 사진취미로 하루가 멀다하고 시내 
      구석구석 후비고 다니는 사람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 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바
      다의 일출 과 일몰 휴일이면 산과 깊은 산중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인데 아침 전화가 
      온다.

      사진동호회에서 장소를 물색했다며 지난번 혼자서 한번 다녀왔다고 한다. 
      오지도 그런 오지가 없더라, 
      캬~~ 폭포 옆 이끼가 끼여 장관이더라. 
      사진 전문가들이 한번씩은 다 다녀간다더라, 
      이런 곳을 우리고장에 있는데도 몰랐다니 가고보니 기가 막히더라...
      들떠 얘기한게 며칠 전이였는데 함께 동행하자고 했다. 

      시큰둥하는 남편을 설득해 배낭에 김밥과 과일을 몇개 넣고 그분을 태워 행선지 도계로 
      향하였다. 행정구역상 삼척인 도계는 옛날 탄광으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다.
      태풍의 영향으로 개울 물이 무척 많이 불어 있었다. 오늘쯤 개이려나 했는데 시내를 빠
      져 나오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국도따라 여행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특별히 여행이랍시고 다닌 적은 별로 없지만 38번 
      국도따라 가는 길과 해변도로 7번 국도는 이웃하여 있기에 우리로서는 천혜의 고장에서 
      살고 있음이 늘 감사하기만 하다. 38번 국도를 타고 그분이 가리키는 곳으로 차를 돌려 
      좁은 길 따라 쭈욱 들어가니 입구부터 계곡 물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오르는 길엔 이제 폐광된 갱입구가 폐쇄되어 굳게 철문을 잠겨진 채 무언의 산속 지킴이
      가 되어 있었다. 더 올라가니 그곳은 아직도 작업을 하는 곳인지 어두운 굴이 아가릴 벌
      리고 침을 흘리고 있다. 비온 뒤라 물이 졸졸 흘러내려오고 있다. 표지판을 보니 석회석
      을 채취하는 탄광이였다. 내려서 들여다 보니 일반 동굴과 다름이 없었다. 시커먼 갱 입
      구를 연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동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꼬불꼬불 경사진 포장된 산길을 올라 차를 세워놓고 묵직한 카메라들을 챙긴다. 
      나야 먹거리를 집어넣은 배낭만 어깨에 맨 채로 씩씩하게 앞장섰다. 산중 깊이 학교까
      지 있었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틀동안 내렸던 비로 곳곳 실개천이 생겨 있다. 밤나무 마가목 참나무 초피나무 등 깎
      아내린 산중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은 학교가는 길 심은 것인지 자생인지 잘 
      모르겠다. 이 깊은 산중 오지산꾼이나 사진전문가들이 아니면 전혀 사람들의 발길이 없
      는 곳이였는데 1,2년전 여행지에 소개되어 인터넷 소문을 타고 조금씩 계곡찾아 폭포찾
      아 피서를 오는 사람들도 간간히 있는 모양이였다. 폭포도 폭포지만 학교가 있었다는 사
      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비록 차로 올라왔지만 높이도 만만치 않을것 같고 집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는데 학교라니...

      금마타리 며느리밥풀 물봉선 뚝갈이 길 양옆 활짝 피여있다. 분주히 날아다니는 잠자리 
      떼는 짝을 찾으며 서로의 꽁무니만 따라 다니고 꽃속에 파묻혀 정신 못차리는 나비와 벌
      은 저들만의 아방궁을 만들고 있었다. 




      한시간 여를 걷다보니 허름한 폐가인듯한 집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경사진 산 중턱은 깎아 밭으로 썼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그 자리에 잡풀만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고 보여야 할 학교의 흔적은 어딜 찾아봐도 없었다. 함께한 선배의 친구가 
      예전 이곳 분교 선생으로 재직한 적이 있어 한번 놀러오라는 얘길 한적이 있다며 며칠전 
      사진찍으러 와 보았을때 폐교된 학교는 표지판만 남긴채 흔적조차 없어졌다고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잡풀만 우거지진 곳에 교육청에서 내세운 푯말이 보였다. 
      66년 개교, 94년 폐교, 졸업생수 89명...
      깊은 산중 경사진 산 언덕에 세워져 있을 자그마한 오지학교를 생각하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아니 영화라 할지라도 이런 곳에 학교가 있을 수가, 깊고깊
      은 오지의 몇 가구 아이들을 위해 분교를 세워 준 나랏밥 먹고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 또
      한 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집들이 대여섯 호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엔 몇십호나 되었다고 한
      다. 모두들 빠져 나가면서 자연히 학교는 폐교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나보다. 학교
      에서 심어놓았음직한 무궁화 몇 그루가 풀숲에서도 열심히 자라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
      다. 가기로 한 폭포의 웅장한 소리가 이곳까지 크게 울려퍼지는데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더 크게 귓가에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89명이라는 아이들은 이제 성년이 장년이 되어 
      이곳을 그리워 하고 있겠지.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엔 개망초꽃과 금마타리 잡풀만이 떠나간 이들을 그리며 심심산
      속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세월은 흘러흘러 잘 가고 있건만 삶의 무거운 지게는 왜 이
      리 더디게 날 붙잡아만 두는지...



