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경이었나 보다.
학생 기숙사에서 근처 아파트로 이사하는 바람에
월말인 할로윈때가 되어서야 집수리를 대충 마칠 수가 있었다.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출근하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할로윈무렵이라 동네 개구쟁이들이 가면을 쓴다 변장을 한다 해서
지하철역 주변이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그 북새통속에서 나는 한 여자가
이상한 가면을 쓰고 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무리 할로윈이라지만 아이도 아닌 성인 여자인데다
그 가면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팍 터져나왔었다.
그 여자는 웃고있는 나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순간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놀랍고 무안해 어쩔줄 모르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여자의 가면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이었던 것이었다.
한 여자의 얼굴이 어쩌면 저렇게 망가질 수가 있을까.
눈코입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전체적으로 뭉개져 있었다.
아직 살아오면서 그렇게까지 뭉그러진 얼굴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그 얼굴을 가면이라 생각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이면 할로윈에.
나는 그 이후에도 자주 그 여자와 지하철역에서 마주쳤는데
그 여자는 자기의 얼굴과는 상관없이 자기 취향껏 옷을 입었다.
그녀의 취향이란 눈이 시릴정도로 강열한 원색계열의 핑크, 노랑, 빨강, 초록색 의상에 늘 특이한 모자를 쓰는 것이었다.
몸매가 날씬하여 얼굴만 빼면 전체적으로 참 예쁜 아가씨였다.
이 아가씨는 아침마다 이렇게 예쁘게 차리고는
늘 일정한 시간에 나가는 걸로봐서 어디엔가로 출근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오늘은 우연히 버스안에서 보게되었다.
나는 그녀의 자리에서 한 칸 건너뛴 뒷자리에 앉았다.
30도 채 안돼보이는 그녀는 오늘도 예쁜 옷을 입었다.
공주과 꽃무늬 블라우스에 바지는 뭘 입었는지 보지 못했고
파스텔 계열의 하늘색 면모자를 썼다.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느라 자주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나는 처음으로 가까이서 그녀의 옆얼굴을 보게되었다.
왼쪽뺨의 살들이 용암처럼 흘러내려 턱밑으로 반뼘은 축 쳐졌다.
흘러내린 살 때문에 얼굴이 남들보다 반은 더 길어보였고
코와 입이 살에 덮혀 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옆얼굴은 다행히 흘러내린 살들로 덮히지 않아 코와 입이 보였다.
예전에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엔 그녀의 얼굴이 화상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오늘 가까이서 보니 화상은 아니고 어떤 병때문이거나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녀의 외양은 흡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영화 ‘Elephant Man\'의 주인공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주인공.
그는 병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일그러지는 얼굴 때문에
지극히 정상적인 지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집에 갇혀 살았고,
죽을 때까지 사람들의 멸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불행했던 Elephant Man이 죽은지 100년이 넘게 지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지만
어딜가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존재한다.
그녀 역시 남다른 외모 때문에 상상도 못할 많은 시련을 겪었으리라.
내가 버스에서 내리려고 벨을 누르는데
그녀는 별안간 가방에서 조그마한 손거울을 꺼내들었다.
그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고 옷매무새를 고치는 그녀를 보며 예전에 참 안됐다는 동정심이 들었던 내 자신이 참 못나 보였다.
내가 뭐하나 잘난게 있다고 이 여인을 동정했나 싶은게
나야말로 못난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 외모로 세상밖으로 뛰쳐나가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는 딸이 세상의 어떤 딸보다 장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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