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구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죽고 못 사는 애인도 아니 것만 방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 남편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집순 이었다.
한 친구는 오전 11시에 전화 걸면서 나만 집에 있다고
계집애야? 11시에 집에 있는 년은? 인간성이 더러운 년이란다, 한다.
그 시간에 전화 거는 년도 똑같은 년이면서…….ㅎㅎ
또 한 친구가 전화를 걸면서 버릇처럼 어디냐? 하고 물으면 매일 집이라니까
답답하지도 않냐? 어서 자전거 끌고 호수공원으로 달려? 한다.
오죽 답답해 보이면 저럴까…….
부지런쟁이 우리 엄마는 집에만 엿가락처럼 붙어 있는 나를 보면
에그그~~~시집이나 보내던지…….너 데리고 도망갈 애인도 없냐? 하신다.
그래서 며칠째 자전거를 끌고 호수공원으로 냅다 달려보았다.
자전거 바구니에 고동색 개 한 마리를 싣고
방구석에서 벗어나려고 오후 5~6시만 되면 모자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철그덕철그덕 낡은 자전거에서 나는 소리에 시달리면서 달린다.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나도 쓰러질 것 같다. 끝없는 외로움과, 알 수 없는 보상심리,
아무것도 하기 귀찮은 귀차니즘에 빠져 이대로 방구석에서 쓰러질 것만 같다.
그래서 달린다.
꽃속에 풍덩 빠져 꽃속에 파묻혀 꽃요정이 되고 싶다.
호수 속에 발을 담그며 노래를 부르고 싶다,
노래 잘 하는 친구가 옆에서 화음을 맞춰준다면 좋겠다.
잔디위에 벌러덩 자빠져 하늘을 보며 좋아하는 이성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글에다 내 마음을 담아 놓느라고 새벽 3~4시까지 컴퓨터에 앉아 있다.
글을 써서 생활비를 벌지도 못하면서 나는 이 글쓰기에 심심한 나와 놀고,
스스로 나를 위로하며 산다.
그러다보니 모두들 출근하고 볼일보러가는 시간에 나는 잠에 빠져있다.
그 옆에 개도 주인을 닮아 아침잠이 많아졌다.
아침엔 눈빛이 멍청하고 게슴츠레하다가 오후가 지나야 내 눈빛이 제 빛을 찾는다.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으로 달리는 시간이 몸이 깨어나 신나게 달리는 시간이 된다.
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몸이 노을 색으로 물이 든다.
그러면 어디든 벗어나 달려가고 싶고 손잡고 있어줄 남자가 필요해진다.
저녁상에 마주앉아 밥 먹어줄 동반자가 막연하게나마 그립다.
재혼할 생각은 별로 없으면서 혼자라는 건 정말 할 짓이 못되고 지겹다.
있는 대로 게을러지고 먹고싶다는 의욕도 없고 살아야 한다는 즐거운 욕망이 줄어들었다.
불감증인가보다. 남자의 그 품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혼자라는 것이 싫을 뿐이다.
이러니 어느 남자가 나를 품어보고 싶고 책임지고 싶어지겠나.
어느 소설에서 몇 년 동안 혼자 사는 딸을 친정엄마가 한숨을 들이쉬며 내쉬며 하던 말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어째 먹여 살린 놈 하나 만나질 못하는지......”
나의 친정엄마가 자주 하는 말과 흡사하다.
“못생기길 했나, 성격이 이상한가, 살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왜 남자 복이 없는지.휴우~~”
공원을 두 바퀴 돌고 말도 안 통하는 개한테
꽃순아? 이제 집에 갈까? 집에 가고 싶지?
바구니만한 개한테 핑계를 대고 집으로 방향을 틀어잡는다.
꽃순이가 없었으면 침대요정이 될 뻔했다.
귀차니즘에 빠져 집에 있으면 종일 침대에서 놀게 된다.
거기서 생각을 쌓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놓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손잡고 호수공원을 거닐기도 한다.
시골집을 소박하게 지어놓고 들꽃을 마당가득 심어 놓고 꽃을 좋아하는 남편과 내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어떤 소재를 찾아 어떤 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야 될까도 침대요정이 되게 만드는 일등핑계거리가 된다.
돈은 벌어야하는데...뼈빠지게 고생하고 싶지는 않고...몸이 약해 보여서 일하라고 할 곳도 없고....
식당? 식당에서 받아주지를 않는다. 음식 나르다가 손님 앞에서 쏟을 것 같이 생겨먹었다.
영업? 나의 단점 중에 단점이 사교성이 없고 말주변머리가 없고 붙임성이 없다.
청소? 파출부? 노래방?
이러다가 하루해가 저문다.
난 요즘 귀차니즘에 빠졌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돈 벌 생각을 미루고 공상만 한다.
누가 나보고 일할 생각은 접고 소설을 쓰라는데…….그게 될까?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면 30분 이상을 못 앉아 계시고
집에 가야겠다, 그러시며 엉덩이를 들어 올린다.
엄마 닮아 그런걸.…….우짜겠나…….생긴 대로 살아야지.
돈 욕심이 없어서 나만 굶기지 않고, 꽃 좋아하고,
글 쓰는 거 이해해주는 웬만한 남자면 되는데…….
그러면 살림만 잘 하고, 바가지도 안 긁고 노새노새 중년에 놀아, 하면서 편하게 살 텐데…….
나 데리고 시골로 도망갈 남자 없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