      그곳까지만 길이 닦여져 있었다. 
      가기로 한 폭포수까진 나무와 풀로 우거져 정글숲 헤치듯 가야 하는 길이였다. 쩔쩔매는 
      남편이 안스러웠는데 결국 가파른 진흙길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괜찮아요?\' 말을 건내
      지만 왜 괜찮지 않을까. 내가 오지산행에 합류해 거친 산길을 헤치며 다니는 것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 산은 어차피 내려올 산이라며 그 자체를 싫어했다. 그래
      도 지금은 많이 발전해 \'한번 가 볼까\' 시도하긴 하지만 오늘처럼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거기다 길도 잘 보이지 않는 산길에 폭포하나 보러 간다는 그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집을 나서면서 바람쐬러 가는 목적으로 합류했으니 끝까지 갈수 밖에..

      우렁찬 폭포수의 낙하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면서 차가운 공기가 전해져 온다. 
      비에 젖은 풀숲을 헤치다 보니 옷도 모두 젖어버렸다. 



      햐~~~
      두 줄기 내려오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이끼 낀 바위와 함께 수려한 폭포수를 자랑한다고 하던데 비로 불어난 폭포는 이끼까지 
      삼켜버렸다. 넓고 짧게 내려오는 폭포수 옆에 밧줄이 보였는데 그것을 타고 위로 올라가
      야 또 하나의 제대로 된 폭포수를 볼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위험해 보였다. 귀청을 때리
      는 굉음소리에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고 불어난 물에 감히 올라간다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아쉬움 속에 가까이 다가가 폭포수의 튕기는 물방울을 맞았다. 




      사진 전문가들의 작품, 초록이끼 위로 하얀 물줄기 그리고 푸르다 못해 검푸른 소의 그
      림이 지워지고 말았다. 비 덕택이다. 하나의 다른 그림이 바로 눈앞에 보여지고 있는 것
      이였다. 전혀 때가 타지 않은 오지의 물줄기가 큰 입 벌려 호령치고 순수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두 팔을 쫙 벌리고 만천하를 얻은것처럼 포
      즈를 취한다. 마음 안에 담아있는 걱정거리를 이곳에 떨쳐버리고 가리라. 언제 한번 더 
      와 보고 싶지만 남편의 마음을 돌릴수 있을까. \'다신 안오겠지?\' 넌지시 말 건내니 절래
      절래 말없는 대답만 한다. \'이 고생 을 왜 또 하누\' 하는 투이다. 남편을 잘 알기에 이곳까
      지 와 준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비도 점점 내리고 추위로 한참 있을수가 없었다. 시간은 정오를 넘겨 배에서는 끼니를 
      요구하는 소리가 폭포수 못지않게 요동친다. 가파른 길을 내려온 만큼 다시 땀 뻘뻘 흘
      리며 폐교된 자리까지 올라가니 배가 고파서인지 현기증까지 인다.   

      신선한번 되보자고 함께 하자던 선배는 본게임인 폭포수를 정작 보지 못해 아쉽다며 한
      번 더 온다고 한다. 꼴이야 땀으로 젖고 흙투성이가 된 바지차림이였지만 마음으로 신선
      이였음을, 무섭도록 차고 내려오는 하얀 물줄기 앞에서 얽히여 있는 머리를 잠시만이라
      도 하얗게 만들어 주었음을 감사히 여긴다.  

      돌아와 인터넷에서 도계의 폭포수를 검색해보니 그곳이 성황골이였음을 뒤늦게 인지한
      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사람의 자료를 퍼돌려 많이 소개해 진 듯 보였다. 때묻지 않은 
      오지 모습 그대로 지켜졌음 하는 소망이 든다. 소개되어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고 다시 오염될 산야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고.....

      내가 사는 이 고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볼려면 이 생 다하도록 끝이 없을것 같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오지면 오지 어느 곳 하나 멀리 있지 않다. 적응하기 힘들어
      내내 서울만 그리워 하던 내가 이젠 이곳을 떠나 살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파도소리가, 숲속 바람소리가 내 몸 깊숙히 스며들어 한몸이 되고 말았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버겁더라도 일단 잊고 떠나는게 상책이다. 여유가 있어 
      홀홀단신 또는 가족단위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
      수다. 어느 누구나 담고 있을 삶의 무게는 가끔씩 신은 내려놓게 하신다. 남편과 함께 차
      에 기름 넉넉히 넣고 이렇게 오지로 떠날 수 있음도 어찌보면 사치스러울수 있는 놀음이
      다. 야금야금 갉아먹는 시간과 삶이기에 투미하게 살아가는 현실 앞에서 정신 바짝 차려
      야 할 우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섰다. 힘들어도 신선한번 되보기 위해 말이다...




      다녀온 곳 :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 성황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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