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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사랑


BY 홀로가다 2006-08-02

5년만이었다.
어려서부터 별난 성격으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평생을 가도 얼굴보고 살기 힘든 동무들과 만났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수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마주할 일이 없었다.  꼭 볼 일이 있어야 만나는 사이라면 그건 이미 동무가 아니지 않는가. 조건 없이 보고싶어서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무가 아닌가 싶다.

 

먼 곳도 아니고 한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지척에 사는 동무들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주식에 돈이 묶여 셋집에 살았던 친구가 작년에 집을 마련하고도 초대를 하지 않았다. 밥 한끼 주기가 그리도 아깝느냐고 핀잔을 주어 반 어거지로 만든 자리다. 숫자만 누르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가깝게 들리는 문명시대에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목소리조차 듣기 힘들다. 일년에 몇 차례 전화번호부를 페이지 넘겨가며 지인에게 안부를 묻는 나는 별종이다. 유득 나만 정에 목말라하는 현상이 아닌가 가끔 자문해 본다.  이것은 정을 갈망하는 일종의 병이다.

 

평소 목소리조차도 듣기 힘든 친구에게 악착같이 전화를 걸어,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양 너스레를 떤다.
\"가시네야, 얼굴 좀 보면서 늙어가자!\"
첫 인사부터 툭 던지는 말에 그녀는 기분좋게 깔깔거린다.
그러나 받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절대로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일이 없다.

나는 전화를 돌리면서 세상 이치를 본다.
많은 사람들이 주는 것에는 인색하고 받는 것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왜 다들 마음이 분주하고 여유가 없는지 더러 안타까울 때가 있다. 가끔은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숨 가쁘게 살아버린 지난날의 허망 속에서 언제 갈지 모른 영원의 길을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친구도 챙기며 살고싶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친구들에게 절대 먼저 전화하는 일이 없다고 자랑처럼 떠든다.
난 절대 전화를 먼저 거는 성격이 아니야, 난 누구에게든 전화를 잘 안 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사뭇 나는 잘난 사람이야 하는 뜻을 내포한 것처럼 들린다. 자신의 가족 외엔 타인은 전혀 관심 밖이라는 어투다. 그러나 그들도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계산에 의해서만 사람을 만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인백색이라 듣는 이에 따라서 그 말은 아주 인간미 없게 들릴 수도 있으며, 모질고 정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난 너한테 관심 없어 라는 비정함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면, 정말 잘난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고 챙길 줄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어떤 의미가 내재되었든 수용해버린다. 정치인이든 사업가든 일반인이든 간에 계산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본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정겹고 따스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으니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는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왕따를 당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도 내가 왕따의 타켓이 될 정도로 모가 났었나 의구심이 들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 일어난 현상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혼을 하고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왕따 문제로 한동안 세상이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연일 매스컴에서 왕따의 심각성을 보도하였고, 경험자인 나로선 영혼을 죽이는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갈수록 이기심 팽배하여 세상은 험악하고 인간성도 매말라 그 방법의 잔혹함이 더했다. 왕따를 당한 아이들이 자살을 기도한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11살 어린 나는 두 달 동안 집단의 폭력에 무방비상태였다.  누가 괴롭혔다고 엄마에게  이르기라도 하면, 되려 잘 못했으니 그런 것 아니냐는 힐책만 받았다. 남의 집 부모들은 자식이 싸우고 오면 눈에 쌍불 켜고 달려가는데, 우리 집은 무조건 너가 잘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자식을 바르게 기르는 교육이란 걸 부모가 된 다음에야  알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너무도 서운했다. 가난한 엄마는 사는 게 힘들어서 자식 사랑이 남보다 못 미치는 것이라 여겼다. 하여 스스로 귀하지 않는 존재라 여기게 되었고 강한 독립심이 길러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 속담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잘못을 떠나 앞뒤 재지 않고 자식 편이 된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도 엄마처럼 너만 잘하면 된다고 하셨고, 무조건 자식 편을 드는 것은 팔불출이나 하는 소인배 짓이라 여기셨다.  할아버지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은 여기저기 팔불출들이 난무하고 세상은 온통 소인배들로 가득 찼다. 내 자식만 최고라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이다. 그러니 자식이 왕따를 당하면 그 부모들이 더 죽을 맛이지 않겠는가.

