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가?
30도 안돼서 7대 독자 외아들을 앞 세운 여자.
그리고 딸 아이가 교통사고 때문에 10년을 넘게 병원에 터를 닦았는데
이런 여자에게도 진정 행복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행복하고 싶다.
그래도 되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먼저 보낸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우리 세딸이 태어나지 않았겠지.
아마도 7 대독자 외아들을 길러가며 폼나는 인생을 살았겠지.
그러나 불행속에서 울고 불고 하는 사이에 세월이 휘딱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간 자리에 지리리한 상처가 남아
간간히 눈물을 찍어내지만 요즘들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 남편!
어느새 머리에 허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도 결혼할 당시와 다름없이 성실하게 나를 지켜준다.
부자는 아니지만 아이들 기르기에 큰 애로도 없다.
위풍 당당 시어머니도 어느새 목소리가 작아졌다.
엊그제는 큰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 연대 고려대를 탐방했다.
항상 이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갈때에는 목발이 들려있든지
기브쓰를 했던지 아니면 의료기가 착용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버렸다.
집에 돌아온후로 공부를 하느라고 눈에 더욱 더 불을 킨다.
요즘들어 작은 아이까지 질세가 불을 킨다.
특목고 시험준비를 시작하였다.
아마 내 등에 콩을 올려놓으면 호독 호독 튀는 소리가 나리라.
세 아이 기르기가 얼마나 벅찬지
초등학교 2학년 생인 막둥이까지 질세라 자기 영역이 분명하다.
세 딸 아이가 이렇게 성실하게 자라는데 행복하지 못 할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행복한것.
지난번에 사 놓은 산 따랭이 작은 밭에 심어 놓은 배롱나루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 배롱나무는 우리 22 주년 결혼 기념일 날 심은 것이다.
눈발이 듬성 듬성 내리는 추운봄에 .
그렇지 참 그날은 참 이상한 봄이었지.
우리에 인생처럼 아주 이상한 날씨였어.
3 월인데도 멀쩡했던 하늘에서 눈이 내렸으니까.
그때도 우리 부부는 눈속에서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었다.
그 나무들이 몽땅 죽으면 어쩌나 했는데 몇그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씩씩하게
살아남아 빈약하게 나마 꽃을 피워가고 있다.
오우 땡큐~
이제부터는 사는 것 처럼 살아야지.
요즘 그 밭에다 작은 집을 짓고 있다.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한가지 더 보태어 황혼이 멋들어진 연출을하고 있었다.
설레였다.
그리고 또 하나.
집뒤에 소나무가 즐비하다.
줄야 청청 소나무처럼 당당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었다.
우리 아들 잃고나면서 딸 다치면서 나는 언제 죽나가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오래 살고 싶었다.
우리 딸들 예쁘게 기르면서 하나 둘 성인이 되고 손주들도 생겨나고
예쁜 할아버지 할머니로 살고싶다.
행복해서 미안했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을 줄 몰랐었다.
아들아 미안하다.