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삐딱한 놈이 누구야?
시어머님 5주기에 온 가족들이 모였다. 멀리 사는 시동생 내외와 시누이 그리고 군바리 아들 녀석과 딸아이까지 내려왔다. 삼복더위에 많은 식구들이 우굴 거리다 보면 각종 헤프닝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하나뿐인 동서는 유난스럽게 깔끔하다. 큰일만 있으면 항상 내 뒤를 따라 다니며 궂은일 마무리 하는데 능숙하다.
그날도 여러 식구들 챙겨주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화장실에서 나온 동서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조카들을 보면서 갑자기 언성을 높혔다.
“고추 삐딱하게 돌아간 놈이 누구야?”
그때 거실에는 아들 녀석과 중2 짜리 조카(동서아들). 그리고 시누이 아들(초등6)과 종질 녀석 둘(9세, 6세), 그러니까 모두 고추 소유자들만 쇼파에 앉아서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누군가가 화장실 변기를 내려놓고 ‘쉬를 한 모양이다. 수시로 드나들며 쓸고 닦고를 하던 동서의 눈에 누렇게 튄 흔적이 몹시 눈에 거슬렸나 보다. 서로를 쳐다보며 ‘난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럼 맨 마지막에 나온 놈이 누구야?”
그래도 범인(?)이 나오지 않자 본격적인 알리바이를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 난 형보다 먼저 들어갔다 나왔다 머.......”
“ 난 오늘 오줌 한번도 안 눴다.”
“ 난 갔다 나온 지 한 시간도 더 됐다.”
이럴 땐 억수로 기억력 좋은 녀석들이다.
그때 아홉 살짜리 종질녀석이 머뭇거리다가 불쑥 내 뱉는 말인즉
“큰 엄마, 제가 마지막 나왔지만 제 고추는 안 돌아 갔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온 집안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 이 사람아 그럼 애들은 아닌 모양이네 머........ 그럼 서방님은?”
베란다에서 화초를 보고 있던 시동생에게 눈길을 던지며 내가 짓궂게 물었다.
“ 아유. 형님... 애들 아빠 고추는 정 중앙이에요. 제가 보증해요.”
기겁을 하며 손 사레를 치면서도 미심쩍은 눈길은 여전히 조카들에게 머물고 있다.
돌아서 있는 시동생의 어깨도 웃느라고 흔들거렸다.
굳이 범인색출을 하려는 동서의 짓궂은 장난을 보다가 방으로 들어오니 남편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하이고 범인은 따로 있었구나.
“이제 보니 당신이.................?”
내 의중을 눈치 챈 남편 역시 기겁을 하는 눈치다.
“이사람, 생사람 잡지 말어. 난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실실 웃는 폼이......”
“허허 참, 제수씨가 고추 달린 사람 도매금으로 넘기니까 웃은 거지”
설마 시숙 거시기까지 싸잡아서 범인으로 몰진 않았겠지만 고추달린 죄로 범인 테두리 안에서 그리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당신 이러는 거 동서가 알면 아마...............”
“그러면 자네가 증인을 서야지”
“내가 안 봤는데 무슨 증인을 서요?”
“어허, 내 고추 안 삐딱한 거 자네 말고는 누가 보증을 하나....참내”
끝내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남편 고추가 삐딱한지 바로 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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