 

왕따의 주동자 겪인 애들이 나와 함께 노는 애들을 하나 둘 불러내어 나는 고무줄을 하다가도 상대할 동무가 없어져버리곤 했다. 사방치기를 해도, 술래잡기를 해도, 함께 노는 애들마다 데려가 버리고,  뎅그라니 혼자가 되었다. 공부 시간을 제외한 쉬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왕따 현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것은 마치 피를 본 짐승이 야수의 본능이 폭발한 현상처럼 점점 잔인하고 강도가 심했다.

 

하루는 당번이라 늦게까지 정리를 하고 혼자 하교를 하는데 애들이 모여있었다.  직감으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방인이 된 나는 고개를 떨구고 지나가는데 땡볕에 땅 찌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야, 승자가 너한테 이긴다고 한다.\"
못 들은 체 지나가는데 주동급인 애들을 비롯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저는 승자가 냅다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고 순간 승자의 손이 머리채를 나꿔챘다. 그냥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활화산 같은 분노가 어린 가슴에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렸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울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승자의 귓부리 머리를 검지손가락에 돌돌 감아 죽을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그것은 동무들을 향한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달궈진 분노의  표출이었다.
성자, 춘덕이, 현숙이, 셋은 주동자이고 연지, 영숙, 영아, 란희 등등은 내 친구들이었다.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 그들 모두는 한편이었다.

악동들은 승자의 머리카락을 잡은 내 손만 뜯어말리려 안간힘을 썼다. 어느 누구도  승자의 손은 말리지 않았고 되려 누군가의 또 다른 손이 내 머리를 쥐어뜯는다.
추석에 큰 올케가 선물로 사 온 꽃무늬 원피스는 갈기갈기 찢기고, 내 마음은 원피스 보다 더 갈기갈기 찢긴 생채기를 입었다. 나는 끝까지 울지 않았지만 악동들은 모두 승자가 이겼다며 판정승을 내렸다. 터지는 분노와  나락 끝 절망과  뼈를 깎는 고독 속에서 싸움에 이기고 진 게 무에 그리 대수랴.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지만 악동들의 그릇된 판단에 굴복하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  그런 표현은 너무 고상하고 귀족적이다.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듯 죽음처럼 깊고 무서운 적막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찢기고 할퀴고 생채기 난 거지꼴이 된 나를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다.
\"오매매! 누구랑 싸우고 왔냐?\"
\"승자랑...\"
\"먼 놈의 가시네들이 쌈박질을 해서 옷이 먼 꼴이라냐. 얼렁 씻고  밥 묵어라.\"
몰매를 맞고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가족의 사랑은 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튼튼한 동아줄로 둘러친 울타리였다.
나는 어떠한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았고 더 이상의 꾸중도 없으셨다.

 

이제는 왕따 당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것 같다.  한 마디로 기가 너무 셌던 게 아닐까 싶다.
어버이,
옳고 바르게 세상 보는 눈 주셨고 
하나님,
밝고 긍정적인 사고력 주셨으니
어리다고 어찌 주장인들 흐릿했으랴.
다듬어지지 않는 어린 아이의 천성이 동무들을 어지간히도 피곤하게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내 판단이 옳다하여도 막무가내로 주장하지 않는다.
꽉 막힌 상대를 만나면 피해 갈 줄도 알고 적당히 무시하고 한발 물러설 줄도 안다.
인생 길 마음을 터 놓을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 않지만, 가끔은 유년의 동무들이 그립다.
그 그리움은  어머니 사랑이 남긴 긴 그림자처럼 평생 따라다닌다.

친구에는 각각의 색깔이 있고 그 역할도 각각 다르다. 어릴 적 핑크빛 꿈을 키운 순수한 우정과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만난  초록들처럼 편안한 친구가 있지만 그 둘이 때에 따라 그립다.
영원히 치유 못할 화인 맞은 왕따의 상처도 세월에 묻히고 하나님 사랑으로 치유되었다.

 

절룩거리며 다니던 승자의 다리는 어떻게 됐을까?
세상이 좋아졌는데 수술해서 고칠 수는 없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싶다.

현숙이, 춘덕이, 성자, 동무들의 곤고한 삶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그네들에게 내 존재는 관심 밖일지라도 나는 오늘도 해바라기 사랑을 한다.
모두들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곱고 아름다이 사는 모습이라도 보면서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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