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았던 \" 오만과 편견\" 이란 영화로 감성의 자극을 받은 후
다른 무엇으로 충만감을 이어가길 원해 이것 저것 꺼리를 마련하는 도중
오래전에 읽었던 홍윤숙 님의 에세이가 눈에 띄었다.
그때만 해도 둘째 딸이 백일을 넘긴 시기였으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장면은 아파트 앞 산책길에 아들이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며
둘째 딸이 누워있는 유모차를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이 책을 읽는 풍경이다.
첫 장을 넘기니 이런 글귀가 살아있다.
아름다운 정신에서
아름다운 단어가 탄생한다.
딸을 안고 있을 땐, 모든 누적된 괴로움과 허전함의 찌꺼기가
아름다운 소리로 승화해 향기를 내 뿜는다.
내 아름다운 아기들,
그리고 당신
내 삶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는 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해.
그때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써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였나 싶다.
나는 처음 생각하고 결심한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고집을 가진 사람이다.
어쩌면 그 고집이 나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억지였을게다.
생각의 최초란 것을 고집하며 내 순수를 지키기 위함이란 굴레에서
그 원칙을 깨지 않기위해 나 스스로 힘겹게 살아왔음을 시인한다.
결혼과 출산 역시 내 삶의 최선이란 생각에 굉장한 집중을 했었다.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였던 나로써는
내가 엄마라는 자격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나의 역량보다 지나친 최선을 하였다.
스스로 속박하고 스스로 최고의 엄마가 되기위해 지나친 피로감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둘째 딸을 낳고나선 나와 동성이란 사실에 감격했었다.
목을 겨우 가누는 딸과 한 몸이 되고 싶어 늘 딸을 내 등에 업고 다녔다.
그때 느꼈던 포근함과 일체감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따뜻한 사랑이였다.
그렇게 귀한 어린것들에게서 지루함을 느꼈다.
순간적인 지루함과 충동성에 집을 뛰쳐나와 직장을 찾았다.
항상 원칙이 있었던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있겠다는 각오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어린시절 그토록 엄마를 그리워하며 함께 살고 싶음에 고독을 일찍 알아버린 나였건만
몇 년의 충족으로 엄마라는 자리가 지루해졌다니.... 내 스스로도 나의 변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엄마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지금도 내 원칙은 무너지고 있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견고한 내 고집 역시 세상의 흐름에 순응한 것이다.
젊은날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내 순수를 지키는 것이란 사명감에
너무도 좁은 세상에 갇혀 살지 않았을까 돌이켜본다.
술에 취해 휘정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내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 슬프다.
13년 동안 항상 날 지켜주던 내 사랑은 내 슬픔을 어루만져준다.
세상이 변하듯 네 자신 역시 자연스레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오래 전 읽었던 책 속에서
오래된 풍경을 발견하고 보니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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