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산으로 떠나지 못한 여름은 언제나 구석 구석 눅눅한 이끼를 키우며 피어 있었다.
한없이 지치고 끈적거렸던 한 여름밤에 베란다 창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달빛을 보고 돌아누운 채
밤새도록 뒤척였다.
나는 내 생에 무슨 기대를 남겨놓았을까.
어두운 방안에서 내 기대가 무엇이였던가를 더듬거린다.
기대라니 우습고 가엾은 일이라 고개를 흔들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여름은 숨이 찼고 끈적거렸으며 무기력했다.
이끼에 밀리던 숨막힌 화초가 죽어나갔으며 바싹 마른 빨래는 명태껍질 처럼 뻣뻣했다.
저녁이면 명태껍질 같던 옷은 땀에 젖어 냄새가 났고 몸도 마음도 함께 쓰러졌다.
며칠 전 원고료로 받은 농협상품권을 들고 세번에 걸쳐 마트에서 장을보아 먹을 것을 냉장고에 꽉꽉 채웠다.
더 들어갈 곳이 없을 때 옆에서서 바라보던 딸아이는 엄마, 왜 그래? 했다.
왜그러냐고?
응. 엄마 왜그렇게 먹을 걸 사들고와? 지난번에 사온것도 그대로 남았잖아. 들어갈 곳이 없잖아.
다 먹은 후에 사던지... 할때 나는 그렇구나. 했다.
무엇이던지 채워주고 싶었는데 채워주지를 못했다. 언제나 그게 미안했고 마음 아팠다.
빈곤했던 우리의 날들을 잠깐이라도 잊게 해주고 싶었는데...가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내 행동에 낯설어했다.
우리도 휴가가자...하고 나는 오래만에 여유롭고 풍요로운 말을 찾아냈을 때 가볍고 기쁜흥분에 몸을 떨기도했다.
휴가가자 하고 이야기 했을 때 아이들이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집을 두고 어디를 가냐고 했다.
집이 젤 좋아...안간다고... 나가면 더워서 싫다고했다.
그래도 가자. 하고 이번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안갈래? 왜 안가? 엄마가 가자는데 왜 안가? 하니
엄마, 놀러갈 돈 있으면 더운데 일하지말고 하루라도 집에서 더 쉬어. 하는데는 할말이 없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생각하면 늘 답답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마가 가자면 가는 거지..무슨 말이 많아. 엄마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말이야...이 나쁜놈들.
했을 때도 두아이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지중해의 해변은 아름답다.
가보지 않은 그리스의 해변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열망하는 것들에 대해
<나도 그리워 하고 있음을... 나는 숨기기로 한다.>
<코렐리의 만돌린>
이 영화는 히틀러와 뭇솔리니가 손을잡고 연합군과 대항하던 1941년 2차 대전중
그리스의 아름다운 세팔로니아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전시중의 로맨스와 그리고 몇년후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섬에 바치는 전쟁의 의미와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뒤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니콜라스케이지가 감성적이고 매력적인 코렐리 대위로 나와 대역없이 직접 만돌린 연주를 하는데 더 없이 애잔하다.
의사인 아버지가 딸에게 건네주는 사랑의 진솔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열정도 그리움도 격렬함도 아니란다. 그것이 다 사그러진 다음에라야 진정한 사랑이 오는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며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만 더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이제 되었어요. 빨리가세요.>
전쟁이 끝난후, 여자(페넬로페 크루즈)를 찾아온 남자가(니콜라스케이지) 하는 말.
<당신없는 세상도 살아갈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로 엔딩되는 <코렐리의 만돌린.>
영화가 끝나자 지중해의 바닷소리가 바닷바람이 해초내음이 작은 거실로 불어와 숨어있던 이끼들이
걷어지고 있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내 손등위에 제 손을 슬며시 올려놓은 아들은 \"엄마, 저기 가보고 싶지?\"
\"...아니... 왜...\"
\"내가 나중에 보내줄게\"
제 오빠 말에 옆에서 책을 보던 딸아이가 웃는다.
♬..Mandolin,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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